그때 그런 마음이었구나.
몰랐다. 미안하다.
그런 말을 당신들에게 듣고 싶었다.
언감생심이었다.
아직도 그런 걸 바라고 있다니,
부끄러웠다.
그래도 낳아줬으니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에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는데, 태어나버려서
도대체 나는 내가 왜 태어났고, 내가 왜 나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인지, 괴로웠다. 산다는 게 형벌처럼 느껴졌고,
계속해서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발명하곤 했다.
감사한 마음은 없다. 단, 앞으로 원망하지도 않으려 노력해봐야겠다.
왜 나는 늘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죄책감을 가져야 하고,
미안한 마음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러닝을 하면서 두통은 사라졌으나,
이 우울은 그대로다.
아플 거면 뼈가 부러져야 사람들로부터
그 아픔을 정식으로 인정 받는다.
마음이 계속 아프고, 그 아픔을 호소해봐야
그냥 나약한 놈으로 치부된다.
나약한 사람들끼리 참으로 깊게 서로를 괴롭힌 역사였구나.
이제 앞으로 누군가가 나를 그곳에서 꾸준히 미워하고 있을 텐데,
너무 자주 돌이켜봐서 좋을 게 없겠다.
마음이 좀 편안해지면 좋겠다.
더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말자.
나는 그런 게 힘든 사람이다.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걸 최고의 가치로 두자.
주변 괴롭히지 말자. 도움은 못 줄지언정,
괴롭히지 말자, 제발. 그렇게 될까 봐 염려가 된다.
내 마음이 편안해져야 내 주변도 편안해질 거다.
그때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몰랐다. 미안하다.
나는 이 말을 진심으로 내 주변에 해주고 싶다.
그리고 희망을 생각해본다.
어딘가에 버젓이 있을 그것을 만나보고 싶다.
만나면 끌어안고 안 놔줘야지.
실은 어쩌면 이미 끌어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놓치지 말자. 편안하게 만들어주자.
희망을 끌어안고 놔주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