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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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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입영 대상

by 김봉민 2018. 10. 4.



나는 친구들 다 제대한 후에 군대에 갔다. 

입대하기 몇 주 전까지도 나는,  

내가 왠지 군인이 안 될 거라고 확신했다. 

내 몸 어딘가가 급속히 아파져서 그 때문에 군대를 

안 가게 될 거라고 속으로 예언하고, 그걸 믿었다. 


나는 잔병치레를 많이 해왔기에 

그 자잘한, 그리고 아직 내 안에 은신한 채 

잔류하고 있을  그 고통의 혁명군들이 일거에 들고일어나 

혁명을 일으켜주길 바랐다. 막 너무 심하면 좀 곤란하니까 

딱 내가 군대에 안 갈 정도로만. 


그러나 2005년 11월 29일에도 나는 여전히 

군대에 갈 정도로는 건강했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국가의 거지 같은 명령에 따라 머리를 밀고, 

만 22살, 그때까지의 내 인생을 돌이켜봤었다. 


뭐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었다. 

기뻤던 것들은 과거가 되어, 다시는 복귀하지 않을 

예비군처럼 내 주변을 배회하며 나를 골려댈 것 같았다.

슬펐던 것들은 점점 동료들을 만나 덩치를 키우며 

내게 틈만 나면 헤드락과 바디슬램과 초크슬램따위를 

시전할 것 같았다. 


그 예감은 다행히도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라고 쓰고 싶지만, 2년 동안 엄연한 현실로서 

구체화 되었다. 군대에 가고 싶었던 것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나는 더 큰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정해진 고통을 받아드렸다.

왜냐하면 그건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할 

의무였기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와 현실 회피는 

구체적인 법령과 그것을 어겼을 때 돌아올 응징에 대한 공포를 

이길 수 없다. 


오늘 내가 막연하게 기대하는 건 뭔가. 

내가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걸 그렇게 고착화시킨 거라면, 그 이유가 이번에도 

구체적인 법령과 응징의 강도가 약해서인가. 



서른다섯 내 인생은 아직도 공포의 입영 대상인가. 



응? 




오늘 내가 막연하게 기대하는 건 뭔가. 

내가 현실을 회피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한 답변을 내일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