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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민 2018. 9. 18.












.이 문서 만든 사람


<김봉민>

남. 서울 출생. 1984년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

연극 <형제의 밤>, <흑흑흑희희희> 작연출

현 ㈜ 오도시 대표




작문은 극도로 어렵다. 


정말로 어렵다. 너무 어려워서 너무 잘 쓰려는 원대한 야망을 품은 자들이 

숱하게 자살했을 정도다. 그러나 역으로, 부디 이 말에서 위안을 얻기 바란다. 

작문이 어려운 건 여러분이 머저리라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다. 

그저 작문이란 게 원래 어려워서 그런 것일 뿐이다. 노가다는 힘들다. 

노가다를 하면 응당 힘든 것처럼, 작문도 그래서 그런 것뿐이다. 


그러니 약간의 도움을 받고자 한터나 방송국 아카데미를 찾는 이가 

참말로 많다. 그런데 한 클라스에 수강생도 너무 많고 작문 피드백도 굉장히 

더디다는 증언이 많다. 수강료? 쌀 리가 없다. 


정말이지 이 문서를 보고, 또 보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또 연습하면, 합격이 가능할 것이다. 


글쓰기 학원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학원비가 얼마인가? 적지 않다. 아니, 많다. 

많단 말이다. 


돈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써야 한다. 

이건 내 신조이기도 하지만, 돈이든 시간이든 둘 중 하나도 투자하지 아니 하고 

실력 증강을 바라는 것은 양아치의 미덕이다. 여러분의 미덕일 리가 없다. 


이 문서를 통해 최소한 돈은 아낄 수 있다. 

대신 시간을 써야 한다. 시간 투자를 하면 그만큼 유용해질 것이다. 

그럼 일단 셀프연습법을 알아보자.

내가 온라인으로 언시생을 가르칠 때 짜주는 걸 공개하겠다.



0강. 셀프 수련법


자, 일단 2달을 목표로 삼도록 하자.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1. 뇌스트레칭 20분

2. 구체적으로쓰기: 하루 2개 -30분

3. 일기 : 시간 안배 알아서 

4. 교본 요약/하루 1강씩 : 20분

->  교본 요약 끝나면 작문 분석 하루에 3개씩 : 30분

-> 작문분석 끝나면 개요 및 로그라인 짜기, 하루에 3개씩 : 30분

-> 최소 주3회 작문 


이후에는 합격할 때까지 최소 주2회 작문을 하라!




근데 무슨 말인지 잘들 모르겠지?

모르는 단어는 이 교본 안에 다 있다. 그러니 이 교본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문분석법은 다음과 같다. 


*작문분석법


1) 로그라인

.미션형ᅠ

주인공 수식어:

욕망:

방해물(사람, 세력):

텐션형 

텐션 포인트 -ᅠ 

주인공 수식어 - 

액자 안 주인공 욕망ᅠ 



2) 개요 분석-

-서 :

- 본 1 :

- 본 2 :

- 본 3 :

- 결 :


3) 훅, 홀드, 페이오프 분석

훅 :

홀드 :

페이오프 :


4) 개선점 제시


5) 해당 작문에 대한 25자평



*작문분석 예시

1) 로그라인

-미션형 작문일 경우

미션:

주인공 수식어:

주인공 원초적 욕망:

방해 요소:


-텐션형(액자식) 작문일 경우

텐션 포인트:ᅠ

나는 지각인생을 살지만, 그렇다보니 차라리 여유가 생겼다. 액자 안 이야기의 미션:ᅠ늦은 나이에 외국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한 것


2) 개요 분석 (서본결)

서: 지각인생을 사는 나, 그러나 조바심 보다는 여유가 생긴 편이다.

본1: 지각인생의 대표적인 에피소드,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서  막무가내로 유학을 감.

본2: 힘들게 공부하면서 후회할 때도 있었음.

본3: 첫 시험 때 억울함에 겨워 흘린 눈물.

결: 눈물 = 절실함의 방증. 절실함이 있는 한 지각인생에 후회는 없다.


3) 훅 홀드 페이오프ᅠ

훅 : 정확한 분량 나눔. 3의 법칙. “지각인생”이라는 제목, 거기에 반전되는 내용

홀드 : 본123의 내용이 같은 분량에 따라 정확하게 구분되지만 내용적으로 이어지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고 결론을 향해 모두 달려가고 있음.

페이오프 : 마지막에 명확하게 잘 제시하면서도, 글 안에 잘 녹아 있음 


4) 장단점 및 개선사항 제시ᅠ

작가를 알고 봐서 그런지 손석희가 옆에서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평소 tv에 나오는 그의 모습처럼 이 글도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다. 내용적으로 연결이 자연스럽지만 형식이나 자기가 하고자하는 말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하다.

내가 보기엔 개선 할 점은 없는 것 같다


5) 25자평

글이 온몸으로 말한다. ‘나 손석희야!’ 라고





매일 작문 관련한 공부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매일해야 한다!

얼마나? 딱 3시간이다. 3시간 이상은 하지 마라. 보니까, 처음부터 무리해서 

시간 투자를 하면 나중에 다 지쳐서 나가떨어지더라. 안 한다고! 

헬스장 나가서 첫날부터 무리하면, 그다음엔 안 나가게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솔직히 평일에만 해도 된다. 2달이다. 길다. 

매일매일 할 거잖아. 주말엔 원래 해야 할 것을 하는 게 좋다. 

그게 뭐냐고? 티브이를 보든가, 책을 읽자. 

인풋 없이 아웃풋이 좋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매일매일, 2달동안 할 거니까 무리하지 말고, 

평일에만 꾸준히 한다고 맘 먹자. 

어렵지 않다. 단, 아마 스터디를 하는 게 좋을 거다. 

피드백을 받는 게 좋다. 같이 공부하는 언시생과 자기가 한 것을 비교하면서 

어제, 했는지 안 했는지를 서로 검사해주자. (근데 이게 제일 힘들 거다)


어떻게든 피드백을 받아라. 매일매일 해라. 무리는 하지 마라. 

2달 동안 꾸준히만 하자. 


참, 그런데 작문이 있어야 분석을 하든가 말든가 할 텐데.. 흠...

아랑 가면 작문 게시판 있지 않은가? 

거기서 대략 60개만 긁어서 자료 확보를 하도록 하자. 


또한, 로그라인과 개요를 짤 때 시제도 중요하다. 

막 아무거나 이상한 시제로 연습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특히 가장 별로인 시제의 부류가 있는데 그건 최근 이슈 관련한 

시제이다. 일테면, 월드컵 시즌 때 월드컵을 시제로 작문 연습하는 언시생 많다. 


근데 어차피 작문 시험 칠 때는 월드컵 시즌이 끝난 후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 시제들로 굳이 연습을 하겠다면 말리진 않겠다. 

어쨌든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무조건 나으니까.


그러나 내가 추천하는 시제로 연습해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아래 링크를 누르면 나온다. 어려운 시제가 많은데, 

어려운 시제로 연습해야 실제 시험 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운 시제로만 연습하다간 실제 시험 때 망할 확률이 당연히 아주 높단 걸 명심하자. 


https://www.evernote.com/l/AI7xAmNXpRxB_7DksKbv2ak_0h6MYbLnj90



1강. 뇌 스트레칭과 구체적으로 쓰기

1.뇌스트레칭 

: 가급적 가사가 없는 음악을 틀고, 그 음악을 들으며 최대한 자유롭게, 거의 방종에 가깝게, 

짧은 문장의 글을 쓰며 표현력을 기르는 글쓰기 연습법 


주의) 잘 쓰려고 하면 안 됨. 이건 어디까지나 연습이니까, 그리고 장난이니까, 

또한 세상을 살며 그냥 못해도 되는 거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는 거니까. 


.뇌 스트레칭의 효과

글을 쓸 때의 필터링(자기검열)을 완화시켜준다. 

필터링이 생기면 글을 못 쓰게 된다. 글쓰는 게 공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써도 되나, 고민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신적 압박이고, 

그러한 압박은 피로를 야기한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되면 

공포심을 느끼게 된다. 글쓰는 게 말 그대로 무서워지는 것이다. 


글쓰기 위해선 자기 생각을 자기 의지에 의거해, 아무런 자기검열도 없이

뇌에서 뇌 바깥-세상-으로 꺼내놓는 게 습관화되어야 한다. 

생각을 많이 꺼내자. 많이 꺼내면 고를 수 있게 된다.  

아이디어 하나만 갖고 뭔가를 쓰려는 것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우리는 그것을 ‘작문적 가난’이라고 부르자. 

아이디어 백 개 중에 최고의 하나를 갖고 쓰는 건 유리하다. 

우리는 그것을 ‘작문적 재벌’이라 부르자. 재벌이 되자. 


재벌이 되면 선택권이 생긴다. 

아니다 싶은 아이디어는 과감하게 버려도 된다. 

이미 아이디어가 많기 때문에 하나쯤 버려도 괜찮다. 

그리고 남들보다 참신한 아이디어는 살린다. 

아이디어 100개를 내놓으면 그 중에 하나 정도는 무조건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 괜찮은 아이디어를 밑바탕을 구체화 시켜 

작문하면 이미 태생적으로 남들보다 비교 우위에 서게 된다. 


뇌 스트레칭 예시 – 그린데이 21guns

.캐논 변주곡 변주하기.

.세상에 반항하지 않고 누구보다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락 밴드.

.곡식에 관련된 가요.

.가끔 드넓은 벌판이 두려울 때가 있다. 어디로든 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초조함. 이토록 넓은 벌판에서 그저 가만히 있기밖에 하지 않는다는 죄책감.

.그러니 내게 자유는 할당량만 주세요. 

.세금을 내는 래퍼.

.억압을 갈구하는 사람들.

.전자발찌는 적어도 목에 채워져야 한다.

.어젯밤 위층에서 쿵쿵 뛰는 소리 때문에 자다가 놀랐다. 이 집에 이사 온 후 첫 층간 소음이다. 우리 집은 제일 꼭대기 층이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방법은 따로 없다. 신경쓰고 정성 들이면 된다. 모든 것은 조금만 신경 쓰고 정성 들이면 대부분 어느 정도 예뻐지기 마련이다.

.내가 자기 전에 화장품을 다섯 개나 바르는 이유다.

.표범 무늬의 표본

.같은 예술이어도 노래나 춤은 너무 어렵다. 역시 글 쓰는 게 제일 좋다. 사실 글 쓰는 게 제일 어렵긴 하지만, 집이든 카페든 어디서든 쓸 수 있고, 밤낮으로 언제든 쓸 수 있으니까.

.반항적인 사람들도 예술을 하지만, 순종적인 사람도 예술을 한다.

.오늘은 꿈에서 친구와 말싸움을 해 이겼다. 깼을 때 그 어떤 꿈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말싸움을 아예 못하는 나는 애초에 말싸움을 하지 않는데, 유일하게 말싸움을 하는 상대는 엄마다. 엄마와 말싸움을 하면 대부분 내가 이긴다. 그리고 운다.




*거듭 얘기하지만, 잘하려고 하면 안 됨. 

그냥 하는 것임. 매일매일, 꼬박꼬박해야 됨. 


이것의 연습이 꾸준히 동반되었을 때,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 창출력이 생긴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가 머리에서 생기지 않는다. 


작문은 결국, 아이디어 하나를 구성력를 기반으로 구체화 시키는 것이다.


생각 없는 사람은 글을 아예 쓸 수가 없고, 

생각이 별로인 사람은 글도 별로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인정하자. 


그리고 연습하자. 참고로 이걸 매일 하다 보면,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더라. 

정말이다. 정신적 압박에서 해방되는 기분 때문이다.

이 뇌스트레칭은 정신 건강에도 좋은 것이다. 평생 취미로 가져도 좋을 거다.  



2.구체적으로 쓰기

글을 쓸 때는, 고유명사를 써 주는 게 좋다. 

디테일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주면, 현장감도 살고, 글이 더 ‘진짜’ 같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그냥 어렴풋 알고 있기보다, 이론화 시켜 자기 것을 만들면 바로 글에 적용하기에 더욱 수월하다. 


구체적으로 써주는 걸 늘 감안하자.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라는 단순 문장보다는,


"나는 그녀를 만나고 지구 평화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에볼라 창궐에 대한 대책 강구에 세계 각국 정상들이 더 많이 애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IS의 테러 행위가 박멸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조속한 안정화에도 신경쓰게 되었다. 에볼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IS 테러가 우리나라에 펼쳐지고, 후쿠시마 원자력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미치게 된다면, 행여 그녀의 무병장수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녀는 건강해야만 한다. 반드시 나와 함께 노인이 되어야 한다. 그녀가 늙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꾸준히 관찰하는 것이 내 유일한 꿈이 되었다."


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써주는 게 여러모로 글쓸 때 유리해진다. 

참신함도 생기고, 재미도 생기며, 생생해진다. 

-> 어렵게 말하자면, 이런 게 근래 문학의 대체적인 추세이다


예시)


야심

여의도 센트럴파크를 조망할 수 있는 랜드마크타워 펜트하우스에서 살겠다. 펜트하우스 테라스에서 에피타이저로 노루고기를 구워 먹으며 여의도의 야경을 감상하겠다. 여의도가 아니라면 합정 메세나폴리스 펜트하우스에 살겠다. 용산 센트럴파크타워 펜트하우스에 살겠다. 벤츠와 마세라티, 아우디를 전부 사서 하루에 한 대씩 바꿔 타겠다. 강화도와 제주도, 강릉에 별장을 지어놓고 휴가 시즌 때마다 친구들을 버스 리무진으로 초대하여ᅠ 최고급 한우를 구워먹는 바비큐 파티를 하겠다. 아침 점심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겠다. 작품을 쉬는 달에는 타이페이, 방콕, 마카오에 휴양을 가겠다. 몸이 뻐근할 때에는 아이슬란드로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서 레이캬비크의 온천수에 뭉친 근육을 풀겠다. 오늘 밥이 땡기는 것이 없으면 LA로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서 LA갈비를 먹겠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부터 현금을 끌어 모으는 대작을 만들겠다. 




다이슨 청소기의 모터기가 폭발하여 파편들이 내 목으로 날아와 꽂힐까봐 두렵다. 삼성 노트북이 과열로 폭발하여 액정이 내 얼굴을 녹일까봐 두렵다. 갤럭시S7의 배터리가 폭발할까봐 두렵다. 도화현대1차아파트 정문의 유리 천장이 깨져서 내 정수리에 박힐까봐 두렵다. 마포장난감대여점이 나에게 무너질까봐 두렵다. 공덕역을 IS가 폭탄테러를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코웨이 정수기에 누군가가 독극물을 풀어놓지는 않았을까 두렵다. 당산역에서 내리는 순간 아반테가 나를 박는 것은 아닐지 두렵다. 신한은행에서 내일부터 고객님과의 거래를 종료하며 예금액은 모두 몰수한다고 할까봐 두렵다. CJ헬로비전에서 기업 내부 정보 누설죄로 나를 고소할까봐 두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를 고소할까봐 두렵다. 고려대학교에서 이메일로 나의 입학기록과 졸업기록을 삭제한다고 통보할까봐 두렵다. 




거듭 말하지만, 고유명사 위주로 써줘야 한다.ᅠ


‘길거리’라고 쓰는 게 아니라, 

‘명동역 4번 출구 앞 거리’라고 써주는 게 고유명사 위주로 써주는 거다. 


책을 읽었다고 쓰면 손해다. 

‘미움 받을 용기’를 읽었다고 쓰는 게 낫다. 


노래를 들었다고 하는 것도 별로다. 

나훈아의 ‘영영’을 들었다고 써라. 아니면, 빅뱅의 ‘에라 모르겠다’를 들었다고 써라. 


개성이 확실히 부여되고, 생생함이 생긴다. 

철학책이 읽기 힘든 이유? 추상명사 위주여서, 이해하기 어렵다.ᅠ

소설책이 그나마 철학책보다 나은 이유?ᅠ

고유명사 위주라서. 생생하다. 진짜 같다. 읽을 맛이 난다.ᅠ

끝으로, 구체적으로 쓰기를 연습할 때 특히 이걸 헷갈려 하더라. 


기승전결 구조를 넣으려고 한단 말이다. 


그럼 그건 작문이 된다. 구체적으로 쓰기는 작문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구체적으로 쓰기일 뿐이다. 


기승전결을 빼고 써도 된다. 


글쓰기는 건축과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쓰기는 공구리 만드는 거라고 보면 된다. 

공구리는 콘크리트다.. 

구체적으로 쓰기 연습을 통해 공구리 생산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나중에 보게 될 로그라인과 개요짜기는 

건축 설계와 기초 공사, 뼈대를 세우는 거고. 

이걸 통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기승전결이 구축되는 것이다. 


그런데 로그라인과 개요짜기도 잘 모르면서,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겠다?! 

잘 될 리가 없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쓰기를 할 땐 구체적으로만 쓰면 된단 것이다. 

괜히 기승전결을 넣을 필요는 전연 없다. 



참고로, 아무리 설계와 기초 공사, 뼈대가 세우는 걸 잘했어도 

콘크리트가 눈 뜨고 못 볼 수준의 퀄리티라면, 그 건물은 망한다. 

양질의 공구리를 만들 줄 알아야 부실 공사가 안 된다. 

이 두 개가 동반되어야 좋은 건축물을 세울 수 있다. 


다른 것도 건축으로 설명을 좀 해볼까나. 


뇌스트레칭은 설계사와 노가다꾼이 일하기 전에 하는 몸풀기다. 

뇌스트레칭을 안 하면 생각이 잘 안 난다. 


그렇다면 이 교본을 읽고 있는 건?

건축언어를 배우는 거다. 


건축언어를 알아야 건축을 하지.

안 그런가? 



*구체적으로 쓰기를 위한 단어

: 철학자 스피노자가 분류한 인간의 48가지 감정이다. 이걸로 연습해보자.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반감 


박애 


연민 


회한 


당황 


경멸 


잔혹함 


욕망 


동경 


멸시 


절망 


음주욕 


과대평가 


호의 


환희 


영광 


감사 


겸손 


분노 


질투 


적의 


조롱 


욕정 


탐식 


두려움 


동정 


공손 


미움 


후회 


끌림 


치욕 


 


확신 


희망 


오만 


소심함 


쾌감 


슬픔 


수치심 


복수심 




이 48개를 하루에 2개씩만 하자. 

많이 할 필요는 없다. 2개 합쳐서 에이포 2/3장 정도만 해도 뭐 충분하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쓰지 않기의 예

작문: 어둠의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뉴욕의 5대 패밀리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콜레오네 패밀리의 저택에서는 결혼식 행사가 한창이었다. 바로 패밀리의 수장 비토 콜레오네의 막내딸인 코니 콜레오네의 결혼식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준비 중이었던 맏아들 산티노 콜레오네는 주변 경계와 결혼식의 여러 사무를 보며 돕고 있었고, 집안에서 하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셋째 아들 마이클 콜레오네는 여자친구 케이 아담스를 데리고 참석하긴 했지만, 별로 즐기지는 않고 있었다. 한편 비토는 톰 하겐과 집무실에서 자신에게 청탁을 하러 오는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장의사 보나세라의 딸의 폭행에 대한 살해 청탁을 들어 주며 그를 패밀리의 세력권으로 삼고, 사적인 원한 때문에 자신의 대자인 쟈니 폰테인의 영화 출연을 거부한 제작자 잭 월츠에게 마피아식 본때를 보여주는 등 '사업'을 해나간다.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고, 비토와 소니, 톰 하겐은 새롭게 떠오르는 마약 산업에 뛰어들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그때 버질 솔로조가 터키산 마약을 프렌치 커넥션을 통해서 미국으로 들여오자고 제안하고 그들에게 모든 패밀리가 손을 잡고 준비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흘리며 함께 마약 사업을 진행할 것을 제안하지만, 비토는 마약 사업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리고 버질 솔로조와 손을 잡은 타탈리아 패밀리를 정탐하기 위해 충직한 부하 루카 브라시를 보낸다. 그러나 루카 브라시는 이미 사업을 거절당한 솔로조와 타탈리아 패밀리가 짜 놓은 함정에 당해 허무하게 살해당하고, 비토 역시 길거리에서 타탈리아 패밀리의 총격을 받아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다. 맏아들 소니는 격분하여 곧장 타탈리아 패밀리를 공격해 타탈리아 패밀리 보스의 아들인 브루노 타탈리아를 죽여버린다. 한편 마이클은 아버지가 총에 맞아 저승 문턱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데이트를 하다가 신문을 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이클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마이클은 집무실에서 '사업'을 문제로 이어지는 난상토론을 뒤로하고 애인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 자리를 뜬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걱정된 마이클은 케이에게 다음을 기약하고 비토가 입원한 병원으로 간다. 보호받고 있어야 할 아버지가 경찰서장의 간섭에 의해 위험에 노출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에 분노한 마이클은 솔로초와 결탁한 서장까지 협상 자리에서 살해하겠다고 진언한다. 소니와 측근들은 잠깐 비웃었지만 이내 마이클이 진심인 것을 알아채고 피터 클레멘자를 붙여 그를 히트맨으로 파견을 준비하고, 마이클은 평화 협상을 가장한 식사 자리에 나간 뒤 버질 솔로초 및 그와 결탁한 부패 경찰 맥클러스키 서장을 쏘아 죽인 뒤 시칠리아로 피신하며, 복수의 칼날과 마약 사업 두고 뉴욕 5대 패밀리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 한편 비토는 회복세를 보이며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시칠리아로 피신한 마이클은 그곳에서 아폴로니아라는 여성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부하인 파브리지오의 배신으로 아폴로니아는 폭탄 테러로 인해 죽게 된다. 한편 뉴욕에서는 코니의 남편인 카를로가 바지니 패밀리 보스인 돈 바지니에게 포섭당하여 코니와의 불화와 폭행을 빌미로 다혈질적인 소니를 함정으로 끌어낸다. 바지니는 이를 타탈리아의 함정인 듯 꾸며 소니 콜레오네를 살해한다. 이를 계기로 병상에서 일어난 비토는 뉴욕 5대 패밀리의 평화 회담을 주선하여 타탈리아 패밀리와 화해하며 소니의 복수를 하지 않을 것을 담보로 마이클의 안전을 보장받아 후계를 잇게 한다. 또한 회담 중 비토는 이 모든 일(마약거래 도입과 소니의 살해)의 배후에 바지니가 있음을 직감하여 마이클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그 사이 뉴욕으로 되돌아온 마이클은 옛 연인인 케이를 다시 찾아가 적극적으로 청혼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비토는 은퇴 후 패밀리의 고문 자격으로 남아 일을 도우며 노후생활을 보낸다. 이후 마이클이 두목이 된 지 얼마 있지 않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비토가 세상을 떠난 직후 비토의 예상대로 장례식에서 바지니의 이중 스파이인 테시오를 시켜 마이클에게 접선을 요구했고, 마이클은 이를 소니의 죽음을 포함한 전쟁과 일련의 사건의 복수, 그리고 내부 인물의 숙청을 위한 기회로 이용한다. 마이클이 코니 딸의 세례식을 하는 사이 부하들을 시켜 자신을 제외한 뉴욕의 5대 패밀리의 수장들(빅터 스트라치, 카르미네 쿠네오, 필립 타탈리아, 에밀리오 바지니)을 모조리 살해하고, 라스베이거스로의 사업 진출에 걸림돌이 된 모 그린과 소니 살해의 매개 역할을 한 매제 카를로 리치, 그리고 아버지 비토의 옛 측근인 살 테시오까지 바지니의 스파이 셋의 숙청을 끝으로 대내외적인 이슈를 모두 해결하여 비토를 이은 차세대 돈 콜레오네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마이클과 측근들은 집무실에서 모든 사건의 해결을 가볍게 자축하며 이사를 준비한다. 그때 코니가 들이닥쳐 마이클에게 자신의 남편과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진정하지 못하는 코니를 간신히 내보내고 나자 부인인 케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진실 여부를 캐묻는다. 사업 문제는 절대로 묻지 말라 반복하다 이번 단 한 번만이라는 조건하에 질문을 허락한다. 케이의 진실인가라는 질문에 마이클은 그 자리에서 사실을 부인하고 이를 믿고 안심한 케이는 포옹을 하고 집무실을 나선다. 어느새 마이클의 측근들이 마이클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그를 새로운 보스 "돈 콜레오네"로 인정한다. 케이가 복잡한 심경으로 집무실 안을 살피고 끝으로 부하 알 네리가 집무실의 문을 닫으며 막을 내린다.




위의 글은 희대의 명작 영화 <대부>의 줄거리다. 

영화 <대부>는 알다시피 너무 재밌다. 훌륭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3시간 남짓의 서사 규모에 어울리는 것이다. 

에이포 1장 반에 그 이야기를 옮기면 이렇게 된다. 

한 문단 이상 읽기가 힘들다. 중간에 읽다가 포기한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다. 다 읽었는데, 만약 재밌다고 하는 사람은, 

내가 지은 ‘컬쳐 사이코패스’에 해당할 확률이 현저히 높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는 시간부터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작문 전형을 볼 때의 작문은 줄거리 요약이 되어선 안 된다.

줄거리 요약은 구체성이 없다는 걸 뜻한다. 

구체성을 확보하려면 구체적으로, 고유명사 위주로 써야 한다. 

이야기 속 시간은 10초 단위로 다룬다고 생각하고 쓰면 된다. 

거듭 말하는 덴 다 이유가 있다. 반복은 강조를 위해서다. 



2강. 형식과 재미의 이해

  1. 형식의 이해

.좋은 ‘짧은 작문’의 공통점

첫 번째, 주인공은 한 명이다. (혹은 두 명)

두 번째, 하나의 갈등이 존재한다.

세 번째, 시간은 하루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를 보여준다.


형식에 대한 이해가 우선으로 필요하다. 

단편에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장편에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치르게 되는 작문은 단편소설보다도 짧다. 

단편소설보다 더욱 압축적인 내용을 다뤄야 승산이 커진다. 


아래 작문을 읽어보자. 

참고로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쓴 작문이다. 


.좋은 ‘짧은 작문’ 예시


강남 마크힐스. 

한 채당 65억원에 달하는 국내 최고급 아파트.


22살, 나의 꿈이었다. 보는 것만으로 눈이 멀어버릴 듯한 웅장함과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아름다운 자태! 사나이로 태어나 이런 곳에 한번쯤 살아보지 않는 것은 청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믿었다. 사람들은 그 큰 돈을 어떻게 모으냐, 당장 먹고 살 돈도 없다, 못 오를 나무 쳐다보지도 마라 등등 그저 투덜대기 바쁘지만, 나는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 내 나이 22.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기에 충분히 젊은 나이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 꼭, 저 집에 살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당장 담배부터 끊었다. 마침 담배 값이 올라 나가는 돈이 꽤 되었는데, 이것만 모으더라도 큰 돈이 될 것이었다. 보자, 담배 한 값이 4500원, 내가 일주일에 다섯 갑을 피니까 일주일이면 22500원, 한 달이면.... 90000원! 담배만 끊어도 거의 10만원 가까이 아낄 수 있었다. 나는 당장 은행으로 달려가 적금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매달 아낀 담배 값에 만원을 더 보태 꼬박꼬박 10만원씩 저축하기로 했다. 벌써부터 뿌듯하지만, 이걸론 부족했다.


나는 대중교통비도 아껴보기로 했다. 사실 학교와 집 외엔 오갈 데도 별로 없고, 나는 두 다리 튼튼한 청춘 아닌가. 요즘 지하철, 버스비가 1100원 정도니까 하루에 한 번씩 이동한다 치면 왕복 2200원. 그렇게 한 달이면... 6만 6천원! 난 깔끔한 걸 좋아하는 남자니까, 교통비 통장에는 7만원씩 저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뭔가 부족했다. 좀 더 큰 뭔가가 필요하다.


그래,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뛰어야지. 당시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긴 했지만, 새벽에 신문을 돌리는 알바쯤은 충분히 추가로 소화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받던 돈은 생활비로 쓰기로 하고, 새벽알바에서 얻는 수입은 고스란히 저금하기로 했다. 한 달에 20만원이다. 좋아, 이거면 되겠어.   


그렇게, 수년이 지났다. 아르바이트를 성실히 한 덕에 나중에는 인력시장에 소문이 나게 되어 몇 가지 알바를 추가로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살다보니 정말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침내, 시간이 흘러,   


집 계약을 하는 날이 왔다. 


비록 강남의 마크힐스가 아니라 강서구의 마크홀스라는 아파트였지만, 나는 마침내 티끌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정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이라는데, 내 명의의 집을 가지게 되다니. 순간에 충실했던 내 젊음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 나이 104세 때의 일이다.  


사람들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지만, 그간 담배를 끊고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하며 이른 취침과 이른 기상의 규칙적인 생활을 해 온 덕에 나는 잔병치레 없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 앞으로 족히 10개월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아, 편안한 나의 집에서 여생을 마무리 할 수 있다니. 내가 얼마나 꿈꿔왔던 생활인가!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 역시, 불가능이란 없었다.  


-끝-




*우리가 써야 하는 작문의 분량은 너무도 짧다. 

그 분량에 맞는 좋은 글을 쓰려면 내용이 미니멀해야 한다. 

미니멀하다는 것은 ‘작다’라는 의미가 아니다.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 것은 다 제거해버린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너무 많은 것을 다루려다가 보면 분량은 물론, 

쓰는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위의 작문은 정말 재밌다. 정확히 1559자다. 

짧은 분량임을 감안해 정말 미니멀하게 내용을 다뤘다. 

주인공은 한 명이고, 갈등도 하나다. 


만약 등장인물이 5명이고, 갈등도 대략 3개라 치자. 

1500자에 어떻게 그 모든 걸 표현하나? 

못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매번 실수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PD의 꿈이 멀어지는 게 당연한 게 된다. 


그러니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최대한 간결한 이야기를 쓰자. 

주인공 한 명. 갈등도 하나. 

아무리 등장인물이 많아도 주인공 이외에 4명 이상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2. 재미란 무엇인가

여러분은 재미난 걸 써야 한다. 

재미없는 것이 예술적인 것과 같다 착각하고, 

재미없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래, 좋다. 그럼 재미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단순히 웃긴 것을 재미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것은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라는 책에 수록된 내용이다.


첫 번째로 hook. 참신함이다. 

다른 것들과 구별되게 하는 힘이다. 

hook을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좋다. 

글을 쓰기 전, 개요를 짜며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장착해야 한다. 글을 쓰면서 장착할 수는 없다. 


두 번째로 hold.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다. 

글에서는 웃음과 서스펜스 같은 요소가 존재하면 끝까지 읽는 힘이 발생한다. 

hold를 이루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등장인물을 만들어 내거나, 

집중을 깨트리는 비문을 쓰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맞춤법을 많이 틀리는 것도 hold를 무너트리는 요소다. 

글을 쓸 때 가장 유의해야 하는 사항이다. 

가장 다룰 것이 많고, 폭이 넓은 것으로서 첨삭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많이들 헷갈려하는 부분이다. 


세 번째로 pay- off. 로버트 맥키는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했으나, 됐다. 

너무 어렵다. 간단히 말해, 글이 끝난 후에도 

그 글을 읽은 사람으로부터 계속 언급되어야 한다는 거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언급되는 일이 없었다면, 그래서 입소문을 타지 않는다면, 

그것은 pay off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좋은 영화가 흥행하고, 좋은 예능의 시청률이 높은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입소문은 pay off가 발현되는 가장 주된 양상이다. 

그 영화 별로다, 라는 식의 악평은 pay off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선플만 pay off가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이 작문을 읽은 후, ‘이 친구는 면접 때 불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pay off가 작용했다 할 수 있다. 


근데 이걸 가르쳐놓으면 꼭, 그런 친구들이 있다.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야 페이오프가 있는 건가요?”


언시생들은 사회적 메시지에 환장을 했다. 

시교준비생이면 모르겠다.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작문을 쓸 필요가 있다. 

근데 예능준비생이? 왜 사회적 메시지를 꼭 넣어야 하는 건가?

무한도전 레전드편에 무슨 사회적 메시지를 기대하는가. 

그냥 고퀄로, 엄청 웃겼으면 그것도 예능적 페이오프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냥 ‘고퀄인 그 무엇’으로 페이오프를 받아드리자.




hook은 글의 초반, 

hold는 초반부터 끝까지, 

pay off는 결말부에서 글이 끝난 이후까지 이어진다.


훅, 홀드, 페이오프는 비단 우리가 쓰려는 작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TV 예능, 드라마, 다큐에도 있다. 영화도 물론이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며, 세상 모든 콘텐츠. 심지어는 아이폰, 갤럭시에도 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서 이 훅, 홀드, 페이오프가 있다. 

다만,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별로’인 것이 있다면 도태되는 것이다. 


MP3를 생각해보자. 처음 나왔을 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아이폰을 위시한 다양한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일단 ‘훅’이 떨어졌다. 

그러면서 홀드(스마트폰을 쓰는데 굳이 MP3를 갖고 다닐 이유가 사라졌다)와

페이오프(갖고 다니면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거 갖고 다니냐는 식으로 바라본다)가 

모두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사실상 아무도 안 쓴다. 


훅, 홀드, 페이오프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자소서를 써본 사람은 금방 알 것이다. 


훅, 홀드, 페이오프는 생각보다 심오하다. 

두고두고 머리에 박아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이전까지의 세상과는 

분명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참고 작문)

제시어: 서울


서울 최고의 양계장으로 불리는 일명 ‘샤 양계장’.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이곳엔 전국에서 내라하는 엘리트 닭들이 모인다. 햇빛이 쨍쨍인 오늘 유난히 닭들이 시끄럽다. 양계장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다들 제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꼬끼오~ 꼬끼오 꼬꼬꼬, 쉬지 않고 떠든다. 한번 이 닭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금 제일 시끄럽게 울고 있는 저 닭은 ‘수탉은 배 암탉은 항구 양계장’ 출신의 닭이다. 

“마! 내 사는 양계장에서 나가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으요~. 나가 이렇게 양계장 주인이 들어오므는 달리기 함 해주고 먹이도 맛나게 묵고 평소 점수를 많이 따놨지~. 평소부터 이 서울 양계장에 들어오려고 차근차근 잘 준비해왔단 말이여. 느그들도 월말 평가 했제? 마, 내는 즌부 만점이여 만점!” 


갑자기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푸드득 펼치며 날아온 저 닭은 ‘EXPO 밤바다 양계장’ 출신이다. 질세라 꼬끼오 꼬꼬꼭 외치고 있다.

“시방 여기 오려고 징하게 고생했다잉~. 나는 거 모범을 보였더니 양계장 주인이 추천해줘가꼬~ 여 서울 양계장 왔제! 다른 닭들이랑 다르게! 행실 바르게 깃털 좀 정리해주꼬, 주인이 나오라 그러문 나오고 드러가라하믄 들어가고 시키는대로 했더니 양계장 대표닭 추천서를 써주더라잉~. 나 보낼 땐 주인이 자랑스러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드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온 ‘호두과자 먹는 양계장’ 출신 닭이 말하려는 듯하다.

“우리... 주인이 말하길 지역마다 ‘샤 양계장’으로 올 수 있는 수가 정해져있다고 하던디유. 그래서 지는 우리 지역 출신 닭들이랑 경쟁을 했지유. 그서 1등을 해서 이리로 왔슈.”


저기 고상한 척 털을 휘날려주며 다가오는 닭은 ‘강남8학군 양계장’에서 온 닭이다.

“뭐 나는 너희처럼 1등을 했거나 모범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어. 공부했지, 공부. 우리 양계장에는 이곳 서울 양계장에 올 수 있는 일종의 매뉴얼 같은 게 있어. 그걸 소리내서 읽어보기도 하고, 열심히 외웠지. 그런데 움직이면서 하지 않았어. 살이 얼마나 찌는가가 그 매뉴얼을 잘 따랐는가의 척도가 되기도 했거든. 나는 월말평가 성적은 안 좋았지만 치느님능력시험 성적이 좋아. 그래서 여기 있지.”


계속해서 닭들이 자기 이야기를 꼬끼오 꼬꼬꼬 하고 있다. 오늘 안에 끝날 것 같지 않다. 그 와중에 자리를 비웠던 ‘샤 양계장’ 주인이 전화를 받으며 들어온다. 


“아 예 오늘 200마리요.”


‘샤 양계장’ 주인은 닭들의 모가지를 잡고 칼로 내리치고 깃털을 뽑는다. 가뜩이나 구분하기 힘들었던 닭은 다 똑같이 목이 잘리고, 껍질이 벗겨져 더욱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잘려진 닭대가리들은 쓰레기통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게 관악산 자락에 모였던 엘리트 닭들은 평범한 닭이 되었고, 튀겨지고 치킨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주문자가 원하는 맛으로 칠해졌다. 후라이드, 양념, 간장, 치즈.... 엘리트로 자랐던 그들은 서울의 중심 한강에서 인간의 지방으로 축적되었다. 


-끝-



*위의 <서울닭>과 <마크힐스>, 또한 자기 자신의 훅과 홀드, 페이오프를 분석해보시오.


<서울닭>

훅:

홀드:

페이오프:


<마크힐스>

훅:

홀드:

페이오프:


<본인>

훅:

홀드:

페이오프: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는 합격과 별로 관련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합격은 무엇을 위해 바라는 건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의 내 삶’을 알아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갈 것 아닌가?

그러니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네이버 기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며칠 동안만 멀리하고, 곰곰이 생각해보자. 




.작문도 다자인이다

일단 아래의 작문을 읽자. 

‘호시 신이치’라는 일본 국민작가의 글이다. 


<악을 저주하자> 


“도둑이야!”

해질녘의 도로에 여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자신의 가게로 향하던 바의 마담이 핸드백을 빼앗기고 지른 비명이었다. 

“저리로 도망갔어.”

“아냐, 이쪽이야.”

모여든 구경꾼들은 미인이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지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뛰어깠다. 뛰어갈 기회를 잃은 이들은 112에 전화를 걸었고 곧 경찰들이 도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경찰차에서 내린 경관이 말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핸드백을 낚아채 갔어요. 찾아주실 수 없으세요? 부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긴 놈이었습니까?”

“글쎄요, 젊은 남자 같았는데....”

그녀의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젊지는 않았어요. 저쪽으로 도망갔어요.”

“내가 보기에는 젊었어요. 이쪽으로 도망갔어요.”

모두들 요령부득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이래서는 수사를 할 수가 없어요. 뭔가 범인이 남기고 간 물건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실망한 마담은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았다. ‘백을 좀더 단단히 쥐고 있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환희에 찬 소리를 질렀다. 

“있어요!” 

“뭡니까?”

“범인이 이걸 남기고 갔어요. 보세요.”

그녀의 손가락에는 두서널 올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놀라서 팔을 뻗은 순간 그 사람 머리에 손이 닿은 것 같았는데, 이렇게 머리카락이 남아 있네요.”

“머리카락입니까?” 

경찰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있으면 곧 범인을 알 수 있잖아요. 어떤 추리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그럼 어서 범인을 찾아주세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찰은 머리카락을 받아 종이에 사기는 했지만 미덥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때, 구경꾼들 중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가 튀어 나왔다. 

“제가 돕겠습니다. 그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넌 뭐냐? 수사에 협력하겠다는 마음은 고맙지만 머리카락만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이걸 사용하면 됩니다.”

그가 보자기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자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어이, 장난치나? 볏짚 인형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그렇게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의심스러우시면 경관님의 머리카락을 한 올 줘 보십시오.”

경찰은 쓴 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뽑아 그에게 건넸다. 남자는 그 머리카락을 인형 안에 넣고 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 인형의 왼쪽 다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아파!”

소리를 지르며 경찰이 뛰어 오르자 구경꾼들의 목소리는 모두 감탄으로 변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마담의 눈이 반짝였다. 

“어서 그 머리카락을 그에게 주세요.” 

이렇게 되자 경찰도 머리카락을 건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있어. 하지만 먼저 내 머리카락을 돌려 줘.”

드디어 범인의 머리카락이 인형 속으로 들어갔다. 

“아주 아프게 해주세요.”

마담의 눈에는 여성 특유의 잔인함이 가득했다. 바늘은 팔, 배 할 것 없이 사정없이 찔러댔다. 경찰은 이것을 보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심문하도록 연락을 취했다. 

“가슴이랑 머리도 찌르세요.”

“맞다, 눈도 찌르세요.”

“더 찔러! 더 찔러!”

정의를 사랑하는 구경꾸들도 모두 합세하여, 그 주위에는 악을 저주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무렵 범인은 막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휴, 위험할 뻔 했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발을 벗고 대머리에 맺혀 있는 땀을 닦았다. 


-끝-



솔직히 일본의 국민작가가 쓴 글치고는 별로다. 

나쁘다고도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걸 두고 찬양할 생각은 일절도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왜 보자고 했을까? 


문단 띄어쓰기


때문이다. 뭐야, 그게! 라고 성낼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읽어야 제 맛이다. 

일단 다시, 위의 호시 신이치 선생이 쓴 <악을 저주하자>를 보도록 하자. 

내용도 내용이지만, 


읽기가 불편하다. 


왜냐? 문단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기 때문. 

책에는 저렇게 안 되어 있지만, 내가 임의로 저렇게 편집했다. 일부러 자간도 줄였다. 

읽기 불편한 글은, 말 그대로 읽기가 싫어진다. 

아무리 좋은 내용의 글이라도, 읽기가 싫어지면 중간에 그만 읽게 된다. 

장담한다. 10명 중에 1명은 위의 글을 읽다가 중도에 포기했을 거다. 


문단 띄어쓰기가 안 되어 있는 글은 읽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지 말자. 

여러분의 작문을 누가 읽는가? 돈을 지불하고, 여러분의 작문을 읽겠다고 자처한 독자인가? 

아니다. 갑이 읽는다. 명백한 ‘갑님’들께서 읽는다. 갑인 그들이 슬프지만을, 

혹은 병이나 정에 불과한 여러분의 글을 


왜 공들여서 읽어야 하는가?


여러분의 갑님들은 하루에 심하면 거의 400개의 작문을 읽는 수가 생긴다. 

대략 A4 기준으로 550페이지 정도를 읽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른바 문학역사상 3대 본좌로 내가 꼽는

셰익스피어, 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의 작품도 

하루에 몰아서 그렇게 읽는 게 쉽지 않다. 

위대한 작가의 글도 그렇게 안 읽는데, 어쩔 수 없이 '일'이라, 

여러분의 글을 읽는 상황이 유쾌할 순 없다. 


즉, 여러분의 갑님들은 노가다에 해당하는 글 읽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읽다가 불편함을 끼친다면 그대로 감점 요인이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중간에 읽다가 만다. 그건 탈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대한 읽기 쉽게 써야 합니다. 

중간에 읽다가 읽기 불편해서 본인의 인생이 걸린 작문을 

갑님께서 짜증과 함께 제껴버리는 고난을 당하기 싫다면 말이다. 

그러니 위의 <악을 저주하자>도 이렇게 바꿔야 마땅하겠다. 


<악을 저주하자> 


“도둑이야!”

해질녘의 도로에 여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자신의 가게로 향하던 바의 마담이 핸드백을 빼앗기고 지른 비명이었다. 

“저리로 도망갔어.”

“아냐, 이쪽이야.”

모여든 구경꾼들은 미인이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인지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뛰어깠다. 뛰어갈 기회를 잃은 이들은 112에 전화를 걸었고 곧 경찰들이 도착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경찰차에서 내린 경관이 말했다. 

“눈 깜빡할 사이에 핸드백을 낚아채 갔어요. 찾아주실 수 없으세요? 부탁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생긴 놈이었습니까?”

“글쎄요, 젊은 남자 같았는데....”

그녀의 대답은 신통치 않았다. 그러자 구경꾼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젊지는 않았어요. 저쪽으로 도망갔어요.”

“내가 보기에는 젊었어요. 이쪽으로 도망갔어요.”

모두들 요령부득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이래서는 수사를 할 수가 없어요. 뭔가 범인이 남기고 간 물건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실망한 마담은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았다. ‘백을 좀더 단단히 쥐고 있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환희에 찬 소리를 질렀다. 

“있어요!” 

“뭡니까?”

“범인이 이걸 남기고 갔어요. 보세요.”



그녀의 손가락에는 두서널 올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놀라서 팔을 뻗은 순간 그 사람 머리에 손이 닿은 것 같았는데, 이렇게 머리카락이 남아 있네요.”

“머리카락입니까?” 

경찰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있으면 곧 범인을 알 수 있잖아요. 어떤 추리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그럼 어서 범인을 찾아주세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찰은 머리카락을 받아 종이에 싸기는 했지만 미덥지 않게 대답했다. 

그런데 이때, 구경꾼들 중에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가 튀어 나왔다. 

“제가 돕겠습니다. 그 정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넌 뭐냐? 수사에 협력하겠다는 마음은 고맙지만 머리카락만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이걸 사용하면 됩니다.”

그가 보자기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자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어이, 장난치나? 볏짚 인형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그렇게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의심스러우시면 경관님의 머리카락을 한 올 줘 보십시오.”

경찰은 쓴 웃음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뽑아 그에게 건넸다. 남자는 그 머리카락을 인형 안에 넣고 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 인형의 왼쪽 다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아파!”

소리를 지르며 경찰이 뛰어 오르자 구경꾼들의 목소리는 모두 감탄으로 변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마담의 눈이 반짝였다. 

“어서 그 머리카락을 그에게 주세요.” 

이렇게 되자 경찰도 머리카락을 건네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있어. 하지만 먼저 내 머리카락을 돌려 줘.”

드디어 범인의 머리카락이 인형 속으로 들어갔다. 

“아주 아프게 해주세요.”

마담의 눈에는 여성 특유의 잔인함이 가득했다. 바늘은 팔, 배 할 것 없이 사정없이 찔러댔다. 경찰은 이것을 보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심문하도록 연락을 취했다. 

“가슴이랑 머리도 찌르세요.”

“맞다, 눈도 찌르세요.”

“더 찔러! 더 찔러!”

정의를 사랑하는 구경꾸들도 모두 합세하여, 그 주위에는 악을 저주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무렵 범인은 막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휴, 위험할 뻔 했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가발을 벗고 대머리에 맺혀 있는 땀을 닦았다. 



-끝-



이 글의 구조를 <서 - 본1 - 본2 - 본3 - 결>로 나눈 후

각 소개요에 해당하는 문단이 끝날 때마다 엔터를 두 번씩 쳤다. 

실제 손글씨로 쓸 때도 문단과 문단을 꽤 떨어트리는 게 좋다. 

이렇게 하니, 문단 간 간격이 넓어지고 읽을 때 불편함이 사라진다. 

읽기 전에도 이 문단 띄어쓰기 신공의 효과는 유효하다. 

가정을 해보자. 갑님께서 채점을 위해 페이퍼를 받았을 땐 어떨 것 같은가?


따닥따닥 행간이 붙어있는 글은 읽기도 전에 그냥 읽기 싫다. 

어쩌면 읽기도 전에 그냥 제낄 수도 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작문도 디자인이다



아무리 창의적이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도 제대로 된 전달법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다. 

또한, 작문도 디자인이라는 걸 염두하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작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나름의 잔기술도 보이게 된다. 



1. 글씨가 예뻐야 한다. 

: 개발새발로 쓰인 글을 누가 읽고 싶은가?

심각한 악필이라면, 작문은 둘째고, 일단 악필부터 교정해야 한다. 

학원은 너무 비싸니까 서점으로 가서 악필 교정 교재를 사자. 

아무리 글의 내용이 좋아도, 악필의 글은 정말이지 읽다가 그만 읽고 싶다는 

충동을 자아낸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슬프지만 정확한 현실을 인정하자. 



2. 쓰다가 고친 공사 중 흔적도 줄여라. 

: 읽기 전 공사중 흔적이 많은 게 보이면 진짜 읽기 싫다. 

그냥 생각 없이 대충 써버린 글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갑님께선 그런 작문은 애초에 제껴내는 게 효율성 측면에서 낫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3. 힘을 주고 싶은 문장, 단어가 있다면 칸 띄어쓰기 신공을 활용하자. 

: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 본문에도 수두룩하게 내가 써먹었다. 바로 위에서 찾아보자. 



찾았는가? 그렇다. '작문도 디자인이다'라는 문장을 강조하고 싶어서 

저렇게 칸을 띄었다. 저렇게 하면, 당연히 저 문장에 강조가 된다. 

일부러 글씨도 크게 했다. 볼드처리도 했다. 

이렇게 하면 이른바 ‘하이라이트 효과’가 생긴다. 


여러분의 작문 중에서도 '주제'에 해당하는 문장은 

저런 테크닉을 써먹을 법 하다. 

혹은 '웃긴 문장'이거나, '중요한 정보의 제공'에도 가능하다. 

강조해서 갑님에게 어필해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면, 

써먹자.  남들보다 하나라도 나아야 통과가 된다. 


단, 너무 남발하면, 글이 지저분해지는 걸 명심하자. 

A4 1장 반 기준, 3번 이상은 시도하지 않는 걸 기준으로 삼자. 

강조의 남발은, 강조의 확장이 아니라, 아무것도 강조가 되지 않는 

평범함으로의 회귀가 되어버린다. 3번 이상은 하지 말자. 


결론) 1. 글도 보기 좋게 써야 한다.

      2. 디자인적 요소를 작문에 적절히 도입하라.



3강. 개요 짜기의 중요성 #1

.개요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장에 들어가 ‘작문을 창작’하겠다는 것은, ‘탈락하고 싶어요’라는 말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창작은 ‘0에서 100까지’를 가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90분, 혹은 그 시간 안에 그걸 하겠다고? 너무 리스크가 크다. 

운의 영역에 자신의 운명을 올인하겠다는 것을 나는 극구 말리고 싶다. 


운이 아니라, 자기 실력에 맡겨야 한다.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모방’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모방의 대상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좋은 단편소설? 안 된다. 단편소설은 단편소설이고, 우리가 다루는 작문은 그보다도 

10배는 짧다.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위에서 읽었던 ‘마크힐스’ 같은 작문을 읽고, 

단순 ‘잘 썼네’라고 감상하는 습관은 뿌리 뽑아야 한다. 

여러분은 감상자가 아니라, 실제로 써야 하는 ‘제작자’의 영역에 들어오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 마인드를 버리고, 프로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 

프로는 감상만 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미덕이다. 

프로는 분석해야 한다. 어떻게 쓰여졌는지 개요를 짜보고, 자신만의 노트에 정리하라. 


정리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자신의 작문 실력이 늘 거라고?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런 기적은 바로 펼쳐지지 않는다. 

아는 것을 토대로 4~5번 꾸준히 연습해야 비로소 ‘마크힐스’ 같은 작문을 쓰는 사람의 역량이 

자신에게도 장착됐다 할 수 있다. 분석하는 이유는 나에게 도입하기 위함이다. 

아는 걸 써먹지 못 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그 지식은 사실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작문 실력이 높아지면 굳이 시험장에 가 ‘창작’을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0에서 50까지’는 자신이 연습한 작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가 된다. 

안정성이 확보된다. 절반의 내공만 시험장에 가서 쓰면 된다. 


결론) 감상하지 마라! 분석하라! 

분석한 지식을 나의 글쓰기에 도입하라! 



작문 분석법은 위에 보면 나와 있다. 

그러나 까먹었을 걸? 그러니 다시 알려주겠다. 후아. 


어서 아랑으로 가 

작문게시판으로 가서 작문 60개를 확보하는 것도 잊지 말자. 



*작문분석법


1) 로그라인

.미션형ᅠ

주인공 수식어:

욕망:

방해물(사람, 세력):

텐션형 

텐션 포인트 -ᅠ 

주인공 수식어 - 

액자 안 주인공 욕망ᅠ 



2) 개요 분석-

-서 :

- 본 1 :

- 본 2 :

- 본 3 :

- 결 :


3) 훅, 홀드, 페이오프 분석

훅 :

홀드 :

페이오프 :


4) 개선점 제시


5) 해당 작문에 대한 25자평



*작문분석 예시

1) 로그라인

-미션형 작문일 경우

미션:

주인공 수식어:

주인공 원초적 욕망:

방해 요소:


-텐션형(액자식) 작문일 경우

텐션 포인트:ᅠ

나는 지각인생을 살지만, 그렇다보니 차라리 여유가 생겼다. 액자 안 이야기의 미션:ᅠ늦은 나이에 외국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한 것


2) 개요 분석 (서본결)

서: 지각인생을 사는 나, 그러나 조바심 보다는 여유가 생긴 편이다.

본1: 지각인생의 대표적인 에피소드,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서  막무가내로 유학을 감.

본2: 힘들게 공부하면서 후회할 때도 있었음.

본3: 첫 시험 때 억울함에 겨워 흘린 눈물.

결: 눈물 = 절실함의 방증. 절실함이 있는 한 지각인생에 후회는 없다.


3) 훅 홀드 페이오프ᅠ

훅 : 정확한 분량 나눔. 3의 법칙. “지각인생”이라는 제목, 거기에 반전되는 내용

홀드 : 본123의 내용이 같은 분량에 따라 정확하게 구분되지만 내용적으로 이어지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고 결론을 향해 모두 달려가고 있음.

페이오프 : 마지막에 명확하게 잘 제시하면서도, 글 안에 잘 녹아 있음 


4) 장단점 및 개선사항 제시ᅠ

작가를 알고 봐서 그런지 손석희가 옆에서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평소 tv에 나오는 그의 모습처럼 이 글도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다. 내용적으로 연결이 자연스럽지만 형식이나 자기가 하고자하는 말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하다.

내가 보기엔 개선 할 점은 없는 것 같다


5) 25자평

글이 온몸으로 말한다. ‘나 손석희야!’ 라고





.훅과의 연계성

글을 쓰기 전에 로그라인과 개요를 짜는 것은 건축에 들어가기 전, 

건물의 설계도를 그린 것과 같다. 

누누이 언급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눈물나게 중요하다. 

로그라인과 개요가 똥이면 당연히 작문도 똥이 된다. 

개요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계획이 나왔다 치자. 


‘못 생긴 사람이 성형수술해서 예뻐지는 이야기’


이렇게 계획이 되면, 실제 글쓰기에서도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허나, 보자. 저 전제는 어디서 숱하게, 정말 지긋지긋하게, 본 것 같다. 

훅이 딸린다. 

천하의 셰익스피어가 부활하여 저 전제(개요)를 갖고 글을 쓴다한들

막막함에 치를 떨 것이다. 


로그라인과 개요 만들기 단계에서 훅을 장착하지 않고, 

또한 전체 구조의 틀을 고퀄로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쓰기에 돌입하는 것은 

‘저 불합격 하고 싶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못 생긴 사람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에서 제일 못 생겨져셔 유명해지려고,

더 못 생겨지기 위한 성형수술을 하는 이야기’


이게 낫지 않은가? 훅이 생기지 않는가? 원래 만들었던 것보다 기대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로그라인과 개요를 짤 때 훅을 확보하자. 


될 때까지 해라. 90분 기준, 15분 동안 최소 하나의 개요는 

고퀄이 나올 때까지 연습하자. 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니 

어설프게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말고, 하고, 또 하자. 


고통이 수반되는 반복을 통한 강화 훈련 없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양아치의 근성이다. 여러분은 양아치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응당 치러야 할 것은 치르자. 



.시간 안배 계획

일단 아래 글을 읽도록 하자. 


<지각인생>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 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의 글을 손석희 사장이 왕~년에 신문에 투고했던 글이다. (잘 썼다)

이 글의 개요를 나눠보면 이렇다. 


서: 나는 지각인생을 산다. 

본1: 미국 유학을 갔었다

본2: 외지에서 겪은 만학도로서의 고충

본3: 연구실에서 울기까지 했다

결: 그러나 후회없는 나의 지각인생 


각각의 소개요가 얼마만큼 쓰여졌는지 살펴보자. 

분량체크를 해보면, 답이 나와있다. 

거의 수학에 가까울 정도로 1/5씩 쓰여졌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 더 보자. 


다음은 피천득의 ‘인연’. 한국 문학사에서 수필로서 최고점에 위치하는

걸작 수필이니 경외감을 갖고 읽도록 하자. 


인연(因緣) 


-피천득(皮千得)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 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연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와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끝-




서와 결의 분량은 각각 3줄. 완전히 같다. 

(춘천으로 시작해서 춘천으로 끝내는 수미상관도 확인하자)


본1,2,3도 살펴보자. 각각의 분량이 거의 같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확한 분량의 안배가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달을 충실히 약속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그 이유는 이것이 아무도 쉽사리 말해주지 않는, 


‘스토리텔링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지각인생식’으로 1/5씩 안배하는 게 좀 더 쉬운 게 사실이다. 

흉내를 내야 한다. 모방을 해야 한다. 

이것을 자신의 글쓰기에도 적용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적용을 한다면, 

한 가지 거대한 팁을 발견할 수 있다. 


시험시간을 90분이라 가정했을 때,

개요짜는 데 15분. 글쓰는 데 총 75분. 


서: 15분

본1: 15분

본2: 15분

본3: 15분

결: 15분


총 75분. 이렇게 계획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시험장에 가서 작문 용지를 받으면 일단 앞면을 5등분 하고 작게 체크하자. 

그리고 서론을 체크한 딱 그만큼만 쓰자. 시간은 15분. 

시간 체크하면서 나머지 소개요도 쓰면, 시간 없어 글을 못 쓰는 

최악의 불상사는 방지할 수 있고, 불합격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몹시 커진다. 



4강. 개요짜기의 중요성 #2

.개요짤 때의 명심할 것

-개요를 짤 때 반작문화 되는 경우가 있다. 피해야 한다. 

개요는 자기만 알아보면 된다. 짤막하게, 소개요의 제목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만들자. 

-최대한 많은 개요를 작성하라. 15분 동안 하나만 짜고, 그걸로 짜는 게 낫겠는가? 아니면 15분 동안 4개를 짜고 그 중 제일 좋은 걸 짜는 게 낫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최소 3개는 짤 수 있어야 한다. 연습하면 당연히 된다. 안 되는 거 없다. 많이 짜는 사람은 5개도 짠다. 당연히 후에 합격했다. 

-남의 개요도 잘 봐주고 충고를 해주는 건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다. 자기가 짠 개요를 자기 스스로 객관적으로 보는 건 몹시도 어려운 일이지만, 남의 개요를 볼 땐 ‘개요 판단의 객관화’가 가능하다. 객관적인 눈을 키워 차츰 자기가 짠 개요도 객관적으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그만큼 합격에 가까워지는 거라 할 수 있다. 



.‘3의 법칙’의 이해와 적용

참고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d21704exSHs




[서]

전국 시대 위 혜왕은 조와 강화를 맺고 세자를 볼모로 보내게 되었다. 세자를 혼자 보낼 수 없어 방총이란 대신을 따라가게 했는데, 그는 출발하기 전 혜왕에게 물었다.


[본1]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을 거요."

"만약 세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땐 믿어야겠지."


[본2]

방총은 한숨을 내쉬고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은 어린애도 속지 않을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짓말도 자꾸 반복하다 보면 진실이 되는 법이지요. 신은 이제 떠나거니와, 아마도 신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여럿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쪼록 전하께서는 이 점을 참작해 주십시오."

"과인이 어찌 경을 의심하겠소? 안심하고 떠나도록 하오."


[본3]

방총이 떠나자 그를 헐뜯는 참소가 임금의 귀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혜왕은 처음에는 듣지도 않았으나, 그를 참소하는 말이 점점 많아지자 자신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결]

몇 년 후 세자는 귀국하였지만, 방총은 혜왕의 의심으로 인해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만약 세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그땐 믿어야겠지.“ 전국시대이면, 기원전이다. 그런데도 저렇다. 

지금과 달라진 게 없다. 인간은 3을 믿는다.


3은 인간 설득에 있어서 완전수다. 

과학이다.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3단논법도 우연이 아니다. 

3개의 과정이나 논거가 모이면 인간은 설득 당하게 된다. 


그러니 3의 법칙을 이야기에 이용하라.

자신의 이야기에 ‘3의 법칙’을 활용해 설득력을 사자. 

3의 법칙을 활용하면 픽션은 명백히 가짜이지만,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들 수 있다. 


- 유비가 제갈량을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 제갈량이 단번에 유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허무개그도 못 되는 이야기가 된다. 유비가 세번 제갈량을 찾아가서 설득한 결과로 ‘삼고초려’라는 이야기가 만들어 진 것이다.

- 피천득의 ‘인연’에서도 아사코와 주인공은 세 번 만난다. 그러니 ‘인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결말에 이르러서도 우리가 설등 당하는 것이다. 만약 아사코와 주인공이 한 번 만났는데 결말에서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 위의 방총과 세자, 혜왕의 이야기. (세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믿게 된다)


-> 그래서 본도 3개다. 

본이 3개로 구성되면 결말에 이르러서 설득력이 저절로 보태진다. 

이야기도 크게 봤을 때 <서(시작)-본(중간)–결(끝)>. 3개로 이뤄진다. 

그래야 설득력이 생기니, 이렇게 아예 법칙처럼 자리잡아버렸다. 

이 법칙을 일단 사용해야 한다. 애매하게 예술가적 탐험의 시도를 한답시고 

괴이한 구조의 이야기를 시험장 가서 쓰지 말자. 그런 건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하자. 



.아크플롯, 안티플롯, 미니플롯

아크플롯이란, 기승전결이 뚜렷한 고전적 이야기 설계법이다. 이것은 영원히 잘 먹힐 수밖에 없는 플롯이다.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 아크플롯을 활용한다. 관객을 가장 잘 설득시키는 플롯이다. ‘3의 법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플롯이다. ‘구체적으로 쓰기’가 적용되었다 생각하면 된다. 


안티플롯은 부조리극이다. 기존 규범을 파괴하는 것으로, 주로 실험적인 영화가 안티플롯을 가지고 있다. 미술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를테면 다다이즘이 그렇다.


미니플롯은 열린 결말, 수동적인 인물들, 뚜렷하지 않은 기승전결을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 ‘기-승’만 있거나 ‘기-결’로 끝나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크플롯보다 미니(작다)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면 된다.



아크플롯이 다른 2개보다 더 낫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각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들은 모두 인정 받는다. 허나, 여러분에게 나는 아크플롯을 일단 ‘강요’하겠다. 


왜냐? 미니플롯과 안티플롯은 아크플롯에 대한 저항감에 근거해 20세기 초에 파생된 것이다. 파생됐다 함은, 안티플롯과 미니플롯의 이야기를 만들 땐 꼭 아크플롯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엄청난 공부와 인내와 연구와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소위 어렵고 난해하다고 말하는 소설이나 이야기들은 죄다 안티플롯이나 미니플롯인데, 그 소설들을 말 그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갑님들께 그 이해하기 어려운 플롯의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하고 합격까지 시켜달라는 것은 ‘역갑질’이 아닐 수 없다. 안티플롯이나 미니플롯을 활용하고 싶어하는 이들 중엔 예술가병에 걸렸거나 작문 초하수인 사람이 많다. 쉽고 정확하게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요구하고 있는 아크플롯부터 처절하게 공부하자. 제발. 


여러분이 짜야 할 개요는 명명백백 아크플롯에 대한 개요뿐이란 것을 잊지 말자!






참고 작문)

[제시어 : 잘생겼다]


“풀밭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거야.”


 공원 풀밭에 누워 건넨 아버지의 첫 마디. 궁금했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과연 어떤 행복인지.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을 바라보실 뿐. 매번 회사 일로 지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아버지. 어린 나로서는 그런 아버지의 머릿속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으로 가득 찼을 것이라 확신했다. 피곤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그런 공간에서. 나 또한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에 빠져있었다.


‘수험번호 100210. K대학교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피땀 흘리며 공들였던 6년의 세월이 허망해지는 순간. 내 표정을 읽은 듯 어머니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SKY를 희망하는 학부모 중 하나였으니까. 나 또한 어머니만큼이나 하늘(SKY)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 화창한 하늘을 비상하리라는 희망을 품으며 10대의 절반을 바쳤다. 그 하늘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러나 오늘 그 하늘은 무너졌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서 자습서를 꺼내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광활하고 푸른 하늘의 자유를 만끽하리라. 이제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의 방으로 돌아와 자습서를 펼쳐든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좀 더 높이 날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야욕에 과감하게 첫 1년의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물론 어머니의 바람대로 하늘(SKY)을 나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제법 괜찮은 대학에 입학했다. 무엇보다도 창공을 날아다닐 생각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아직 자유롭게 날기에는 아직 난 많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취업을 해야 진정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지’라는 친구들의 걱정 어린 조언에 뒤늦게 부랴부랴 새로운 하늘을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직장을 구하는 때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비상(飛上)의 공간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일자리는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도 난 어딘가에 숨어 있을 내 하늘을 찾고 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변변치 않으나 제법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직장에 가까스로 입사할 수 있었다. 새로운 하늘을 맞이하니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이 된다. 그래도 내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리라 호기롭게 회사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 안의 삶은 회사 밖의 삶과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이겨내는 경쟁의 치열함 속에서 인간관계는 어느덧 관리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날아다니고 싶다는 꿈은 그저 포장된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할 일만을 묵묵히 해내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애초에 계약된 내용이었으니. 그걸 받아들인 나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주변 동료들은 ‘내 이 더러워서 올해까지만 일하고 때려친다.’라고 투덜대며 이직을 꿈꾼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곳 또한 그대들이 바라는 찬란한 하늘은 아니라는 것을. 


 야근이 끝났다. 어느덧 오후 9시다. 회사 밖을 나서니 하늘이 컴컴하다. 새들이 날아다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사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다 보니, 지구에 제대로 하늘이 붙어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늘이 전부 무너진 것이 확실하다. 하늘이 무너진 빈자리에는 매연과 술 내음새로 가득하다. 답답한 회사의 공기를 벗어났다 싶었지만 바깥의 공기도 생각만큼 상쾌하진 않았다. 정녕 내가 편히 숨 쉴 수 있는 하늘은 없는 것인가. 무너진 하늘을 바라보며, 순간 아버지와 함께 바라본 하늘이 생각난다. 그 하늘은 굳이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저 공원에 누워 고개를 치켜들며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휴식을 가져다 줄 뿐. 그것이야 말로 이제껏 나내가 그토록 바라던 하늘이다. 그간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엉뚱한 하늘을 좇아 돌아다닌 건 아닐런지 후회가 밀려온다. 내일 출근길에는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하늘이 무너지지 않고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물론 해내기란 쉽지만은 않을 듯. 오늘 회식을 제대로 견뎌낼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니까. 



-끝-




100% 장담한다. 이렇게 써서는 합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도 100% 장담할 수 있다. 경험 상, 

이런 류의 작문을 쓰는 자가 8할 이상인 것을. 


떨어지는 덴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태까지 배운 테크닉을 기반으로 이 작문을 최대한 분석하고, 

왜 이렇게까지 내가 이 작문을 혹독하게 취급하는지 궁리해보자. 

그리고 그 대답이 나름 나왔다면, 자신의 노트에 그 대답을 큼지막하게 써놓자. 

이런 작문을 써서는 합격할 수가 없으니, 뼈에 새겨놓는다는 마음으로. 


이 작문은 구체적으로 쓰기가 실행되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추상어가 쓰였다. 읽히질 않는다 -> 홀드 붕괴


내용의 전환도 없다. 지루하다. 본1,2,3의 변화가 사실상 없는 것이다. 

이 역시 홀드 붕괴라 할 수 있다. 

내용의 전환이 없는 것은 개요짜기 단계에서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소재의 참신함도 없다. 훅이 없는 것이다. 

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글쓰기에 돌입한 흔적이 역력하다. 


오프닝 문장은 매력이 없다. 

“풀밭에 누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거야.”

허세가 짙다. 전체 내용에 대한 관심이 생기질 않는다. 

초장부터 훅을 아예 포기한 작문이다. 


제시어는 ‘잘 생겼다’인데, 내용이랑 연관성이 전무하다. 

설령 이 작문이 초고퀄이었다한들, 제시어랑 관계성이 없으므로 

합격권이 될 수조차 없다. 페이오프가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다. 


이 작문을 어렵사리 꾸역꾸역 다 읽었어도 

이 작문을 쓴 사람에 대한 기대감은 생기지 않는다. 

구태의연하고 재미 없는 사람일 것 같으니까. 당연히 면접을 보고 싶지 않다. 

페이오프의 실종이다. 


그러니 이런 작문을 썼다면, 

당연히 탈락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리얼리티에 대해

‘7시경 사상 초유의 폭설이 내렸지만 기적적으로 그 시각에 이륙한 비행기’


이런 설정은 아예 취급을 하지 말자. ‘기적적’으로 같은 설정은 쓰지도 말자. 

이건 우연이다. 실제 세계가 어쩌면 우연에 의해 작동하는 건데, 

인간들이라는 것이 우연을 무시하고 인과 관계를 억지로 

들이민 것일 수도 있다. 허나, 그건 미니플롯에서 다루라고 하자. 

우리는 아크플롯을 다룬다. 아크플롯은 인과 관계다. 


아크플롯은 인과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이 인과 관계를 리얼리티라고 부른다. 

리얼리티가 구축되어야 읽는 이는 홀드를 유지하고 이야기를 끝까지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리얼리티가 실종된 이야기의 설정은 혐오해야 마땅하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리얼리티가 꼭 ‘실제로 그러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리얼리티는 ‘실제로 그럴 것 같음’을 다룬다. 예를 들자.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나오는 설정들이 정말 실제에 존재하나? 

그렇지 않다. 호빗이든 엘프든, 드워프든,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물리적 실제 세계에선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황당무계하기만 한가?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설정들은 나름의 작동 체계를 갖추고 있다. 

얼마나 정교한지, 그 세계관을 고스란히 물러받은 영화, 게임, 소설들이 <반지의 제왕> 이후로 무수히 쏟아졌다. <반지의 제왕>보다 리얼리티가 충실한 이야기도 세상에 몇 없을 것이다.  


‘7시경 사상 초유의 폭설이 내렸지만 기적적으로 그 시각에 이륙한 비행기’는 그러므로 다루지 않는다. 


‘7시경 사상 초유의 폭설이 내렸지만 항공사 간부의 탐욕으로 그 시각에 이륙해버린 비행기’를 다룬다. 기적이나 우연은 아크플롯에서 다루지 말자. 


바로 자기 작문에 투영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단 알고나 있자. 

알고 있어야 나중에 써먹는다. 모르면 영영 써먹을 방법의 근원 자체가 없는 것이다. 


(변화의 3단계)

  1. 인지
  2. 인정
  3. 수정


인지가 안 되면 변화란 없다. 

수정은 연습이다. 연습 없이 ‘작문 잘 쓰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인지하고 최초 개요짜기 단계에서 이러한 설정에 기반한 

개요를 만들더라도, 절대로 쓰지 말자. 

바보 같은 개요를 만든 것은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바보 같은 것을 바보 같은 것인지 모르고, 

심지어 그 바보 같은 게 그럴듯한 거라고 착각하고 

작문에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참사이자 소박한 재앙이다. 

참사와 재앙을 미연에 방지해야만 한다. 



5강. 나만의 제시어 만들기


.시제가 제시어가 아니라 제시문, 혹은 그림으로 나왔을 때의 대처법

예) 추함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드시오


이 문장을 읽은 후 즉각적으로 생각나는 단어- 키워드를 대략 10개 적는다. 


-> 성형수술, 다이어트, 김태희, 오나미,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 슈렉, 박씨부인전, 나비, 클레오파트라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할 것 같은 것을 순서대로 제거한 후 

딱 3개만 남긴다. (훅을 위해서다)


-> 슈렉, 클레오파트라, 오나미 


이 중 가장 자신있는 걸 하나만 고른다. 


-> 슈렉 


슈렉이 당신의 제시어다. 슈렉을 소재로 개요 짜기에 돌입한다. 

이미 슈렉에 시제인 ‘추함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드시오’가 연결돼 있다. 


서: 나는 심각하게 못 생겼다. 잘 생겨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으려다가 생각을 바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에서 제일 못 생긴 사람이 되어 유명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 목표는 슈렉처럼 되기. 


본1: 성형수술을 받는다. 코를 넓히고, 턱은 넓힌다. 보형물을 넣어 머리통의 크기도 키운다. -> 아프다 (조금 유명해진다)


본2: 피부색을 초록색으로 바꾸기 위해 온몸을 문신한다. -> 너무 아프지만, 슬슬 유명세가 넓어진다


본3: 슈렉처럼 곤충이나 도마뱀을 생으로 먹는다 -> 속이 아프다.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다. 


결: 나는 진짜 유명해진다  -> 그렇지만 슈렉처럼 되어가는 과정에서 건강을 잃고 사망한다. 


      

허접하더라도 이렇게라도 짤 순 있어야 한다. 뭐라도 짜라. 

세상에 글로 쓸 수 없는 시제따윈 없다. 자신 실력의 문제일 뿐이다. 


남들이 할 것 같은 걸 지우는 이유는 당연히 ‘hook’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잘 써도, 훅이 딸리면 참신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은 시제가 문장이 아니라 그림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림이 나오면 그 그림을 본 후 연상되는 단어 10개를 적은 후, 

위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결론: 나만의 제시어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제시어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만약 나온다면 마찬가지다. 

그 단어와 관련된 키워드를 10개 적는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절차를 밟는다. 


최후의 키워드를 제시어에 붙인다. 

그럼 역시 ‘나만의 제시어’가 된다. 

훅이 확보된다. 



6강. 개요짜기의 실재

이전까지 내가 블라블라 써왔던 그 모든 것은 

지금부터 쓸 것들을 위해서였다. 


이제 핵심에 다가왔다. 

물론 이 핵심이 왜 핵심인지를 여러분에게 설득하기 위해 

나는 응당 지금까지 썼던 것을 썼어야만 했다.

나는 쉬운 마음으로 여기까지 쓴 게 아니다. 

지금부터는 더 집중해서 쓸 요량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읽고 연습한 것의 강도를 2배로 높여주길 바란다. 


그만큼 중요한 것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본결

나는 ‘기승전결주의자’다. 정말 지독하게 그것만을 추구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여러분께 기승전결을 가르칠 생각은 없다. 

왜냐하면 기승전결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실로 어렵고, 그 때문에 글 쓰는 이 중에 

심심찮게 정신병자가 나오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정신병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서본결’을 얘기하고 싶다. 

결국 서본결도 기승전결이지만, 기승전결보다는 엄청나게 이해하기 쉽다. 

기승전결이 중요한 것은 기승전결 그 자체보다는 

기승전결 사이사이를 구성하는 구성점 1,2,3이 있기 때문이다. 

구성점 1,2,3은 국면의 전환이 이뤄지는 시점이다. 


.국면의 전환을 좀 더 자세히

기→(★)→승→(★)→전→(★)→결(가짜 결말→(★)진짜 결말)


★은 국면의 전환이 이뤄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이렇게도 리폼이 가능하다. 


서→★본1→★본2→★본3→결(가짜 결말★->진짜 결말) 



서에서 본으로, 본에서 결로 바뀌는 순간에는 국면의 전환이 필요하다.

국면의 전환은 강화되거나, 점층되거나 악화되거나 완화되거나, 어쨌든 그 전과는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뜻한다.


국면의 전환을 이루는 요소)

: 국면의 전환 없는 이야기는 지루함을 동반시킨다. 전환이 필수다. 그렇다면 전환은 무엇인가? 


1)새로운 소식 : 전화나 이메일, 뉴스 등


2)손님: 그것이 악당이어도 상관 없다. 누군가가 찾아온다.  


3)인물의 노력: 진정한 노력은 생각에서 출발한다. 생각이 바뀌면 노력의 강도가 달라지고 노력의 강도는 높아지거나 약해질 수 있다   -> 이것은 대개 새로운 소식이나 찾아온 손님에게서 기인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구성점 1,2,3을 본 1,2,3으로 둔 것. 그것이 서본결이다.  

여기서도 3의 법칙은 통한다. 3은 완벽한 숫자다


서론을 시작, 

본론1,2,3,을 중간, 

결론을 끝으로 보면 된다. 


글의 처음과 끝을 연결시키서 변용한 것을 

수미상관이라 한다. 

글을 보다 고급스럽게 만들어 준다. 

완결성을 부여하는 것 물론이고, 쉽게 결말을 결말답게 만들 수 있다. 


(수미상관은 뒤에 별도로 다루겠음)


.본의 배치 문제

본론3>본론1>본론2

제일 중요한 소스는 본론3에 두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본론1,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본론2에 쓴다.


이 순서로 소스를 배치하면 저절로 글의 구조에 

파도가 생긴다. 이야기가 출렁이게 된다. 극적 구조가 마련된다. 


피천득 님의 위대한 수필 ‘인연’을 돌이켜보자. 


본1은 첫 번째 만남. -처음의 설렘이 담겨있다

본2는 두 번째 만남.-연결고리 역할이다: 남녀 사이에 첫 만남보다 두 번째 만남이 중요한 경우가 있는가?

본3은 마지막 만남 – 최고로 중요하다. 이 만남을 통해 피천득은 인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희대의 페이오프 문구는 직접적으론 본3을 통해 유추되고 있는 것이다. 

본3이 제일 중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땅히 본3에 들어가야 마땅하다. 

아닌 게 아니라, 본3은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이야기 구조의 최고점에 해당한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참고로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쓴 작문이다. 

유서첨삭


“친구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밥만 축내는 불효자식.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는 몹쓸 개차반. 27년 동안 나는 그런 쓰레기 같은 놈으로 살아왔다. (중략) 이제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련다.”


 1시간가량 담담하게 내 심정을 글로 써내려간 뒤 엔터키를 눌렀다. 잠시 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서가 SNS에 게시됐다. 한결 차분해진 마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얼마나 민폐를 끼치며 이 부질없는 생명을 연명해왔던가. 하지만 이러한 자책도 더 이상 의미 없기에.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20층 높이의 옥상. 이제 공중으로 몸을 던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댓글1. 누군가 나의 유서에 댓글을 단 것이다. 확인해봤자 아무 쓸모도 없...긴 하겠지만 괜스레 궁금하다. 핸드폰을 켜서 확인해보니 대학 동기 호성이의 글이다.

<호성> 이 허세글 좀 보소? 완전 쩌네?ㅋㅋㅋ


 네 녀석이 뭘 알겠느냐. 이게 진짜 유언인 줄도 모르고. 그 다음 이어진 댓글

<호성> 야 그나저나 너 전에 소개시켜준 여자애랑 완전 잘되고 있음ㅋㅋ 완전 땡큐~ 나도 너한테 소개팅 하나 해줄까 함. 사진 확인하셔.


  잠시 뒤 한 여성의 사진이 올라왔다. 아... 예쁘다. 하늘이 날 돕는구나. 역시 사람은 돕고 사는 게 인지상정이지. 하긴 내가 뚜쟁이로 이어준 친구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덕분에 이런 복도 간간이 굴러들어오긴 한다. 생각해보니 내 유서... 너무 격하게 쓴 듯싶다. 방으로 다시 돌아와 유서를 퇴고하기로 했다.


“친구들에게는 제법 쓸모있는 녀석. 하지만 부모님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밥만 축내는 불효자식.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는 몹쓸 개차반.(생략)”


 수정한 뒤 프린터로 한 장 뽑기로 했다. SNS를 사용하지 않는 부모님을 위한 유서다. 자 이제 슬슬 뽑아... 앗, 그런데 거실에 있는 프린터로 향했더니, 어머니가 내 유서를 읽고 계셨다. 등에 식은 땀이 가득 흘러내렸다. 한참을 읽으시던 어머니의 첫 마디.

 “이거 작문 숙제니?”

 다행이다. 아직 눈치 채지 못하신 듯하다.

 “그런데 왜 글로 죽는다고 쓰고 그래. 공부하느라 그렇게 힘들어? 우리 아들 죽으면 안 돼. 아들 죽으면 누가 강아지 산책시켜. 재활용은 누가 하고, 청소기는 누가 돌리나? (웃으면서) 혹시 일 많이 시켜서 죽고 싶다... 뭐 이런 뜻인가?”


 우리 어머니의 유쾌한 독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제 어머니 나이도 60이 다 되어 가는데, 가족 중에서는 어머니를 도와 각종 허드렛일도 하는 사람이 유일하게 나밖에 없으니. 비록 취직하는 게 효도라지만, 이것도 내 나름의 효도 아닌가 싶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재퇴고다.


 “친구들에게는 제법 쓸모있는 녀석. 부모님에게 나름 효자노릇 톡톡히 하는 아들내미. 하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는 몹쓸 개차반.(생략)”


 아차. 깜빡했다. 5년 전에 헤어졌던 유민이에게도 이 유서를 전달해야 한다. 3년을 사귀고도 식어버린 마음에 헤어지자고 말할 때 울며불며 나를 붙잡던 유민이. 지금도 나를 많이 원망하고 있을 터.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SNS 친구도 끊어진 상태니 메신저로 유서 전문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번엔 꼭 시원하게 뛰어내... ‘띠리링’ 그녀에게서 바로 답장이 날아왔다. 그녀 또한 유서인줄 모르는 눈치다.


유민> 헐. 완전 오랜만이네? 까먹고 있었어. 근데 이거 너무 감성에 젖어있는 글 아니야?ㅋㅋ 5년 전 일이라면... 뭐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걸? 게다가 그땐 우리 둘 다 어렸잖아. 그런 것들도 뭐 다 하나의 추억 아닐까 싶네. 

그러니 너무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자책하지 말고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자.


 

 의외였다. 그 가슴 아린 기억이 추억으로 남다니. 그녀의 답장을 읽고 난 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장해두었던 유서 파일을 다시 열어 최종퇴고를 하기로 했다.


 “친구들에게는 제법 쓸모있는 녀석. 부모님에게 나름 효자노릇 톡톡히 하는 아들내미.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좋은 추억 하나 만들어준 남자. 응? 27년 동안 뭐 나쁘지 않게 잘 살아온 거 아닌가? (중략) 앞으로도 꿋꿋히 살아가며 좋은 사람으로 남으련다.”


-끝- 



*이 글의 개요를 작성하시오


서:


본1:


본2:


본3:


결:



본3이 클라이막스인 것은 자명하다. 구여친과의 화해를 타고, 결말로 들어간다. 

만약 본3이 친구였다면? 우정에 대한 페이오프가 생겼을 것이다. 

본3이 어머니였다면? 가족애에 대한 페이오프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구여친이 본3이다. 구여친은 과거에 대한 회환이다. 

단절된 과거의 아름다움이다. 

과거에 대한 죄책감의 해결이 앞으로 계속 살겠다는 결심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수미상관

위의 유서첨삭을 다시 보자. 

유서로 시작해 유서로 끝난다. 끝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연은 어떠한가? 역시 춘천으로 시작. 춘천으로 끝난다. 

지각인생은 지각인생으로 시작해 지각인생으로 끝난다. 

우연이 아니다. 수미상관의 적용은 시도해서 손해 볼 게 없다. 

늘 시도하라. 개요를 짤 때 미리 계획되어 있으면 더 좋다. 

메모 정도는 해두자. 


수미상관은 그 자체로 이 이야기가 끝났다는 느낌을 준다. 

무한도전이 시작할 때 '무한~도전~!'으로 시작하고, 끝날 때도 '무한~ 도전~!'으로 끝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뉴스데스크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뉴스데스크 마치겠습니다. 

이것도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시작할 때 썼던 말을 끝에서도 써주면 끝이라는 인상을 받는 동물이다. 

여러분이 쓰는 작문에서 이것을 써먹기 바라는 이유는 단 하나다. 

가끔 여러분이 쓰는 PD 작문의 엔딩이 전혀 엔딩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름 그것을 엔딩이라고 썼지만, 읽은 사람이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갑은 여러분의 작문을 하찮게 여길 것이다. 이건 시간이 없어서 엔딩조차 

마치지 못한 작문이라 치부할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이 작문은 여기까지 제가 포석을 두고 계획에 의거해 쓴 

작문입니다, 라는 느낌을 받도록 결말이 결말스럽도록 써야 한다. 

수미상관은 그 느낌을 주는 데 최고의 스킬. 

여러분이 적극 사용해야 마땅하다. 




7강. 개요짜기의 실재 #2

.로그라인의 조건

로그라인을 만드는 것은 개요짜기에 있어서 핵심이다. 

이것을 만들면 개요짜기의 절반은 해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 로그라인이란 무엇인가?


일단은 위에서 말한 ‘나만의 제시어’가 필요하다. 

그 제시어를 아래의 사항에 적극적으로 묻히면 된다. 

‘슈렉’을 예로 들어보겠다. 


첫 번째로, 주인공을 수식하는 말이다. 

‘나’ 같은 걸 주인공으로 삼지 마라. 그건 엑스트라지, 주인공이 아니다. 

이건 전체 작문의 디테일을 바꿔놓는다.

주인공 수식어가 


1. 25세 언시생

2. 25세 노벨문학상 수상자 


뭐가 더 나은지는 차치하고, 일단 생각해보자. 

이 수식어의 차이 때문에 

작문의 디테일이 다 달라지지 않는가? 

나이와 성별,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이 들어가야 한다. 

이 3개만 잘 넣어도 작문에 훅이 확보된다.



두 번째로,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이다. 

슈렉처럼 되어서 세상에서 제일 못 생겨져서 유명해지리라, 

라는 식이 되어야 한다. 


이건 서에 들어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적어주는 게 좋다. 그러면 읽는 이가 절로 

아, 이야기는 얼추 이런 이야기로구나, 

하고 호감을 갖는다. 왜냐? 설명하려면 길다. 귀찮다. 

그냥 그런 줄 알자. 


아무튼 서에, 최대한 빨리 이 원초적 욕망을 적어주는 걸 유념하자! 



세 번째, 주인공을 방해하려는 것(사람, 세력, 세상, 혹은 그 무엇)에 대한 수식어다. 

못 생겨지는 걸로 유명해지려면 건강을 포기해야 한다, 같은 게 있으면 좋다. 


이건 본에 들어간다. 다시 저 위의 마크힐스를 보자. (18페이지에 있다)

분석하자. 로그라인부터 짜보자. 

그리고 마크힐스의 개요를 짜보자. 본3개에 있는 단어들이 바로  

이 방해물 부분에 있는 것들이다. 



그럼 정리를 해볼까?


주인공 수식어는 작문 전체 디테일에 영향을 끼친다. 

원초적 욕망은 서에 들어간다. 

방해물은 본에 들어간다. 


어떤가. ‘결’ 부분만 빼고 다 해결되었다. 

개요짜기의 4/5 이상이 이미 로그라인을 짜면서 해결됐다. 

사실 거의 다 짜진 거나 마찬가지이긴 한데, 

그걸 설명하려면 또 길어진다... 후아.

이후에 나올 ‘고퀄 일반 개요’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인데, 후려쳐서 미리 말해주겠다. 


왜냐하면 ‘결’은 서의 미션에 대한 가짜 결말이 

본의 요소들의 영향으로 진짜 결말로 가는 내용으로 되기 때문이다. 


즉, 결은 서와 본1,2,3에서 정해진 맥락대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이 로그라인에 시제 관련어가 최소 한 번은 들어가야 

작문에 시제 연관성이 생긴다. 


서두에 미션을 두고 본론 1,2,3에 이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을 나열한다. 

그리고 결말을 짓기 전에 가짜 결말과 진짜 결말을 만든다. 가짜 결말로 한 번 꺾어놓은 다음, 진짜 결말로 이야기를 끝낼 때 극적 효과가 나타난다. 


.미션에 관하여

미션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주인공이 하려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잘 살고 싶다’


라는 식이 되어버리면 글을 쓰면서 디테일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잘 살고 싶은데? 그 노력은 뭔데? 돈을 벌 거야,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거야?

이렇게 되면, 제한 시간 내에 글을 못 쓸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망하는 거다. 불합격이 되는 거다. 


선택 사항이 너무도 많다는 것의 의미는, 

실제로는 아무런 선택 사항도 없어 빈곤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글을 쓰다가 계속 막히게 되는 이유는, 

이렇게 써도, 저렇게 써도, 또는 그렇게 써도, 혹은 아무렇게나 써도 

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최선의 것이 뭔지 고민만 하다가 시간은 흐른다. 

머리는 아파오고, 글쓰기는 역시 어려운 거라는 탓을 한다. 

맞긴 맞다. 글쓰기는 실제로 인간이 하는 행위 중 가장 극렬하게 어려운 것 중 하나이지만, 

하나는 명심해야 한다. 개요 작업에서 이미 망해버린 당신의 탓이 가장 크다. 

그러니 이런 미션은 미션으로 취급도 하지 말도록 하자. 


‘나는 돈을 벌어서 마크힐스에 살겠다’


는 내용은 구체적이다. 주인공이 정확히 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게 미션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미션이 제시되면 본론의 내용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이 본에 제시될 것이므로.


미션을 구성할 때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포함되어야 한다.

남녀가 만났다. (X) -> 이건 그냥 상황이다. 욕망이 없다. 미션이 아니다. 

남녀가 만났다. 남자는 여자와 사귀고 싶어 한다. (O) -> 미션이다. 욕망이 있으므로. 


‘나는 죽고 싶다’도 미션으로 취급하지 말자. 

‘나는 죽고 싶어서 친구, 엄마, 구여친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유서를 SNS에 남기고 옥상에 있다.’ 이게 미션이다. 


결론) 1. 이래서 개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x 10000

     2. 미션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미션과 결말

미션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는 돈을 벌어서 마크힐스에 살겠다’ 라는 미션을 보면 간명해진다. 


성공: 마크힐스에 살게 된다 

실패: 마크힐스에 살 수 없게 된다


‘나는 죽고 싶어서 친구, 엄마, 구여친에 대한 미안함이 담긴 유서를 SNS에 남기고 옥상에 있다.’


성공: 나는 죽는다

실패: 나는 죽지 않는다


그렇다. 미션이 잡히면 결말에서 최종적으로 선택할 것이 두 가지로 압축된다. 

미션을 만들면 결말이 사실상 결정되는 거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영화 부산행을 예로 들자. 


‘공유가 딸을 부산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고, 진정한 아버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가 미션이다. 그리고 당연히 결말에서도 이 두 사항에 대한 성패를 다뤄주고 있다. 

이러한 예는 숱하게 많다. 일일이 여기에 쓰자면 책 3권정도를 써야 한다. 


미션은 비단 미션 자체에 그치는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의 전반에 결정적이 역할을 끼치는 것이다. 

그 이유를 좀 더 깊숙이 이야기하자면, 우리 삶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미션: PD가 되고 싶다

결말: PD가 되거나, 못 되거나


미션: 서울예대에 입학하고 싶다

결말: 입학하거나 못 하거나


미션: 이 사람과 연애하고 싶다

결말: 사귀거나 차이거나 


인정해야 한다. 미션 설정이 이야기에 끼치는 파급력과 그것이 실제 우리 삶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말이다. 


*여기서 걱정되므로 굳이 하는 이야기 하나


‘나는 돈을 벌어서 마크힐스에 살겠다’ 

이건 단문장의 미션이다.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결말에서도 이것도 처리해주면 되고, 본론에서도 그 과정만 다뤄주면 된다. 단순하다. 

우리가 써야 하는 분량이 적합하다. 


‘공유가 딸을 부산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고,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이건 복합문장의 미션이다. ‘딸을 부산까지 안전하게 데리고 가느냐?’와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있느냐’가 결합된 구조다. 이 두가지를 동시에 결말에서 다뤄줘야 한다. 본론에서도 마찬가지다. 분량이 늘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산행은 공유 이외에도 마동석, 최우식 등등 많은 인물들이 나름의 미션을 갖고 있다. 그 모든 걸 다뤄줘야 하니 소설로 쓰자면 장편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작문 미션은 단문장이 되어야 한다. 

최대한 간결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미션만 있어야 한다. 

역시 미니멀해야 한다는 얘기를 거듭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8강. 개요짜기의 실재 #3

나는 암기를 요구한 적이 없다. 암기란 게 별로 쓸모없는 것 중 하나가 작문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요구하겠다. 

아래의 정보는 외우면 좋다. 외우길 바란다. 


.고퀄 일반 개요

꼭 이렇게 해야만 고퀄이 된다는 ‘진리’를 설파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다. 이것을 따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고퀄로 가는 예가 있다. 그러나 이 일반론에 대한 이해도 없이 다른 걸 시도하겠다는 것은 

외롭고 괴로운 길을 자처하는 것이다. 외롭고 괴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깊지 않다면, 

일단 일반론을 따르자. 일반론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된 이후, 이해하게 된 일반론의 

마디 마디를 조금 변용하는 것에서 자신만의 ‘특수 공식’이 생길 것이다. 


서) 로그라인 제시 (미션 포함) + 중요 정보 명시

주인공을 수식하는 말이다.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이다. 

주인공을 방해하려는 것(사람, 세력, 세상)에 대한 수식어다. 



본) 미션의 처리 과정

1

2

3


각 소개요, 1, 2, 3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나야 한다. ‘국면의 전환’이 되어야 한다.

강화되거나, 악화되거나, 완화되거나, 혹은 이 모든 게 섞여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 


결) 가짜 결말 -(본1, 본2, 본3의 영향)----> 진짜 결말

.진짜 결말이 미션의 성공이면 가짜 결말은 실패

.진짜 결말이 미션이 실패면 가짜 결말은 성공


외우자. 머리에 각인을 시키자. 

이것도 못 외울 거면 다 관두자. 



.고퀄 개요 공식 활용의 예

서: PD 작문 전형에 합격하겠다. 

본1: 매일 일기를 쓴다. 

본2: 매일 개요 공부를 한다. 

본3: 매일 작문을 쓴다. 

결: 불합격


이러면 별로다. 

허무하다. 

이런 걸 합격시켜줄 갑님은 세상에 없다고 봐야 한다. 



서: PD 작문 전형에 합격하겠다. 

본1: 매일 일기를 쓴다. 

본2: 매일 개요 공부를 한다. 

본3: 매일 작문을 쓴다. 


결: 불합격  -> (일기, 개요공부, 작문을 모아 ‘PD작문 실패 사례집’이라는 서적으로 출판)-> 합격한 것보다 금전적으로 더 큰 성공


이런 게 더 낫다. 


결: 가짜 결말 -> (본에서의 요소(들)을 모아 꺾기 시도) -> 진짜 결말 


이런 구도가 대개 많이 쓰이는 고퀄의 방법이다.

단 명심할 것이 있다. 위에서 ‘요소(들)’이라 처리한 부분에서 

‘요소’가 아니라 최대한 ‘요소들’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본3의 요소만으로 결에서의 전환(꺾기)가 이뤄지면 나쁘지는 않지만, 

읽어보면 그냥 그렇다. -> 합격을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본1, 본2, 본3의 요소가 모두 결말의 꺾기에 쓰이면, 

아무리 읽어도 고퀄 같다. 


위에서 읽은 ‘유서첨삭’과 아래 글을 비교해가며 읽어보자. 

특히 결말부는 초집중해서 읽길 바란다. 


제시어 : 지킨다


<서>

 벌써 11시다. 처리 해야 할 서류들은 아직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사무실을 떠날 수 없다. 국민의 이익을 지켜내는 것이 검사로서 지녀야할 소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맡은 케이스는 한창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과잉 정당방위 문제.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의 법익을 고려하지 않는 방어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가해자의 편에 서서 20시간이 넘도록 서류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제 10장만 더 읽으면... ‘끼이이이익’ 문 여는 소리. 문 앞에는 복면을 쓴 한 괴한이 보인다. 어떻게 서울지방검찰청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올 수 있는 거지? 때마침 증거품으로 수거한 야구 방망이가 보인다. 이걸로 한 번에 가격을 하면 괴한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터.


<본1>

 엇, 잠깐만. 일단 중요한 것은 괴한이 어떤 무기를 들고 있느냐다. 가해자보다는 더 심한 폭력이면 안 되는 것이 정당방위의 요건이다. 현재 괴한이 들고 있는 흉기는 신문지로 쌓여져 있다. 칼일까? 망치일까? 아니면 그냥 짱돌? 알 수 없다. 흉기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방망이를 드는 것은 과잉 방어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은 사용하면 안 되니까 그냥 맨주먹으로 상대하기로 한다. 그래야 정당방위가 인정받는다. 자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들어서...


<본2>

 엇, 잠깐만. 먼저 내가 폭력을 가한다면 정당방위가 아니다. 일단 괴한이 나를 찌르든 패든 해야 한다. 급습했다가는 오히려 내가 폭행으로 입건될 가능성이 높다. 최대한 방어만 하려고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괴한이 달려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역시나 괴한이 나에게 달려들어 칼로 다리를 12방정도 찌른다. 그래 예상대로 칼이었어. 이제 때릴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성립되었다. 하지만 다리에 칼을 맞아 기우뚱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래도 적극적인 방어 차원에서 주먹으로 


괴한의 종아리를 2대 


<본3>

가격한 것으로 만족했다.엇 잠깐만. 그때 갑자기 괴한이 복면을 벗는다. 여자다. 덩치는 나보다 2배 이상 커서 남자인 줄 알았는데. 그 여자가 갑자기 나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보더니 그 큰 몸뚱아리로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강제로 입술을 맞추려고 시도했다. 그녀의 혀가 나의 두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던 찰나. 아, 그래. 아무리 그녀가 나보다 힘이 좋아도 여자는 여자다. 따라서 그녀의 혀가 나의 입안을 휘젓더라도 나는 절대로 혀를 깨물어서는 안 된다. 그녀를 밀쳐내 보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난 그녀의 혀를 깨물 수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포스트잇에 적어서 그녀에게 보여준다. 


‘하지 마세요.’

 

<결>

 허나, 그녀는 막무가내였고, 신성한 법의 집행을 위해 나는 버티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1시간가량을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다른 사무실에 남아있던 누군가가 소란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녀를 체포해갔다. 북적이는 기자들 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절차에 따라 정당방위를 제대로 행사하였고, 저의 법익도 그녀의 법익도 지켜냈습니다. 비록 지금 많이 힘들지만 말이죠.” 칼에 맞아 내 다리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은 신성한 법의 구현이 얼마나 값진지 보여주는 듯 뚝뚝뚝, 멈추지 않고 계속 떨어진다. 그 때 갑자기 날아들어 온 기자의 한 질문.

 “가해자를 인터뷰해보니까, 가해자의 종아리에 멍이 좀 나있어서 전치 4주가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제대로 정당방위하신 거 맞습니까?”

 아차, 넘어지면서 때린 주먹 2방. 너무 세게 때렸나보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이것은 폭력에 불과했다.  -끝-



이 작문도 재밌다. 나쁘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꽤 고퀄에 속한다. 

허나 ‘유서첨삭’과 비교해보자. 어떠한가? 취향의 문제는 뒤로 빼고 말해보자. 

뭐가 더 나은가?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유서첨삭’이 위의 ‘지키다’보다 낫다. 

왜냐? 유서첨삭에서 주인공이 살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는 

본1, 본2, 본3의 과정이 충실히 녹아있으므로. 마지막으로 고쳐쓴 유서 부분에 

그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본 3개의 요소들이 모두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그러나, ‘지키다’는 그렇지 않다. 

결말에서의 꺾기에 영향을 미친 것은 내가 밑줄 친 ‘종아리 2대’에 불과하다. 

본2만 결말의 꺾기에 쓰인 것이다. 당연히 ‘유서첨삭’이 더 잘 썼다 여겨질 수밖에 없는 

원리가 작문에 이미 녹아있다 볼 수 있다. 


정리)

1. 결에서의 꺾기에 쓰일 본의 요소는 최소 1개다. 이것도 못하면 그냥 망한 거다.

2. 무리는 하지 말고, 최소한 본의 요소 1개는 무조건 결말에서의 꺾기에 적용하자.

3. 가능하면 본의 요소 3개가 모두 결말의 꺾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개요를 짜버릇 하자.



.텐션

미션이 서에 제시 안 되는 작문 중에도 

좋은 작문이 있다. 그러한 작문에는 서에 ‘텐션’이 잡혀있다. 


예) 인연, 지각인생 


텐션은 말 그대로 긴장감 조성이다. 

홀드가 올라간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읽는 이의 뇌리에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길이가 길 필요는 없다. 짤막하게 쓰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미션 대신 텐션을 잡고 시작한 작문은 대개 

액자식 구성의 작문이다. 액자 바깥에서 텐션을 잡은 후, 

그와 관련된 액자 안 이야기- 에피소드를 본에서 다뤄준다. 

마지막 결에 이르러선 다시 액자 바깥으로 나와 

잡아뒀던 텐션을 처리한다. 


 

                             <사람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어두운 병실, 아무도 없는 그곳에 홀로 돌아누워 있는 나의 학창시절 동창이자 오랜 친구 철수의 모습이 제법 쓸쓸해 보였다. 중년의 남자가 병실이라니, 이보다 더 씁쓸한 조합이 있을까. 그래도 내가 가져온 거금 오 만원짜리, 노란 국화가 심어진 화분이 이 병실의 적막함을 깨주면 좋겠다. 철수의 곁에 두고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잠든 줄 알았던 철수가 말을 꺼냈다.

  

                              “옛 생각이 나는군 그래.”


그 시절 국민 학생들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만화영화 주인공 모양의 장난감을 가지고 있으면 그 무리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었다. 나 역시 아버지가 해외출장에서 사 오신 장난감들로 종종 그 반의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그리고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던 철수는 언제나 무리에서 동떨어진 먼발치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철수는 지금 생각해도 꽤나 비싸 보이는 인기 로봇 장난감을 -마징가z였거나 태권v였을 것이다.- 사온 적이 있었다. 늘 상 그래왔듯 그의 주위에는 많은 아이들이 몰렸고, 신이 난 철수는 언제나 그 로봇을 품에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의 뭇 아이돌들처럼 그 로봇의 인기는 금방 사그라 들었고 결국 철수는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정상의 맛을 본 어린 철수는 아마도 다시 정상에 오르고 싶었으리라. 그날로 철수는 매번 그 비싼 장난감들을 바꿔가며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시절. 철수는 많이 변해있었다. 조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스케일이 커졌다. 시골학교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필수였던 자전거. 중학교 2학년의 어느 아침 등굣길.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로 ‘부릉~’하는 소리가 들렸다.철수였다. 철수는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를 한 것이다! 그 어린나이에 면허증이 있으리 만무하고, 대체 그 비싼 오토바이가 어디서 난 것일까? 아무튼 나의 이런저런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학생들은 철수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학생들의 관심에 철수는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어린 철수처럼 우월감과 만족감이 가득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등학교는 제법 머리가 커졌을 나이다. 고로, 철수같은 아이를 곱게 보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위 잘나가던 아이들이 철수를 때렸고 철수는 많은 아이들이 보는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우월감에 차있던 그에게 그날의 기억은 얼마나 자존심에 큰 상처였을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철수를 때렸던 아이들이 그 다음날로 등교를 하지 못했다. 들리는 소문에 철수가 선배들에게 돈을 주고 복수를 의뢰했다고.     


그렇게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창들은 대학에 진학했다. 물론 기술을 배워 바로 사회에 진출 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철수는 여기에 속했다. 그래서 일까, 철수와의 연락은 끊어져버렸다.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친구들로부터 동창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나는 문득 철수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동창회에는 변호사가 된 친구, 의사, 회사원 나의 동창들은 제법 어른 티가 나고 있었다. 그런데 구석 한켠에서 낡은 작업복을 입고 쓸쓸해 하는 녀석을 보았다. 철수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 시절 그의 우월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의 녀석은 가관이었고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고주망태가 된 철수. 아무도 그를 챙기려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 대한 연민과 조금 남은 우정으로 그를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한다.


그의 집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허름한 집과 연로하신 부모님. 그의 지난날의 우월감의 원천이 바로 이곳이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의 성화에 못이긴 부모님이 철수를 위해 그 비싼 장난감과 오토바이 같은 것들을 장만해 주셨을 것을 생각하니 나는 철수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리고 그에게 농담처럼 한 마디 건넸다.


“임마, 사람은 그렇게 얻는 게 아니야. 아직도 모르겠어? 네 장난감, 오토바이와 같은 것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없다고!  너 언제까지 바보처럼 그럴래?” 철수는 내이야기를 듣더니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20년 뒤, 다시 병원 -


                               "옛 생각이 나는군 그래"


그때 검은 옷의 남자가 병실로 들어왔다. "김철수 회장님, 밖에 사람들이 회장님을 한 번이라도 뵈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철수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대충 봐서 싸구려 선물이면, 이번 인사이동에 반영해."


그러고 나서 나를 보며 말했다.


"친구야, 그날 네 이야기 덕분에 내가 여기까지 왔다. 멍청하게 사람의 관심을 받으려고 노력했지 뭐야. 그냥 그 위에 서면 그만인데. 정말 고맙다. 근데 고작 노란 국화라니... 화분 같은 걸 어디에 써먹나. 아무튼 이번 인사이동은 꿈도 꾸지 말고. 알겠나, 이부장?"  


-끝-



*위의 작문은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쓴 글이다. 


텐션은 본론으로(에피소드로) 유도하기 위한 입구다.  

글은 궁극적으로 읽는 사람이 궁금해야 하는데 만약 궁금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않고 끝낸다면 읽느니 못한 글이 된다. 

그래서 텐션의 처리는 확실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노골적으로 말할지 언정) 끝내줘야 한다. 그건 읽는 사람에게 호의를 사는 일이기도 한다.


또한, 액자 바깥으로 들어가고 액자 밖으로 나올 땐 

일종의 장치- 연결고리를 마련해두면 좋다. 위의 작문에선 

              

“옛 생각이 나는군 그래.”


가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그뿐 아니다. 이 단어가 텐션을 확 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강력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액자 속 이야기- 에피소드로 들어간 것이다. 

또한 서에서 텐션을 잡고 들어가는 작문은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더라. 이것을 인정하면 나란 인간이 비인간적으로 보일까 봐 애써 외면해왔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침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낯선 이들과 몸을 부위 별로 부대끼며 회사로 가는 길은 당시 내 생활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나는 지옥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그 역시도 지옥의 일부분이었다. 게다가 그날은 비오는 여름이었다. 비와 땀이 자아낸 각자의 끈적거림과 하반신 부위에 있는 제 3의 ‘젖은 다리’- 우산들은 나를 비이성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참을 수 있었다. 참아야지, 별 수가 없었다. 참는 수밖엔. 내 앞에 선 어느 뚱보 학생이 자신의 묵직한 둔부를 무기삼아 나를 뒤로 밀어재끼기 전까진. 



본1

그것은 미묘한 경험이었다. 그 녀석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허나, 학창시절 2분단 혹은, 3분단 세 네 번째 줄에 앉아,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서 빵을 사먹으며, 게임 이야기나 떠들었을 법한, 한심하고도 뚱뚱한 뒤태를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런 놈이 쉴 새 없이 엉덩이로 나를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넓은 아량으로 뒤로 물러나주고 싶은 맘도 없진 않았지만, 내게도 그럴만한 물리적 여유가 없었다. 그 누구도 직경 40센치미터 이상은 그 지하철 칸 안에서 배당받을 수가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 돼지, 아니 뚱보는 염치도 없이 자신에게 더 많은 공간을 내달라고 엉덩이를 통해 주장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어린놈이니, 징징거릴 수도 있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녀석의 무례함은 극에 치달았다. 뒤통수에 꿀밤을 날릴까. 안 된다. 그러다 행여 경찰서에 가면, 월급의 상당량이 박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들기며, 요놈, 그짓 당장 그만 두지 못할까, 하고 친절하게 타이를까. 그래, 이것이 그나마 가장 안전하고 일말의 분란도 일으키지 않을 현명한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나다. 그렇게 온전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오지 못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을 택했다. 손에 쥐고 있던 긴 우산의 뾰족한 끝을 그놈의 엉덩이에,


찔러 넣었다. 


본2

정확한 각도 계산으로 녀석의 ‘코어’에 나의 우산은 깊이 진입했다. 그것은 여러 가지 포석에 근거한 작전이었다. 나는 녀석에게는 세상의 날카로운 맛을 알려주고, 나 자신에게는 통쾌함도 선사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이 방법은 실수로 가장할 수 있다는 이점도 존재했다. 뭐냐고 대들면, 미안, 이라고 대꾸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근데, 응당 돼지 멱따는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아니, 아니, 이럴수가. 그것은 상상을 능가해버리는 수준의 것이었다. 굵직한 뚱보 남학생의 괴성이 아니라, 


어머, 어머, 이게 뭐예요!


본3

여타의 여자들과 다름없는 목소리. 그놈은 그놈이 아니라, 소년스러운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겸비한, 뚱보 20대 아가씨였던 것. 당황한 나는 일련의 사태가 실수였다고 변명할 틈도 없이, 그녀의 속사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변태, 또라이, 미친놈 등등, 지하철 안 그 수많은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았다. 비 내리는 출근길. 나는 세상 가장 이상한 취미와 취향을 지닌 녀석으로 격하되어 버린 것이었다. 지옥철 안에서 나는 잔혹한 징벌을 받는 어린양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환승역에서 그 뚱보 이십대 여자는 내렸다. 내가 정신을 추스르고 가까스로,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서 간신히 경찰서에 가지는 않았다. 흐트러진 정신으로 나는 출근해서 하루 종일 억울함에 벌벌 떨었다. 사실 알고 보면, 당한 건 나다. 그녀는 둔부로 나의, 그러니까, 아주 몹시 말하기 민망한 그곳을 내내 비벼댔던 것이다.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그날 밤, 내 친구에게 술 한 잔 하며 토로했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깔깔깔 웃는 친구를 바라보며, 나도 결국 값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싫다. 하여, 나는 ‘사람들’도 싫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무언가 억울하고, 당황스럽고, 짜증이 났던 모든 경험은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스트레스, 혹은 슬픔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곳도 안다.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에게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나의 스트레스와 슬픔을 말하면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내 앞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내 안에 남는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싫어하지만, ‘사람’은 좋다니. 궤변일 수도 있겠다. 허나 뒷모습만 봐선 남자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뚱보 이십대 여자가 세상에 존재하듯, 세상엔 별별 생각과 마음이 다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나는 사람이 좋다. 결국, 사람은 사람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괴롭고 힘들더라도, 사람은 이 지옥철 같은 세상을, 사람 덕분에 살 수 있 것이니까.


-끝-



텐션을 뭘로 잡았을까? 당연히,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더라’이다. 

왜 사람들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잡고 지하철 관련 일화로 들어갔다. 

홀드를 잡고 시작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텐션을 잡고 들어간 작문은 

자신의 주관을 명확하게 어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작문의 결말부는 글쓴이가 생각하는 세상과 사람, 그리고 나름의 인생관이 

다이렉트하게 적혀있다. 


만약, 이렇듯 자신의 주관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을 땐, 이런 식의 개요 구성도 

한 번쯤 고려해봄직 하다. 


결론)

서에 미션, 혹은 텐션 없는 작문은 망함으로 가는 아우토반이다. 

서에 둘 중 뭐라도 있어야 한다. 



9강. 유념사항 #1


.미스터리 작문- ‘오도시 한 방형 작문’의 위험성


정보량

비고

미스터리

독자 < 등장인물

망할 위험도 매우 높음

서스펜스

독자 = 등장인물

망할 위험도 낮음

극적 아이러니

독자 > 등장인물

짧은 이야기에 적용시키기

어려움



미스터리는 관객보다 등장인물이 정보량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리는 흘려야 하는 정보(니쥬)의 양을 조절해야하는데,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망할 위험도가 높다. 이 짧은 분량에 나름의 니쥬를 심어줘도 그것이 너무 들통나 결말에서 미스터리가 풀리는 

나는 이것을 ‘오도시 한 방형 작문’이라 부른다. 극구 말리는 작문 스타일이다. 니쥬와 오도시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고, 일단 아래의 대표적인 ‘오도시 한 방형 작문’을 읽어보자. 


제시어 : 달


  나는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여자다. 하지만 그런 내게 남들이 모르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나의 남자친구다. 내 남자친구는 한류스타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민준이다. 그와 나는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데뷔를 했지만 무명 생활이 길었다. 나는 늘 그런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나의 응원 덕분이었는지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비록 우리의 관계를 사람들에게는 알릴 수 없었지만, 나는 그가 잘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그가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 바쁜 탓이라는 걸 알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초조하다. 


  별다른 스케줄이 없을 텐데도, 벌써 며칠 째 민준은 연락이 없다. 기다리는 내 쪽은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다. 그는 믿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여자들은 믿을 수가 없다. 결국 대충 옷을 걸쳐 입고 그의 집 앞으로 향한다. 그의 집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다.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차를 대놓고 그를 기다린다. 1시간 쯤 지나자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온다. 민준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 잘 보니 웬 여자다. 배신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린다. 하지만 일단은 분노를 억누른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먼저다.


  민준과 여자가 들어가고, 집 안에 불이 켜진다. 그에게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건다. 신호가 가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또다시 건다. 받지 않는다.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전화를 건다. 역시나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여자의 안내가 나온다. 모든 게 확실해졌다. 나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의 집 앞 마트를 들렀다 나와 무작정 기다린다. 몇 시간 쯤 지났을까, 두 사람이 나온다.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한다. 내 손에 들린 칼끝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코에 닿는다. 나는 민준을 위해 살았다. 태양처럼 빛나는 그의 옆에서 희미한 존재로 살아도 좋았다. 그를 사랑했기에 내 인생 쯤은 볼품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민준은 나를 배신하고 저런 멍청한 여자와 놀아나고 있었다. 그 때, 민준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나온다.  


“당신 누구야?”


 사람들은 내게 미쳤다고 했지만 아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너무나도 빛나서 옆에 있는 내가 보이지 않은 것뿐이다. 나는 절대로 미치지 않았다. 나는 태양 같은 그의 옆에 있는 하얀 달이었다. 희미해서 보이지 않지만 늘 같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민준의 옆에 있을 것이다. 나는 달이다. 하얀 달. 그리고 그는 나의 빛나는 태양이다. 


-끝-

   



위에서 말한 그대로다. 

이 작문은 고의적으로 쓴 사람이 읽고 있는 사람을 속였다. 

주인공은 김민준의 진짜 여자친구가 아니다. 스토커다. 

이 사실을 주인공도 분명히 안다. 인정을 안 할 뿐.  

이러한 정보를 독자는 모르지만, 등장인물인 주인공은 아는데, 

어떻게든 속여 보려 노력하고 있다. 


이 작문이 재밌는가?


이 작문은 이 주인공이 실은 스토커였다는 것으로 반전을 주려하지만, 

아무 복선(니쥬)도 없다. 복선 없는 반전은 이미 반전이 아니다. 

그리고 복선을 깔았어도 티가 났을 거다. 여자가 스토커라는 정보를 결말 이전에 

깔아줬다면, ‘아, 이 여자 여친이 아니라 스토커구나’라고 이미 눈치를 챘을 터. 

분량이 짧으니 아무리 은근히 복선을 깔아줘도 티가 난다. 

결말에서 정말 그렇게 끝나버리면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 했으므로 

김이 센다 -> 페이오프가 사라진다. 


이러한 류의 작문은 망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결말에서의 반전(오도시 한 방)에 집착하지 말자. 

결에서의 오도시 한 방에 올인하는 것은 위험하다. 


서스펜스는 관객과 등장인물이 동일한 정보량을 갖는다. 고로 관객은 등장인물과 같은 심리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서-본-결 형식을 지킨다면 딱히 위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망할 위험이 없다. (예: 유서첨삭)  본격적인 서스펜스 장르를 쓰라는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갑님을 속일 생각말고,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쓰자는 것이다. 



.본론에 전환이 없는 작문

말이 좋아, 본1, 본2, 본3이지, 사실상 하나의 상태인 것이다. 전환이 없다. 지루하다. 

홀드가 떨어진다. 끝까지 안 읽는다. 당연히 탈락이다. 


 “당신의 운명을 바꿔드리는 메이크오버 성형 프로젝트, 렛미인(Let me 人). 과연 1372번 째 주인공은 누가 될 수 있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떨리는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나도 이제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제대로 생겨먹고 싶다. 잘생기고 싶다. 나의 음성이 부디 하늘에 닿았으면... 이 절실한 기도를 들어줬으면... 이제 곧 아등바등 살아온 나의 처절한 과거가 낱낱이 공개된다.


 “자 이제 마지막 신청자, 이성범 씨의 이야기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VCR 영상 - 이성범 편>


 저는 잘생기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세 가지를 도려내고, 깎고, 변화시켜왔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괴물 같은 얼굴, 괴물 같은 몸뚱아리였습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마자 면접관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참고 넘겼습니다. 그저 제 열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전혀 제 이야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제 위아래를 훑어보기 바빴으니까요. 그리고서는 돌아온 한마디는 “선해보이지 않는다”였습니다. 황당했습니다. 부모님의 3년상을 모두 치르고,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9번 구해서 올해의 시민상을 6번이나 받은 내가 선해보이지 않다니. 면접장을 나서자마자 성형외과로 달려갔습니다. 쌍꺼풀은 옵션으로 하고 돌려깎고 앞트임, 뒤트임, 콧망울 수술을 했습니다. 물론 종아리 수술, 지방흡입, 근육성형으로 완벽한 몸매를 만들어냈구요. 잘생긴 외모를 만드는 데에 성공한 것이죠.


 이듬해에 다시 면접장을 찾았습니다. ‘선한 외모’에 대한 지적은 없었죠. 하지만 이내 제 이력서를 보더니 한숨을 내쉬더라구요. 왜 이제껏 직무 관련 활동을 하지 않았느냐면서 말이죠.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바쁘게 일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력서를 보느라 바빴으니까요. 그리고서 돌아온 이야기는 “열정이 없다”였습니다. 회사 창립 이후의 지속가능보고서를 전부 완독하여 달달 외우고, 직무 관련 국제보고서까지 마스터한 내가 열정이 없다니. 심지어 난 다른 지원자들과 달리 여기 한 곳만 지원했는데. 탈락 발표가 난 뒤에 스펙 자문업체를 찾아갔습니다. 제대로 된 스펙 좀 만들어달라고. 그들의 조언에 따라 그럴싸한 스펙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관련 직종 인턴에서부터 아마존 악어밥 주기 및 버뮤다 삼각지대 쓰레기 청소까지. 이 정도면 꽤나 잘생긴 스펙이죠. 물론 몇 가지는 거짓으로 만들긴 했지만, 누가 알아차리겠어요?


 그 다음 해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1차, 2차 면접은 단숨에 통과해버렸죠. 그렇게 올라간 최종면접에서 저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면접장에 들어섰습니다. 면접관은 하나같이 저를 노려보고 있더군요. 강하게 몰아치는 질문에 제 목소리는 점차 기어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위축된 모습을 본 면접관은 “성범씨는 성격을 고쳐야겠어, 성격을. 좀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말이야”라고 화를 냈습니다. 조용하지만 차분한 성격이 이 회사의 연구원과 가장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말이죠. 결국 ‘회사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종면접에서 탈락했습니다.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꾼 내가 무엇이 맞지 않는 것인지. 저는 끝나고 정신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선 3개월간 입원하며 저의 성격을 좀 더 개방적이고 활발하게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매번 저에게 탈락의 고배를 안겨줍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네요.



 드디어 내 ‘못생긴’ 사연이 끝났다. 방청객 석에는 이미 훌쩍이며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연출됐다. MC도 눈물범벅. 이 정도면 충분히 내 간절함이 전달됐으리. 잘생긴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인가. 투표가 끝나고 이제 렛미인이 주인공을 선정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조연출이 MC에게 결과 종이를 전달했다.


 “당신의 운명을 바꿔드리는 메이크오버 성형프로젝트, 렛미인(Let Me 人). 그 1372번째 주인공은 바로... 마지막 신청자 이성범 씨입니다.”


 맙소사. 드디어 주인공이 되다니. 꿈만 같다. 드디어 나도 잘생겨먹은, 인간 구실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한 달간 이성범 씨에게 30명의 전문가들이 함께 할 것입니다. 손금 전문가 김 박사님께서 성범 씨의 재물운과 생명운을 성형해드릴 예정입니다. 관상 전문가 최 박사님께서는 성범 씨에게 복(福)귀를 만들어 드릴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박사님께서는 성범씨의 사주팔자를 새 사주팔자로 교체해드릴 계획입니다. 성범씨의 운명은 180도 변화할 것입니다. 성범 씨의 잘생긴 운명, 렛미인이 책임져드리겠습니다.”


-끝-



이런 글을 누가 읽겠는가? 

그런데 이 사람은 ‘유서첨삭’을 썼던 사람이다. 

처음 글 썼던 게 이 모양이었는데, 나중에 글쓰기를 배운 후 ‘유서첨삭’을 쓴 것이다. 

하다보면 나아진다. 하지도 않았는데 나아지는 경우는 없다. 

결단코 없다. 예외는 없다. 연습하라. 

지금 이 사람, 잘 먹고 잘 산다.. (PD로 영전해서 떵떵거리며 산다) 

여러분도 될 수 있다. 진짜로. 



.서에서의 설명과 묘사에 대해

글의 초반에 인물의 프로필을 채우지 마라. 설명충이 되지 마라. 묘사충이 되지 마라. 

인물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인물의 행동에 대해 더욱 고민을 해야 한다. 행동으로 인해 인물의 성격을 유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홍의 커피>


이상이 금홍에게 아메리카노를 건넸다. 금홍은 하얀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를 고집하는 단아한 조선 여성이다. 이팔 청춘 그녀는 여름엔 시원한 냉수를, 겨울엔 백비탕을 즐겨 마셨다. 허옇게 분칠하고 손잡이 달린 사발에 벌건 입술 자국을 찍어놓는 걸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신여성들과는 달랐다. 이상은 장인정신을 가진 사내다. 글 짓는 일보다 여인 다루는 일에 더 공을 들이는 모던보이다. 그런 이상이 금홍에게 까만 아메리카노를 건넸던 것이다. 금홍은 이상이 건넨 아메리카노를 단번에 거절했다. 바닥이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먹 같은 색이 꺼려져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은 장인정신을 가진 사내다. 이번엔 탄 내가 나는 카페라떼를 들고 와 금홍에게 건넸다. 

 “보시오, 이 음료는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의 빚깔을 띄지 않소? 전에 보았던 아메리카노와는 달리 푸근함을 지녔다오.”

금홍은 고개를 저었다. 

 “보시지요, 이 음료는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색을 닮았다 하나, 그 형태가 물과 같습니다. 이는 흙탕물과 같지요. 받지 못하겠습니다.”

 이상은 낙심한 듯 보였다. 금홍의 기개는 매우 대단하여 어느 누구도 함락하지 못할 성 같았다. 날이 추워져 금홍이 입고 다니는 하얀 저고리가 파랗게 보였다. 


 금홍의 저고리 만큼 하얗게 눈이 내린 날, 빨갛게 핀 꽃 아래 이상이 서 있었다. 무심하게 지나치려던 금홍은 그가 들고 있는 컵에 관심을 보였다. 

 “소복히 내린 눈을 담으셨습니까?”

 “아니라오.”

 “그러면 그 사발에 눈이 내린 것입니까?”

 “그것 또한 아니라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까라멜 마끼아또우라는 커피라오.”

 “그것이 음료란 말입니까?” 금홍은 놀라 물었다. 컵에는 하얀 눈이 봉긋하게 담겨있었다. 

 “이것은 생크림이라는 것이오. 커피의 맛을 돋궈준다오. 맛을 보시겠소?”

 이상이 들고 있던 커피를 내밀었다. 금홍은 그것을 받아 들어 마셨다. 

 

 “달콤합니다....”


 금홍은 하얗다 못해 파랗게 빛나던 저고리 대신 하얀 셔츠와 검정색 스커트를 입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서양의 음료는 먹색이기도, 흙탕물 색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닿은 찻잔은 새빨간 입술 자국이 남았다. 그렇게 금홍의 순백 청춘이 색에 물들기 시작했다. 


-끝-





‘금홍의 커피’에서의 시작은 ‘이상이 금홍에게 커피를 건넸다’이다. 이상과 금홍이 어떤 인물인지, 길지 않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이상은 꼬시려 한다)과 그에 대한 반응(금홍은 거절한다)이 더 중요하다. 


구차한 프로필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더 압축적으로 

그 인물을 설명해줄 수 있다. 


그러나, 경험상, 이 말은 너무 어렵게 다가올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냥 설명충, 묘사충만 되지 말자는 결심만 해라. 그것만으로도 극악으로 가는 지름길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다. 



.작문에서의 매력적인 오프닝 문장

:미션이 기반된 객관적 행동으로 제시

(한국을 떠나고 싶다)

꼭두새벽, 퉁퉁 부은 얼굴로 강남역 지하철에서 내려 스페인어 학원에 가는 발걸음은 총총, 가볍기만 했다.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한 것은ᅠ그 누구의 권유도 아니었다. 나는 삼십 인생 통틀어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 자신을 위해 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부단히 노력하면 기본 회화 정도는 언젠가 가능하리라. 나는 한국어가 아닌 스페인어가 모국어로 작동 중인 곳에서 살기로 결심한 것이다.ᅠ 


(그와 헤어지고 싶다)

뭐 먹을래?ᅠ 

라고 묻는 창권이는 날 보며 웃는다. 나는 아무거나, 라고 대답한다. 어차피 둘 다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말 맛있는 건 먹지 못 하기에, 뭘 먹든 상관이 없다. 창권이는 내 손을 잡는다. 창권이는 다한증에 가깝다. 남의 땀이 내 손에 묻는 게 유쾌하다고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여태, 창권이 손의 땀이 내 손에 1리터 정도는 묻었을 텐데,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창권이는, 그럼 떡볶이 먹으러 갈래, 라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엊그제도 같이 떡볶이를 먹었었다. 질린다.ᅠ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ᅠ)

나는 북스리브로에 도착했다. 엄마한테 받은 현대카드. 이걸로 나는 개념원리와 수학의 정석과 EBS수능특강을 위시한 참고서 50권을 잡히는 대로 샀다. 너무 많이 샀나 싶지만, 이 정도의 참고서도 없이 입시라는 전쟁터에 참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 많이 사서 나 혼자 들고 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창권이한테 카톡을 보내어 운반 요청을 했으나, 녀석은 피씨방에서 게임 중이란다. 오버워치. 총싸움을 하러 녀석은 내게 빨리 피씨방으로 오라한다. 같이 총싸움을 하자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창권이는 생각이 없다. 우리는 온라인에서가 아니라 참고서를 앞에 두고 세상과 전쟁을 치러야 할 고3인 것을…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참고서 50권을 집에 혼자 옮기기로 결심했다. 낑낑, 이 정도도 못 옮기면 그건 고3의 자세가 아니다. 나는 반드시 서울대에 들어가고 말 테다. 



10강. 니쥬와 오도시

내가 생각하는 스토리텔링에서의 핵심. 바로 니쥬와 오도시다. 

오죽하면 내가 만든 회사의 이름을 오도시로 지었을까. 

아주 중요하다. 니쥬와 오도시는 일종의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철학에 가깝다. 이 안에 수미상관과 아크플롯의 법칙도 포함돼 있다고 봐야한다. 

아주 아주 아주 중요하니, 잘 읽어주길 바란다. 


니쥬는 깔아준다는 뜻이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효과를 발생을 위해 미리 깔아둠’이다

오도시는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내 식대로 말하자면 ‘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의미다. 


이건 원래 개그용어다.

예를 들어 개그콘서트의 달인 코너에서, 류담은 니쥬, 김병만은 오도시라고 할 수 있다.

류담이 이건 할 수 없죠? 라고 깔아주는 멘트를 하지 않는다면, ‘달인’은 진행 될 수 없다.

니쥬가 있어야 오도시가 있다. 


“잘 생긴 남자 오래 못 간다. 못 생긴 남자? 아예 못 간다.“


여기서 만약, ‘아예 못 간다’라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다 치자. 그럼 이 부분이 오도시다. 

‘잘 생긴 남자 오래 못 간다. 못 생긴 남자?’. 여기까지가 니쥬다. 


니쥬가 없이 그냥, ‘아예 못 간다’라고 말했다 치자. 

오도시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불필요한 말이 된다. 

그 앞에 니쥬가 깔려있으니 이렇게 예시라도 되는 것이다. 

이렇듯 니쥬와 오도시는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확장해서 말하자면, 그 의미는 몹시 크다. 

일단 수미상관도 ‘니쥬-오도시’의 일부다. 

<인연>에선 서에 춘천을 니쥬로 깔았고, 결에서 춘천으로 오도시를 친 거다. 

말이 나온 김에 여러분이 거듭 읽고, 또 읽기 추천하는 

인연을 한 번 더 보자. 

인연은 정말로 훌륭한 작법 테크닉이 총동원 된 최첨단 작문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엔 읽다가 두 번, 혹은 그 이상 나오는 단어를 체크하도록 하자. 


인연(因緣) 


-피천득(皮千得)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 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연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와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끝-



자, 체크했는가?

안 했어도 내가 알려주겠다. 


춘천

미우라 

아사코 

꽃 (스위트피이 – 목련 – 백합)

성심여학원(대학, 소학원)

헤어질 때의 스킨십 (뺨에 뽀뽀 – 가벼운 악수 – 악수도 없이 절만 함)

동화책

아사코의 신발장 

우산 

소설 <세월>


이런 단어들이 반복해서 나온다. 각각의 문장 간에 서로 촘촘하게 얽혀있는 것이다. 

위의 소스들이 ‘니쥬- 오도시’로서 연결이 되어 있다. 

이를 통해 ‘구성력’이 확보된 것이다. 


그렇다면 구성력이 있다, 란 무얼 의미하겠는가?

정말, 아주 후려쳐서 간단히 말하자면, 

필요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필요 없는 것이 많을수록 구성력이 허접한 것이다. 

‘니쥬-오도시’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를 테면,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라는 오도시 통해 ‘세월이 이리 무상히 흐를지도 모르고 세월에 대해 이야기했었구나’라는 식의 효과를 읽는 이의 마음에 발생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앞에 ‘니쥬’가 깔렸기 때문에 효과가 생긴 것이다. 니쥬와 오도시에 해당하는 두 부분이 모두 ‘필요한 것’이 되었다. 둘 중 하나를 뺀다면 효과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니쥬와 오도시를 이해하고 그것을 작문에 적용시키면, 

구성력 있는 작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고퀄이 되는 것이고, 합격에 근접한 작문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리를 해보자. 

1. 수미상관을 적용시키면, 서와 결은 니쥬와 오도시 관계가 된다. 

2. 서에서 잡은 미션(혹은 텐션)은 니쥬가 된다. 본1, 본2, 본3은 그에 대한 나름의 오도시가 된다. 

3. 개요 일반 공식을 살펴보자. 


결: 가짜 결말 -> (본에서의 요소(들)을 모아 꺾기 시도) -> 진짜 결말 


이 구도에서 밑줄 친 부분은 오도시가 된다. 

그리고 밑줄 친 부분에 해당하는 본의 요소(들)는 니쥬가 된다. 


서의 오도시였던 본의 각 소개요들이 결말에선 니쥬로 쓰인다. 

수미상관을 통해 서는 결말의 니쥬가 된다. 

최대한 쉽게 썼음에도 이미 읽으면서 이해가 쉽사리 되지 않을 정도로 

이 개요는 이미 촘촘한 관계로 엮이게 된다. 


이것이 적용된 개요를 여러분은 이미 봤지만, 한 번 더 본다고 

해가 될 리는 없으니 또 보자. 


서: 등록금을 모았다. 서울예대 극작과에 합격하겠다. 

본1: 매일 일기를 쓴다. 

본2: 매일 개요 공부를 한다. 

본3: 매일 작문을 쓴다. 


결: 불합격  -> (일기, 개요공부, 작문을 모아 등록금으로 모아뒀던 돈으로 극작과 입시 실패 사례 서적으로 출판)-> 합격한 것보다 금전적으로 더 큰 성공


즉, 우리가 이미 봤던 고퀄 일반 개요는 

니쥬와 오도시 관계를 충실히 적용시켜, 

각 소개요들 간의 관계성을 구축시켜 구성력 넘치는 작문을 만들어내는 한 방법인 것이다. 


니쥬와 오도시는 거듭 말하지만 오묘한 것이다. 

비단 작문에 해당하는 스킬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분야라면, 어디에서든 통하는 스킬이니 

이에 대한 각자의 연구와 훈련을 멈추지 말자. 


.니쥬와 오도시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세계적인 작가

체홉의 총: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극작가 안톤 체홉.

세계 3대 단편소설가이기도 한 그가 역설한 작법 이론이다.


1막에 권총을 소개했다면 3막에서는 쏴야 된다는 거다. 

1막에서의 권총은 당연히 니쥬. 3막에서의 권총은 오도시이다. 

떡밥은 반드시 회수해라. 

즉, 쓰지 않을 장치(복선으로 볼 수 없는 설명적 요소)라면 없애버리고, 

등장한 요소에 대해서는 그 효과가 이어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초반에 소개시키고 나중에 매우 중요한 장치로 써먹어 

독자나 관객으로 하여금 초반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참고 작문

<제시문장: 광장과 밀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쓰시오>


작문_인어공주 탈출기


 난 비록 인어 공주이지만 두 다리 쫙 펴고 살지 못한다. 공주라는 이유로 공부하고 그에 걸맞은 자격증을 따야 했다. 그래야만 진짜 공주가 된다. 수업을 받는 교실엔 많은 어류가 빽빽하게 모여 있는데, 이곳이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친구들은 (자갈치, 해파리, 새우, 등등) 용왕님 아버지를 둔 내가 부럽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 나는 넓은 바다를 헤엄치는 게 아니라 기어 다닐 뿐이다. 아버지 말씀에 이곳이 상위 1%의 세상이라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자유를 얻고 싶고,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선 먼저 인간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언어를 배우기 위해 나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붙잡혀 온 토끼를 찾아갔다. 감옥에서 탈출시켜준다는 명목으로 토끼는 내게 언어를 가르쳐줬다. 공주 자격증을 보면 번번이 D+를 받은 나지만 인간의 언어는 빠르게 습득했다. 말을 배우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더욱 궁금해졌다. 


 언어도 배웠겠다, 나는 이제 헬스를 통해 다리 근육을 단련했다. 100만 년 전까지만 해도 수중에 살았던 토끼가 이제는 땅 위에 산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떠나는 순간까지 토끼는 자신에겐 원대한 꿈이 많다고 꼭 이룰 거라고 말했다. 헛둘 헛둘. 나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심지어 이곳은 바다지만) 열심히 트레이닝 했다.


 자,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짐을 싸서 야밤에 몰래 탈출을 시도할 계획이었다. 당일 날, 나는 계획대로 모자, 옷, 신발, 약간의 진주, 토끼의 집주소가 담긴 약도를 챙기고 문 밖으로 나섰다. 높은 성벽을 넘어 해수면 위로 가까워지려는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아버지의 호통이 들렸다.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떠나면 족보에서 제외시킨다는 말을 했다. 나는 주춤했지만 더는 이곳의 미련은 없었다. 바다 위 세상엔 내 자유가 존재했다. 공주가 되라는 건 순전히 아버지의 바람일 뿐, 나는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더구나 아버지의 자식들은 101명이다. 나 하나 없다고 티도 나지 않을 거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 위로 올라갔다. 내게 다가오던 아버지는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이거 의외로 쉽잖아!?) 그렇게 나는 밀실처럼만 여겨졌던 바다를 빠져나가 광장과 같은 지상으로 나가게 되었다.  


 지상에 땅을 딛는 순간 나는 뜨거운 햇볕과 익숙하지 않은 산소 때문에 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트레이닝으로 다리 뿐만 아니라 폐 기능도 강화 시킨 나다. 나는 가져온 모자를 머리 위에 쓰고 토끼의 집을 찾아갔다. 토끼의 약도엔 <바다에서 나온다-> 길을 찾는다-> 집을 발견한다> 라고 쓰여 있었다.


 긴 여정이었다. 집은 보이지 않았고 토끼는 어디에도 없었다. 산속에서 간혹 동물을 발견했지만, 누구도 토끼는 아니었다. 지상에서 지낸 지 3개월이 됐을 때쯤, 마침내 한 도시를 발견했다. 바다에서 볼 수 없는 고층 빌딩이라는 집이 높이 솟아있었다. 이런 게 지상이구나. 건물은 알록달록하고 번지르르했다. 그리고 거기엔 인간이 있었고,


 인간들은 모두 기어 다녔다. 바다에서 나처럼 말이다. 그들은 가방에 든 책의 무게 때문에 모두 일어서지 못했다. 엉금엉금. 걸어 다녔지만 얼굴은 필시 토끼였다. 피곤에 절든 토끼들은 하나같이 핸드폰으로 자격증 시험 일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한 토끼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인간의 세계는 내가 알던 것과 달리 불행하기 짝이 없었다. 그들이 향하는 삶의 약도는 <학교에 들어간다->자격증 공부한다->취직한다>를 지키기 위한 여정이었다. 도서관, 독서실, 고시원이라는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였고 자신만의 방에서 그들은 숨죽이고, 울기도 하고, 때때로 웃기도 하다가 떠났으며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꿨다. 그 외엔 뽀족한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나는 황급히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간간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인간도 있었지만 이런 세상일 줄 몰랐단 말이다! 바다로 돌아오자 족보에서 제외된 나를 사람들은 낙오자라고 불렀다. 누구도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이야말로 상위 1%의 세상. 내 생각이 짧았다. 나는 용왕님인 아버지에게 싹싹 빌었다. 아버지는 대신 공주 자격증을 모두 따라고 말했다. 공부할 게 너무 많긴 해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상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은 것이다. 복에 겨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이래서 우리 아버지가 배부른 토끼 간을 좋아하시는 구나(인간의 세계엔 극히 적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가방을 메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수업받는 곳으로 헤엄쳤다. 



-끝-




이 작문의 니쥬와 오도시가 무엇인지 체크하고.

훅, 홀드, 페이오프가 어떤지 적어보자. 

이 작문의 개요도 적어보자. 

이 작문이 합격할 것 같은지, 불합격할 것 같은지, 고민해보자. 


이 작문에 대한 객관적인 자신의 판단 기준 그대로, 

자신의 작문도 평가해보자. 


자기 객관성이 확보된 후 끊임없는 수정을 통해 

진정한 실력 증강이 폭발적으로 이뤄진다. 



11강. 글쓰기에 들어가서의 유념 사항 #2

.쓰다가 막혔을 때

니쥬와 오도시를 이해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쓰기’에 대한 연습이 얼추 꽤 되었어도, 

소개요는 분명히 재미를 담보함에도, 순간적으로 글쓰기가 막혀 아깝기 그지없는 시험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의 파훼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글쓰다 막히면, 그때가지 본인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읽다가 눈에 띠는 특정 소재를 니쥬 삼아 막힌 부분에서부터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럼 예기치 못했던 니쥬와 오도시 관계가 형성되어 구성력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내용은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게 된다. 


올해 나는 대략 364만원 어치의 금융적 손실을 겪었고, 나이는 하루에 100만원씩

꼬박꼬박 먹었다. 그 100만원이 빚인지 적금인지는 합계가 1억쯤 되었을 때나 

분별될 것 같은데, 그때까지의 기다림이 상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연전연패의 한 해였다. 하려 하는 것마다 매번 내가 나한테 졌다. 

나의 근간이 얼마나 허술한지 느끼며 사람들에 대한 마음의 부채는 쌓여만 갔다. 

적자와 리스트와 연전연패에 따른 부채의식에 얼마간은 대공항 상태에 직면했다. 


그렇지만, 그러나, 하지만, 허나, 


같은 류의 접속사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구태의연하게 또 저 간단한 

접속사를 배열하고, 그 뒤에다가 희망의 찬가를 붙이는 걸 관둬야 한다. 



만약,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다음에 어떤 문장을 이어붙여야 할지 막막하다면, 

그때까지 쓴 글을 읽으면 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초반에 빚과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써먹어 내용을 전개할 궁리를 해보면 되겠다. 


“적자와 리스트와 연전연패에 따른 부채의식에 얼마간은 대공항 상태에 직면했다. 


그렇지만, 그러나, 하지만, 허나, 


같은 류의 접속사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구태의연하게 또 저 간단한 

접속사를 배열하고, 그 뒤에다가 희망의 찬가를 붙이는 걸 관둬야 한다. 인간의 삶은 부채와 적자의 금융, 연전연패의 이야기보다 더 거대하다. 그 이상의 것이다. 




앞에 나왔던 것을 니쥬삼아 내용 연결을 시켜버렸다. 이것도 일종의 오도시.

어렵지 않다. 쉽다. 진짜다. 


.결말을 쓰기에 앞서서

아무리 본3까지 재밌게 썼어도 결국 결말에서 망해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페이오프는 결말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기-승-전-병’도 당연히 

무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말이 병맛이니 페이오프가 최악인 것이다. 

그러니, 결말을 쓰기에 앞서선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참사를 자행하고 싶지는 않지 않은가? 


결말은 ‘오도시 구간’이라 봐야 한다. 

결말이 오도시 구간이라는 것은 새로운 소스가 결에서 ‘갑툭튀’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갑툭튀가 결에 있으면 안 된다. 결말은 순전히 오도시 구간으로서 이미 나왔던 것을 모두 니쥬로 삼아 처리해주는 소개요다. 다음 예를 보자.


예시)

고층빌딩 1층 로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시간이다. 정장을 입은 노인, 장년, 청년 이 세 사람이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무슨 일인가? 결말은 무엇일까?


서 - 이 세 사람은 저승사자다. 장부를 잃어버려 오늘 이 곳에서 데리고 가야 할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팀장 저승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것이다. 장부에 적힌 인원수와 데려갈 인원수가 틀리면 절대 안 된다. 팀장은 고심 끝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자고 한다.


본1 - 청년이 대신 데려갈 사람을 고른다. → 명품을 좋아하는 성공한 평범한 여자.

본2 - 장년이 대신 데려갈 사람을 고른다. → 20대의 애인이 있는 40대 평범한 남자.

본3 - 노인이 대신 데려갈 사람을 고른다. → 정년이 보장된 60대 평범한 남자.


결 - 팀장이 잃어버린 장부를 찾아낸다. 그것은 애초에 저승에 있었다. 장부를 보니, 오늘 데려갈 사람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이 빌딩을 포함해 수백억의 재산을 물려받은, 대한민국의 최고 금수저인 남자였다. 팀장은 이 금수저의 아버지에게 받아먹은 것이 있냐고 다그치고, 저승사자들은 고개를 숙인다. 


* 밑줄 친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데우스 엑스 매키나’라고 부른 것이다. 

최악의 결말을 부르는 작법이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나는 갑툭튀라 부른다. 

지금까지 해 온 이야기들이 모두 무효가 되어버린다. 구성력이 붕괴된다. 

증오의 대상이다. 이렇게 글쓰는 사람은 미움 받아야 마땅하다. 

개요만 읽어도 망조가 든 것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가?


결에선 절대로 갑툭튀가 용인되지 않는다. 그 전까지 나와있던 것을 토대로 

결말을 만들어야 한다. 


장부가 저승에 있었다니? 

빌딩 소유주인 금수저 남자는 또 뭔가?

그 정보들이 서에 나왔어야 한다. 없었는데, 갑자기 그렇다고 내용을 펼치면, 

읽는 이가 개연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가? 다음 것도 보자.



예시)

미션 남자는 자신의 정확한 모습을 보려고 한다. 


서- 남자는 거울을 보다가, 이것은 왜곡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님을 깨닫는다. 남자는 진짜 정확한 자기 자신을 보기 위한 시도를 한다.


본1 - 남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묘사해달라고 한다.→ 사람마다 말이 다르다.

본2 - 남자는 사진을 찍는다. → 사진마다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

본3 - 남자는 동영상을 찍는다. → 만족스럽지 않다.


결론 - 남자는 유체이탈을 시도한다. → 자신의 정확한 모습을 본다. (가짜결말)

그런데 남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남자는 죽었기 때문이다. (진짜결말)


유체이탈에 대한 정보는 결론 이전에 어디에도 없을 터. 이미 망한 거다. 

이런 류로 만약 개요를 짰다면, 버리자. 누누이 말하지만 쓰면서 

개요를 고칠 수는 없다. 

안 되는 개요에 미련을 두지 말자.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마크 힐스 이야기의 주인공이 열심히 돈을 모으는데, 갑자기 엄마가 일억을 보내 준다. → 그 전까지의 모든 소개요가 무시된 거다. 생각만 해도 재미가 더럽게 없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결말은 오도시 구간이다. 

이미 나와있는 걸 처리해주는 거다. 그러므로 고퀄 개요를 짰어도, 

응당 결말을 쓰기에 앞서선 자신이 짠 개요를 한 번 더 볼 필요가 있다. 

그 개요에 적힌 핵심 키워드는 무조건 결말에 다 적어주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나는 이것을 ‘기계적 모으기’라고 부른다. 


본 - ➀➁➂

결 - 본에서 다루었던 ➀➁➂를 결에서 다시 한 번 어떻게든 언급하기


기계적 모으기는 본론에 다뤘던 것들을 결말에서 모아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것으로, 그것이 결말에서의 마지막 전환에 영향을 끼치든 안 끼치든 일단 다이렉트하게 그 소스를 적어버리는 것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가 연관성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고 느끼게(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 결말에서의 꺾기에 영향을 못 끼치더라도 일단 써라. 쓴다고 해서 해될 게 없다. 어렵지도 않다. 그럼 하자.


제시어 : 지킨다


 벌써 11시다. 처리 해야 할 서류들은 아직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사무실을 떠날 수 없다. 국민의 이익을 지켜내는 것이 검사로서 지녀야할 소명이기 때문이다. 현재 맡은 케이스는 한창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과잉 정당방위 문제. 자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자의 법익을 고려하지 않는 방어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가해자의 편에 서서 20시간이 넘도록 서류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제 10장만 더 읽으면...

 ‘끼이이이익’

 문 여는 소리. 문 앞에는 복면을 쓴 한 괴한이 보인다. 어떻게 서울지방검찰청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들어올 수 있는 거지? 때마침 증거품으로 수거한 야구 방망이가 보인다. 이걸로 한 번에 가격을 하면 괴한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터.


 엇, 잠깐만. 일단 중요한 것은 괴한이 어떤 무기를 들고 있느냐다. 가해자보다는 더 심한 폭력이면 안 되는 것이 정당방위의 요건이다. 현재 괴한이 들고 있는 흉기는 신문지로 쌓여져 있다. 칼일까? 망치일까? 아니면 그냥 짱돌? 알 수 없다. 흉기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방망이를 드는 것은 과잉 방어다. 흉기나 위험한 물건은 사용하면 안 되니까 그냥 맨주먹으로 상대하기로 한다. 그래야 정당방위가 인정받는다. 자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들어서...


 엇, 잠깐만. 먼저 내가 폭력을 가한다면 정당방위가 아니다. 일단 괴한이 나를 찌르든 패든 해야 한다. 급습했다가는 오히려 내가 폭행으로 입건될 가능성이 높다. 최대한 방어만 하려고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괴한이 달려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역시나 괴한이 나에게 달려들어 칼로 다리를 12방정도 찌른다. 그래 예상대로 칼이었어. 이제 때릴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성립되었다. 하지만 다리에 칼을 맞아 기우뚱거리며 주저앉았다. 그래도 적극적인 방어 차원에서 주먹으로 


괴한의 종아리를 2대 


가격한 것으로 만족했다.엇 잠깐만. 그때 갑자기 괴한이 복면을 벗는다. 여자다. 덩치는 나보다 2배 이상 커서 남자인 줄 알았는데. 그 여자가 갑자기 나를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보더니 그 큰 몸뚱아리로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으며 강제로 입술을 맞추려고 시도했다. 그녀의 혀가 나의 두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던 찰나. 아, 그래. 아무리 그녀가 나보다 힘이 좋아도 여자는 여자다. 따라서 그녀의 혀가 나의 입안을 휘젓더라도 나는 절대로 혀를 깨물어서는 안 된다. 그녀를 밀쳐내 보려고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난 그녀의 혀를 깨물 수 없었다. 그래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포스트잇에 적어서 그녀에게 보여준다. 


‘하지 마세요.’

 

 허나, 그녀는 막무가내였고, 신성한 법의 집행을 위해 나는 버티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1시간가량을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다른 사무실에 남아있던 누군가가 소란을 듣고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그녀를 체포해갔다. 북적이는 기자들 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저는 원리 원칙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절차에 따라 정당방위를 제대로 행사하였고, 저의 법익도 그녀의 법익도 지켜냈습니다. 비록 지금 많이 힘들지만 말이죠.” 범인이 무기가 무엇인지 몰라 나는 일단 맨주먹으로만 맞섰다. 나는 칼에 12방 맞았지만 종아리를 2대만 때리며 방어했다. 범인이 여자인 것을 안 후에는 키스도 내버려뒀다. 모든 것이 합법적이었다. 칼에 맞아 내 다리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은 신성한 법의 구현이 얼마나 값진지 보여주는 듯 뚝뚝뚝, 멈추지 않고 계속 떨어진다. 그 때 갑자기 날아들어 온 기자의 한 질문.

 “가해자를 인터뷰해보니까, 가해자의 종아리에 멍이 좀 나있어서 전치 4주가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제대로 정당방위하신 거 맞습니까?”

 아차, 넘어지면서 때린 주먹 2방. 너무 세게 때렸나보다.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이것은 폭력에 불과했다.


-끝-



위의 볼드처리된 부분은 내가 추가해본 것이다. 저것이 바로 기계적 모으기다. 

아주 미세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본의 요소를 그냥 일단 어떻게든 다이렉트하게 다 적어버리니 구성력이 좀 더 보강되었다. 해될 게 정말 없다. 분량 걱정은? 하지 말자. 괜찮다. 일단 하고 보자. 안 하는 것보단 늘 낫다. 


,<자서전식 서본결> 개요 짜기


최대한 단시간에 구상할 수 있는 개요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 정보들로 개요를 짜는 방법이다. 

일기를 쓰는 방식과 같다. 혹, 너무 일기 같다고 느껴지면, 

시점을 3인칭으로 설정하는 방법이 있다. 자서전 개요는 ‘안전빵’ 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식 서본결 개요 쉽게 짜는 방법 


예를 들어, 제시어가 ‘악당’일 때 소문에 대한 키워드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그 나열된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내 인생에 있었던 ‘악당’ (내 경험이나 들은 이야기, 알고 있는 정보 등등) 을 떠올린다. 그리고 최대한 짧고 간결하고 빠르게 개요를 작성한다.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확보하고 있는 디테일을 그대로 써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아래 작문을 보자. 


제시어: 악당 


천당의 맛을 아는 교회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착해 보였다. 내가 아무리 까불고 멋대로 굴어도 웃으며 받아주시는 사람들은 그분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수용 선생님이 제일 착했다. 전수용 선생님에게 하는 그 얄궂은 장난을 집에서 했다간 나는 사랑하는 나의 엄마, 아빠, 형에게,


지옥의 맛


을 느낄 때까지 구타당할 게 분명했으니까. 전수용 선생님은 당시 22살 정도였지만, 내겐 키로 봐서나, 나이로 봐서나 두 배 가깝게 월등히 많은, 그야말로 어른이었다. 전수용 선생은 주일 학교 나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안경을 꼈었고 누구나 할 법한 헤어스타일을, 누구라도 흔쾌히 좋아하지는 않을 복장에 맞춰 입은 대학생이었다. 내가 아무리 까불어도 언제나 허허허, 실실실, 웃음을 잃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담임이 된 지 4개월 차에 되었던 그날, 나는 전수용 선생님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다. 노상 전도 비슷하게 나갔을 때, 변함없이 까부는 내게 선생님은 원초적 본능에 의하여 거룩한 


싸다구 한 방


을 선사해주셨던 것이다. 아팠다. 근데 끝이 아니었다. 한 방. 또 한 방. 또 또 한 방. 워낙 별안간 벌어진 일이라 울음을 터트릴 여유는 없었다. 잉. 이게 뭐지, 싶은 마음으로 나는 전수용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도 날 보았다. 그러더니 주변을 살폈다. 이 광경을 누가 봤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음을 나도 원초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행히, 혹은 불행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내 입 속에선 피가 터졌다. 피를 보니 그때서야 뒤늦게, 울음을 터트려도 되는 명분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으앙앙앙, 소리를 지를 찰나, 선생님은 내 입을 손바닥으로 막고 한적한 골목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우리 회개하자.


맞은 건 난데, 선생님도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1시간가량 눈물을 쏟아내며 우리 안에 있는 악마의 존재에 대해 회개했다.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내 안엔 악마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 안에 악마가 있다니! 이 어른께서 하시는 말이 틀릴 리 없잖아.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악마에 대해 경악하며 회개했다. 제발 나를 용서해주세요, 제발요, 제발! 긴 회개가 이어진 후, 선생님은 마른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며 말했다. 


이건 하느님과 우리 둘 만 아는 비밀이다. 알았지?


암요. 아무럼요. 나는 그 비밀을 그 후 20년 동안은 지켰다. 나는 그 사실을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비밀이었으니까. 하느님과 나와 전수용 선생님만의 비밀.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고작 22살이었던 전수용 선생님이 느꼈을 당혹감이라는 것도 이해된다.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강호순이나 유영철도 0.0001% 정도는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물론 노력이 진정한 이해로 이어지지는 않더라.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술책이었음을 이젠 안다. 다른 교회 사람들에게 자신의 폭력적 면모를 감추기 위해선 그러한 머리굴림, 원래 내 언어로 쓰자면 대가리굴림이 필요했으리라.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욕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 식으로 싸다구 4방을 맞을 짓은 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하느님, 아버지,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후로 늘 내 안에 있다고 전수용 선생께서 지적해주신 악마의 존재에 대해 전전전긍긍긍 하며 살았다. 나는 그냥 내가 죄스러웠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는데, 그가 그저 짜증나게 구는 교회 꼬맹이한테 우발적으로 싸다구 몇 방을 후갈겼을 뿐이었다는 건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그를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건 순전히 나만의 오해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서른이다. 세상의 맛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분은 마흔을 훌쩍 넘기셨을 테다. 나는 이미 교회 같은 곳에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됐다. 그러나 이 일화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전수용 어르신은 잊었을 것이 틀림없지만,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바란다. 먼 훗날, 전수용 선생님의 천당행을 결정하실 때, 우리에게 이런 비밀이 있었음을 반드시 주지시켜 달라고. 그리고 비겁한 망각과 술책으로 자신의 잘못을 덮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으뜸된 악당의 자질임을 가르쳐달라고. 악당이라고는 썼지만 사실 그건 악마라고 쓸 수는 없어서 예의상 교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근데 난 이렇게 다 까발렸고, 메롱, 다만 딱 하나 고마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당신의 악마적 행실을 잊지 않아, 당신과 같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 몹시 애썼다는 것. 그뿐이라고. 


-끝-




자기의 경험이나 정보, 지식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디테일 확보에 문제가 없다. 디테일 확보에 문제가 없으므로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다. 물론, 이 쉬운 것도 나름의 연습이 필요하다. 

일기를 매일 쓰는 것이 ‘자서전식 서본결’을 연습의 왕도이다. 

그러므로 일기를 추천하는 바다. 


( -> 솔직히 일기는 매일 쓸수록 글쓰기 실력 향상에 무조건 보탬이 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너무 일기 같다 싶으면, 

아래와 같이 시점을 1인칭 주인공시점에서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바꿔주는 것도 고려해볼 법 하다.  

‘픽션’처럼 보이는 효과가 생긴다. 있는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제시어: 악당 


소년 수동에겐 천당의 맛을 아는 교회 선생님들이 한결같이 착해 보였다. 수동이 아무리 까불고 멋대로 굴어도 웃으며 받아주는 사람들은 그분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수용 선생님이 제일 착했다. 전수용 선생님에게 하는 그 얄궂은 장난을 집에서 했다간 수동은 사랑하는 엄마, 아빠, 형에게,


지옥의 맛


을 느낄 때까지 구타당할 게 분명했으니까. 전수용 선생님은 당시 22살 정도였지만, 수동에겐 키로 봐서나, 나이로 봐서나 두 배 가깝게 월등히 많은, 그야말로 어른이었다. (이하 생략)





.제시어를 까먹지 마라

제시어가 연필이면 연필의 이미지를, 촛불이면 촛불의 이미지를 가지고 가야 한다.

이 제시어를 버리면 절대 안 된다. 이것은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기계적 모으기

본 - ➀➁➂

결 - 본에서 다루었던 ➀➁➂를 결에서 다시 언급하기


기계적 모으기는 본론에 다뤘던 것들을 결말에서 모아 다시 한 번 언급하는 것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가 연관성이 있는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기계적 모으기’를 해서 엄청난 성과를 얻는 경우는 몇 없지만, 

해서 손해가 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 그러니까 일단 하자. 해라. 


예) 마크 힐스


본론에 나온 것들이 → 담배 끊기, 걷기 운동

결말에 영향을 끼친다. → 104세까지 살 수 있었음



* 그냥 생각나서 해보는 책 추천 

로버트 맥키 -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애덤 그랜트 – 오리지날스 

블래이크 스나이더 – SAVE THE CAT!



12강. 그 외 팁

.대사 잘 쓰기

대사를 잘 쓰려는 방법은, 대사를 쓸 땐 나지막하게 실제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쓰는 걸 추천한다. 


"학생, 영화 감독이 꿈인가 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 "학생이지? 너도 감독 되는 게 꿈인가 보네..?"

이게 좀 더 자연스럽다. 


"사실 조금 두렵기는 하지만, 영화가 없는 제 삶이 더 두려워요. 

-> 사실 조금 두려워요. 근데.. 영화 없이 사는 게 더 무섭거든요. 


조금 더 팁을 주자면, 

한자어를 배제하고 최대한 한글로 쓰는 것이다. 추상어도 잘 안 쓴다.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내 삶은 너무 파란만장했어!"

라는 식으론 말을 잘 안 한다. 그래서 이렇게 쓰면 대사가 후져진다. 


"나 여태까지 살면서 진짜 별별 꼴 다 겪었거든!"

이런 식으로 말한다. 차이는 한자어를 빼고, 추상어를 뺀 것이다. 일상어를 써야한다. 



.초구체적으로 쓰기 (카메라가 되어 글쓰기)

카페에 가서 보이는 모든 것을 묘사한다. 

보이는 사람들의 면면. 테이블의 형태를 비롯한 인테리어의 모든 것. 

빼곡하게. 최대한 자신의 관점을 제거하고 써본다. 

1시간 정도 써보자. 필력 증강이 이뤄진다. 

이걸 2주에 한 번씩 반복, 총 10번 정도 하면 구성하기(개요짜기) 이외의 글쓰는 것에 대해선 

두려움이 거의 사라진다. 자신감이 붙는다. 

늘지 않으면 나를 찾아와서 내 멱살을 잡고 따져라. 


.시제에 공간이 제시된 경우

시제: 남산 케이블카에 여자 하나, 남자 하나가 같이 탔다. 이들은 내릴 때 울면서 손을 맞잡고 내렸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션 - 자살하려던 남녀가 극한 상황에 몰려서 죽으려 한다. 


서 - 남산 케이블카에, 자살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탄다. 그리고 뒤늦게, 남자 1,2가 보따리로 묶인, 기다란 것을 하나 식 들쳐 매고 올라탄다. 그것은 사람 키만 하다.


본1 - 케이블카가 멈춘다. 여자와 남자는 평온하게 대화를 한다. 남자 둘은 안절부절 한다.

본2 - 남자 1이 ‘보스’에게 전화를 건다. 처리할 것에 문제가 생겼다고 전한다. 지금 여기요? 두개 있어요. 같이 묻을까요? 같은 대화를 한다. 여자와 남자는 살짝 불안해져 서로 눈치를 본다.

본3 - 그 때, 케이블카가 다시 작동한다. 케이블카가 덜컹거리자, 남자2가 들쳐 맨 보따리가 벽에 부딪히며 우두둑,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남자 1은 부러졌네 부러졌어. 라고 말하고, 여자와 남자는 안절부절 한다.


결 - 케이블카가 정상에 도착한다. 여자와 남자는 손을 맞잡은 채, 살려주세요 울부짖으며 뛰쳐나온다. 남자 1,2는 그런 여자와 남자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남산 뒷뜰로 향한다. 그리고 보따리에 싸 온 나무 두 그루를 ‘보스’가 가리키는 곳에 심는다. 




망한 개요다. 일단, 케이블카를 타려는 이유 따위 없는데, 왜 케이블카를 타는가? 

역시나 리얼리티의 확보가 물건너 간 개요다..


상황이란 시간과 공간과 인물이 모여 구성되는 것이다. 

공간이 주어졌을 땐 그 공간에 인물이 온 이유 제시가 되어야 상황이 풍성해진다.  

주인공이 남산타워를 폭파시키려는 공작원이라면, 

케이블카가 멈췄을 때 하는 행동이 따로 있다. 


취준생이 남산 케이블카를 탄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100일동안 하루에 한 번씩 케이블카를 총 100번 타면 무조건 취업에 성공한다는 

인터넷 미신 때문에 탔는데, 케이블카 안에서 

100번째 취업 광탈 소식을 들으면 행하는 행동의 범위가 달라진다. 


시제에 공간이 제시돼 있으면 등장인물은 응당 그 공간에 온 

이유가 있어야 이야기가 재밌어진다는 뜻이다. 


결론) 시제에 공간이 제시된다면 주인공(들)이 그 공간에 온 이유도 반드시 생각하라. 



.등장인물 이름짓기에 대하여

등장인물 이름이 비슷하면 홀드에 도움이 안 된다. 

예를 들어보자. 


혁민과 동혁


두 인물이 등장하는 작문을 쓰면, 어떻겠는가?

이름이 헷갈린다. 누가 누구지? 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홀드에 도움이 안 된다. 

‘혁’자가 비슷하니 각 인물 간 색인이 덜 된다. 

바꿔보자. 


연소와 흑철. 


위의 것보다 더 명확하게 색인이 되는 이름이다. 

완전히 달라야 색인이 잘 되고, 

읽는 이의 불편함을 해소시켜줄 수 있다.  

홀드에 당연히 도움이 된다. 

디테일에 천사가 있다. 합격이 있는 것이다. 


-> 시험장 가서 이름 지을 생각을 버리자. 

미리 지어놓고, 작문 할 때마다 그 이름을 써먹자. 

이렇게 하면 편하다. 


1. 착한 여자 이름

2. 나쁜 여자 이름

3. 착한 남자 이름

4. 나쁜 남자 이름


이렇게 4개만 지어놔도 작문할 때 편의에 따라 바로바로 써먹을 수 있으니, 

미리 지어놓자. 앞서 말했듯 4개의 이름이 비슷하면 안 된다. 

색인이 확실히 되게 짓자. 



.시제 언급하기 

시제가 제시어든 문장이든 상관 없다. 

제시어라면 제시어 자체를 최대한 많이 작문 내에 언급하라. 

문장이어도 마찬가지다. 그 문장의 핵심 키워드를 작문 내에 

최대한 많이 적어라. 분명히 찝어줘야 한다. 

시제 핵심 단어는 최대한 많이 적자. 


아무리 자기가 시제로 썼다 해도, 갑님께서 그렇게 못 느낀다면, 

합격선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시제의 핵심을 다이렉트하게 적어주면 최소한, 

이 작문이 시제와 연관된 작문이라는 것만은 

읽는 이가 분명히 알 수 있다. 


최대한 많이 쓰고, 특히 결말에선 무조건 한 번 이상 언급하라. 

시제와의 연관성이 쉽게 느껴져서 합격 안전선이 가까워진다. 



* 개요 연습용지 제안

작문을 쓰기 전 이러한 용지를 마련해놓자. 

내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다 머리에 있을 것 같겠지만, 

막상 연습할 때는 물론, 시험장 가서도 까먹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억력을 신용치 말고, 기록을 신용하자. 아래의 흐름대로 메모하면, 

망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망한다면, 그건 연습을 게을리 한 

본인 탓이 된다. 연습, 연습, 또 연습니다. 


개요 연습용지


1) 키워드란

: 시제 관련한 키워드를 적는다. 10개까지 적는다 생각하라. 


2) 로그라인 

➀ 주인공 수식어

➁ 주인공을 방해하는 것(혹은 사람)의 수식어

➂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


3) 미션

: 구체적으로 적어라. 


4) 개요

: 서본결이다. 반작문화가 되지 않게 

각 소개요별로 제목만 짓는다는 마음으로 적어라. 







.여기까지

자, 됐다. 이걸 다 읽었는데도 모르겠다면... 한 번 더 보자. 

그래도 모르겠다면, 한 번 더 보자. 

그럼에도 또 모르겠다면, 설마. 그럴 리 없다. 보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연습이 동반되어야 한다. 


연습 없이 실력 향상을 바라고 합격까지 바라는 것은, 

거듭 말하지만, 양아치의 미덕이지, 여러분의 미덕이 될 순 없다. 

그리고 하나 더. 여러분이 느껴야 될 

수치심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다. 


잘 못 쓰는 것


이 아니다. 여러분이 글을 잘 못 쓰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러니 배우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연습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여러분이 느껴야 할 진정한 수치심은 무엇인가?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기로 한 작태


에서 비롯된다. 정말 눈 뜨고 봐줄 수가 없다. 실패라도 계속해라.

이번 연습이 실패가 되었다면, 다음 번에 잘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덤벼야 한다. 계속해야 는다. 

합격이 목표 아닌가? 연습 할 때의 실패를 니쥬 삼아 합격이라는 오도시를 쳐라. 

그러므로 실패는 수치심의 대상이 아니라, 

합격이라는 자존감 승천의 근거, 즉 니쥬다. 계속 자신 삶에 그 니쥬를 심어둬라. 


부단히 연습하느라 시간을 쓴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이뤘으면 좋겠다. 

합격하길 바란다! 다 자기 좋자고 시작한 사업이니 즐기면서 한다면 

더더욱 좋겠고! 

그럼 안녕! 이상, 나 김봉민이었다!


-홍보도 좀 하겠다. 필요한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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