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초의 여행은 2012년 초에
70일 간 떠났던 인도 여행이다.
나는 거기서 거지처럼 지냈다.
포식을 해본 적이 없다.
돈도 돈이지만 인도 음식은 나와 상극이었다.
한국음식점에서 한국음식이라 주장하는 그것들은
한국음식일 리가 없었다.
덕분에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몸에 덕지덕지 낀 지방이 무더운 인도 날씨의 서포트로
육수가 되어 매일 질질 흘러나왔다.
나의 주식은 초코비스킷과 콜라였다.
김치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순대국을 매일 밤마다 갈구했다.
그 국물을 한 숟가락만이라도 마시고 싶었다.
한국이 아닌 곳에선 한국음식을 섭취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고,
대외적으로 세계시민이라 자부하는 나는, 결국 그래도 한국사람이었던 것이다.
순대국 맛에 포박된 줄도 모른 채 나는 인도까지
무슨 용기로 갔던 것인가.
떠나고 싶어 무리를 해서라도 갔던 그곳에서
나는 자처하여 오히려 되돌아 가고 싶었다.
그 느려터진 국방부 시계마저 멈추지 않는다는 걸 목도했던 나는
그래도 인도의 시계도 멈추지 않을 것을 알았고,
나는 순대국에 대한 원대한 포부를 품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니까 그날, 나는 한국에 오자마자 냉큼 지인환을 만나 서울 면목동
동원시장에 있는 순대국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감이 되겠지만,
내가 그날 먹은 순대국은 지상에 우글대는 그 모든 미식 중에서
탑 오브 탑이었다,
라고 내가 여기에 적을 리는 없는 것이다.
나는 반도 안 먹었다. 못 먹겠더라. 왜?
내 머릿속에서 늘 동경해 마지 않았던
그 순대국의 맛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지,
지상엔 존재하지 않는 맛이었으므로.
판타지는 현실에 없다.
그러니 판타지에 관한 일체의 담론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라고도 내가 말할 리 없다.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매일 밤 입맛을 다셨던 그 맛.
비록 세상엔 없었지만, 그렇게 자꾸만 침을
꼴깍꼴깍 삼킬 수록 나는,
허기진 나의 인도에서의 신세 뿐 아니라,
내가 왜 인도에 굳이 무리해서 왔으며,
내가 대관절 무엇 때문에 한국을 지겨워 했고,
무엇에 관하여 공포를 품고 있는지
되새김질 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실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 판타지의 맛 덕분에
나는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고민하지 못할 뻔 했던 것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게 설령 비문으로 가득한 필담이었다한들,
그 배고프도록 외로웠던 이국에서의 밤은
내 인생 최대의 자산으로 보존되어 끊임없이 이자를 내게 찍어주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 나날들이 내 생애 가장 부유했던 시절로 언급되는 것이다.
또한 그 시절은 이왕 이렇게 계속 지연되는 거 차라리 베테랑청춘으로
우뚝서버리자는 억지를 당당하게 부릴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기어코 떠났던 한국으로 즐겁게 돌아왔던 것처럼
그날은 반드시 온다.
그래, 이런 말이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