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뭐라고든 적고 잘 것이다.
두서 없이, 왜 이렇게 적는다는 행위에 대해 나는 심각하게 대하는가,
에 대해 써볼 태세다.
여태까지 여기저기에 흘리고 다닌 글들이 창피해죽겠다.
하지만 안 죽는다. 얼마 전에는 왼쪽 가슴이 아파
혼자선 유서라도 남겨야 하나 했다.
근육통이었는데, 그러고 있었으니 창피해죽겠다만, 안 죽는다.
어떠한 형태로든 새로운 결심과 다짐은 최대한 뒤로 미뤄두자.
재미가 없는 글을 쓰는 건 자랑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걸 참혹하게 여기자.
우습게도 방금도 다짐 같은 개념이 반영돼 있다.
나는 반성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계속 잘못했습니다, 앞으론 잘하겠습니다,
로 요약되는 인생을 살아왔다.
오늘 나는 멧돌에 대해 생각했다.
바다에서 무한히 돌아가며 바다를 짜게 하는 소금을 방출해낸다는
그 멧돌. 그런 게 세상에 있을 리는 없지만,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이해는
내 안에 있을 리 있다.
그 멧돌의 친척 중에는 사람의 마음에서
염분이 아니라 우울함을 계속 내보내며 돌고 있는 녀석도 있다.
그런 게 세상에 있다.
그걸 중화시키는 방법이 나는 글쓰기라고 우기고 싶은 심정이다.
눈을 떴을 때 오로지 제일 먼저 할 것이
그 글쓰기가 되면 좋겠다고 소원한 지 10년은 되었다.
10년이면 금강산도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안 변한다.
내가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적어서,
과연 내가 뭔가를 알고는 있는 건가, 싶다.
결심과 다짐. 그리고 반성.
그리고 우울함과 글쓰기.
나의 한계.
재미는 있어야 한다. (이것도 또 다짐이다..! 미칠 지경!)
그것이 설령 허튼 거라 해도, 재미는 있어야 한다.
노선을 변경하자. 이렇게 해선 반성이 자학이 될 것이다.
다짐과 결심을 최대한 뒤로 보류하지 말자.
최대한 많이 빌자. 걔 중 이뤄진 것만을
다짐과 결심의 명예의 전당에 전시하자.
이뤄지지 않은 것들의 희생이 있어 이뤄진 것이라 치자.
허접한 정신승리겠지만, 얼마간 시범 운영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럼 이제 자도 되겠다. 재미는 있어야 한다. 철칙이다.
잘 쓰려고는 하지 말자. 그래야 재밌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