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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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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팟은 그대로 있었고

by 김봉민 2018. 10. 20.



내가 태어난 이후의 일이다

나는 에어팟을 장만하고는 뽕을 뽑자는 일념으로 

대체적으로 어딜 가든 에어팟을 갖고 다닌다. 

용인 수지에서 여자친구와 술 마시고, 

여자친구와 택시를 이용해 서울 광진구로 올 때에도 

에어팟은 내게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문제였다. 


아무리 찾아도 에어팟이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케이스는 있다지만, 

20만원 남짓의 돈을 주고 산 지 채 4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술 마시고 택시에 둔 채 내린 걸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디서 왜 잃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우울했다. 에어팟에 투여되었던 돈도 돈이지만 

술 마시고 뭔가를 잃어버리면 

술이란 웬수를 들이킨 내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었다. 

당장 다시 에어팟을 사러 갈까도 싶었다.

그러나 극도로 우울하여 차마 그러지도 못 하고, 

이틀을 앓았다. 


그런데 에어팟은 내가 술 마신 날 입고 있었던 

남방의 앞주머니에 있었다.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내가 에어팟 케이스가 아니라, 

그저 남방에다 넣은 것 뿐이었다. 

에어팟은 그대로 있었고, 다만 나의 부정확한 

기억력 때문에 에어팟은 없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 되어 

내 머리속에서 다량의 우울함과 온갖 부정적인 것을 

야기했던 것이다. 남방에서 에어팟을 꺼내어 든 순간, 

나는 공짜로 에어팟을 10개는 선물 받은 것처럼 

즐거워 했다. 그건 원래 거기에 계속 있었는데, 

나의 기억 없음에 근거해 원래의 에어팟이 지니고 있던 

가치는 격상된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실종된 에피소드인가.



무언가가 내 것으로 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게 나한테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에 있다. 

내가 아무리 갖고 있다한들, 

내가 그게 나한테 있는 걸 잊으면, 

그걸 내가 써먹을 길이 없다. 


내게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산 게 참 많다. 


에어팟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몇 없는 것 중, 

어느샌가 거의 사용도 안 하는 뭔가가 있다. 

이번에 겪은 에어팟 에피소드와 같은 사태의 초대형 확장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거의 없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매일 느끼고 사용하고자 애를 써야 하는데.

부끄러운지 알아야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