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신, 찰리 카우프만, 아론 소킨, 마틴 맥도나.
내가 상당히 좋아하고 지지하는 극작가들이다.
시나리오 작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이건 내가 사람들 봤을 때 유별나서 그런 것일 텐데,
나는 시나리오와 희곡을 구분해서 부른다.
학교 영향이겠지. 학교에서 그렇게 불렀다.
영화 대본은 시나리오.
공연 대본은 희곡.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와 극(또는 희곡)작가라고
나눠서 부르는 편이다.
그리고 이들은 공연 대본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정의신
이들은 극작가 출신이거나, 연극쟁이 출신이거나,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써온 사람들이다.
통칭, '극작가'가 이들 커리어의 핵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찰리 카우프만
그들의 작품 세계도 물론 훌륭하다. 하나씩만 뽑아도
이러한 빵빵한 스쿼드가 마련된다.
정의신의 '소년소녀창가집'.
찰리 카우프만의 '이터널 선샤인'
아론 소킨의 '머니볼'
마틴 맥도나의 '필로우맨
아론 소킨
극작가가 연출가와 프로듀서들의 꼬붕으로
전락하고 있는 시대에 당당히, '극작가'로서 그 위력을
떨쳐주어 마음 속으로 열렬히 응원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마틴 맥도나
극작가로서만 살 수 있을까,
라는 나의 불안에 해답을 꾸준히 제공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덧 서른 중반이 된 나처럼,
그들도 모두 달라졌다. 이 극작가들은 결국, 모두,
영화감독이 되었다.
뭐, 맥도나는 일찍이 영화감독이 되었고,
그를 알게 된 것도 처음엔 영화감독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카우프만은 연극을 소재로 한 영화를 감독하더니,
제작자이기도 해서 돈 많아 굳이 연출까지 안 할 줄 알았던 아론 소킨도 작년에
감독 데뷔를 했고, 이젠 정의신마저 영화감독이 되었다.
안톤 체홉도 아마 21세기까지 살았다면,
분명히 영화감독을 했을 것 같다.
깊게 생각할 것 없다. 이들이 뭐, 단합해서
우리 언젠가는 영화감독이 꼭 되자, 라는 약속을 했을 리는 없다.
대본을 잘 쓰고, 성과가 좋으니, 결국엔 영화감독도 했겠지.
굳이 '아, 난 절대로 공연 대본만 쓸 거야' 같은 각오를 품고 살 이유도 없다.
근데, 생각이 깊어진다.
영화감독으로 시작하여, 영화감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정점에서 극작가를 겸하는 경우가 있었나.
그러나 극작가로 시작하여, 극작가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영화감독도 하게 된다. 전자는 없는데, 후자는 있으니,
뭔가 있는 거다.
요즘 견변처리전문가이자 러너지망생인 나와는
몹시도 무관한 일일 수 있다. 그냥 나름의 덕질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각 미디어 간의 계급이랄까. 그것의 확실한 이목구비를
본 것 같아, 자꾸만 생각이 깊어진다. 이놈의 얼굴은 장동건에 가깝나,
옥동자에 가깝나.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