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봉민의 그림
김봉민의 작가는 소리 #15. 지각에 대한 자각
오늘도 지각이다. 이제 지각은 내게서 찾을 수 있는,
나의 특별한 현상이라거나 고질병, 또는 악습관의 범주에서 벗어난 듯 싶다.
지각은 그 자체로 이미 나를 규정하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이다.
창피하다.
그토록 괴로운 일이 많았는데, 어쩜 이토록 개선이 되지를 않는 것일까.
화려한 말발과 달변을 총동원 해 합리화 혹은 변명을 하려 해도
이젠 통하질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 나 스스로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1.기상 시간과 약속 시간 사이를 너무 타이트하게 떨어뜨려 놓는다
2. 씻고 나가기 전, 집안 잡일을 몇 개라도 처리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
3.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지 못 할 거 같으면, 아싸리 그냥 늦어버리자고 자포자기 해버린다
4. 내가 객이거나 을로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몇 분 좀 늦었다고 불 같이 화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별로 미안해 하지도 않는다
나의 지각은 대략 이러한 이유들에 근거해 실행된다.
그리고 이렇게 보란 듯이 인지는 하고 있다.
그러나 31년 내내 ‘지각하면 안 돼’라고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지각하지 않은 적은 극히 드문 사실을 감안하면,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를 않는다는 말에 깊이 동감을 표하는 바이다.
사람이 변화하는 경우는 나의 뼈저린 연구에 의하면,
변화하지 않으면 자기 삶에 심대한 치명상이 남겨질 때,
에 국한된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는 지각하면 내 삶에 치명상이 생길 거 같은 경우엔,
지각을 하지 않았다. 수능이나 예대 입시 시험 치를 때, 입대할 때는 몇 시간이나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나에겐 더할 나위 없는 VIP인 그녀들을 만날 땐 또 어떠했는가?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없단 말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성실하게 나는 약속된 시간을 훌륭하게 준수했다.
그렇다면 지각하지 않는 방법도 위의 사실에서 얼추 추론해낼 수 있겠다.
모든 약속이 내 삶의 중대지사가 결정되는 임뽀떤뜨 뽀인트이며,
모든 약속의 대상자가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들의 분신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다. 이 다짐의 효력이 얼마 안 갈 것임을.
매 순간과 모든 인간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극한으로 피곤한 짓이니까.
그렇게 되면 인생이 피곤의 연속이겠지.
사실 알고 있다. 지각하지 않는 방법은 단순하다.
부지런해지면 된다. 그뿐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인생의 모든 문제는 간단하게 바라볼 때 풀린다.
부지런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