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들 다 제대한 후에 군대에 갔다.
입대하기 몇 주 전까지도 나는,
내가 왠지 군인이 안 될 거라고 확신했다.
내 몸 어딘가가 급속히 아파져서 그 때문에 군대를
안 가게 될 거라고 속으로 예언하고, 그걸 믿었다.
나는 잔병치레를 많이 해왔기에
그 자잘한, 그리고 아직 내 안에 은신한 채
잔류하고 있을 그 고통의 혁명군들이 일거에 들고일어나
혁명을 일으켜주길 바랐다. 막 너무 심하면 좀 곤란하니까
딱 내가 군대에 안 갈 정도로만.
그러나 2005년 11월 29일에도 나는 여전히
군대에 갈 정도로는 건강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국가의 거지 같은 명령에 따라 머리를 밀고,
만 22살, 그때까지의 내 인생을 돌이켜봤었다.
뭐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었다.
기뻤던 것들은 과거가 되어, 다시는 복귀하지 않을
예비군처럼 내 주변을 배회하며 나를 골려댈 것 같았다.
슬펐던 것들은 점점 동료들을 만나 덩치를 키우며
내게 틈만 나면 헤드락과 바디슬램과 초크슬램따위를
시전할 것 같았다.
그 예감은 다행히도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라고 쓰고 싶지만, 2년 동안 엄연한 현실로서
구체화 되었다. 군대에 가고 싶었던 것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나는 더 큰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정해진 고통을 받아드렸다.
왜냐하면 그건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할
의무였기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와 현실 회피는
구체적인 법령과 그것을 어겼을 때 돌아올 응징에 대한 공포를
이길 수 없다.
오늘 내가 막연하게 기대하는 건 뭔가.
내가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걸 그렇게 고착화시킨 거라면, 그 이유가 이번에도
구체적인 법령과 응징의 강도가 약해서인가.
서른다섯 내 인생은 아직도 공포의 입영 대상인가.
응?
오늘 내가 막연하게 기대하는 건 뭔가.
내가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답변을 내일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