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이후의 일이다
나는 에어팟을 장만하고는 뽕을 뽑자는 일념으로
대체적으로 어딜 가든 에어팟을 갖고 다닌다.
용인 수지에서 여자친구와 술 마시고,
여자친구와 택시를 이용해 서울 광진구로 올 때에도
에어팟은 내게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부터 문제였다.
아무리 찾아도 에어팟이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케이스는 있다지만,
20만원 남짓의 돈을 주고 산 지 채 4개월도
안 된 시점이었다. 술 마시고 택시에 둔 채 내린 걸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디서 왜 잃어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우울했다. 에어팟에 투여되었던 돈도 돈이지만
술 마시고 뭔가를 잃어버리면
술이란 웬수를 들이킨 내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었다.
당장 다시 에어팟을 사러 갈까도 싶었다.
그러나 극도로 우울하여 차마 그러지도 못 하고,
이틀을 앓았다.
그런데 에어팟은 내가 술 마신 날 입고 있었던
남방의 앞주머니에 있었다.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내가 에어팟 케이스가 아니라,
그저 남방에다 넣은 것 뿐이었다.
에어팟은 그대로 있었고, 다만 나의 부정확한
기억력 때문에 에어팟은 없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 되어
내 머리속에서 다량의 우울함과 온갖 부정적인 것을
야기했던 것이다. 남방에서 에어팟을 꺼내어 든 순간,
나는 공짜로 에어팟을 10개는 선물 받은 것처럼
즐거워 했다. 그건 원래 거기에 계속 있었는데,
나의 기억 없음에 근거해 원래의 에어팟이 지니고 있던
가치는 격상된 것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실종된 에피소드인가.
무언가가 내 것으로 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게 나한테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에 있다.
내가 아무리 갖고 있다한들,
내가 그게 나한테 있는 걸 잊으면,
그걸 내가 써먹을 길이 없다.
내게 있는 걸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산 게 참 많다.
에어팟뿐만 아니라,
내가 가진 몇 없는 것 중,
어느샌가 거의 사용도 안 하는 뭔가가 있다.
이번에 겪은 에어팟 에피소드와 같은 사태의 초대형 확장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거의 없다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매일 느끼고 사용하고자 애를 써야 하는데.
부끄러운지 알아야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