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린 그림, 발로 그린 건 절대 아님
제아무리 뒷간 같은 인생이어도,
인생 통틀어 인상적이며 감동적인 '결정적 장면' 하나만 있다면,
사람은 그 장면을 되새김질 해내는 힘으로
똥숫간에 쳐박혀 절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래, 나도 있다.
그 장면의 여주인공은 우리 외할머니이시다.
중1때, 나를 목욕시켜주셨다.
외할머니가 목욕시켜 주시기 전의 나는 혼자 집에 있었는데,
혼자 목욕 같은 걸 해서 깨끗해질 수는 없는 상태였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말이다.
나는 이 여주인공을 몹시 사랑하고,
돌아가신 지 6년째가 되었어도 여전히 나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다. 향기로우니까.
그러나 반성도 해본다.
내가 그 누군가의 인상적이며 감동적인 '결정적 장면' 하나에
감히 주인공은 언감생심이고, 엑스트라로서라도 등장했었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
좋은 추억이 없다면, 좋은 추억을 앞으로 만들면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말 한 번 참 쉽다, 고 생각했다.
어려운 말 아니니 더 열심히 만들어보자.
뒷간은 인간이 일평생 고작 하루 머무는 곳이다.
똥숫간에 쳐박히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