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강아지 유순이가 내 검지 손가락 만한
똥덩어리 하나를 싸면, 우리집은 유순이 똥냄새가
장악을 시작해. 이 작은 게 파워가 이리 커.
아님 내 방이 너무 작은 것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유순이 똥의 파워가 약하다고는 절대로 할 수가 없어.
정확히는 질량과 부피 대비 '공간 냄새 장악력'이 엄청 큰 거지.
이걸 치우려고 휴지로 집어 변기에 넣는데,
이 독한 냄새 때문이라 치자.
우울도 이런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어.
제 아무리 작은 우울이더라도 한 번 고개를 들면,
내 좁쌀스러운 심정을 우울이 장악해버리는 거 같아.
그런 억지 연관 관계를 만들면서,
그래도 부단히 이렇게 치우기에
냄새는 곧 사라지고,
내 작은 방이 똥덩어리들에 완전 장악되는 사태는
면하게 되는 거라고도 생각했어.
유순이가 똥을 싸기 전에는 유순이의 똥을 치울 수가 없는 것처럼,
우울이 생기기 전에는 우울을 처리하려 들지 않아도 돼.
다만 얘가 여기에 있단 걸 보게 되면,
자, 휴지를 손에 쥐고. 단호하게 집어들자.
변기로 가자. 살아 있기에 동반되는 현상인 것이다.
똥을 안 싸면 인간은 살 수가 없는 것과 비슷한 거야.
관건은 얼마나 건강한 우울이 배출되고, 성실하게 처리하느냐이다.
이건 숙명이다. 그래,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