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과 정확.
배달이든 언론이든 사회와 개인의 변화든,
그래야 좋다.
신속하지 않으면 흥이 안 나고,
정확하지 않으면 폐를 끼치게 된다.
신속은 했다. 대신 부정확 했고.
정확을 포기하고 신속한 걸,
또 신속하게 흥에 겨워 자랑으로 여겼으니,
이 또한 정확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계속 그렇게 스스로에게 폐를 끼쳤다.
시작할 때부터 정확을 챙겨야 한다.
번지수를 제대로 파악하고,
팩트를 이중으로 체크하고,
변화 양상의 얼개를 개요로 적어봐야 한다.
시작할 때 정확을 포기하면,
그다음부터 부정확하게 계속 가는 거고,
어쨌든 뭔가가 달라지긴 하나, 원했던 변화는 그게 아니었으며,
마지막엔 엉뚱한 영토에
자신의 시신을 오배송하게 되고, 그래도
참 보람된 일련의 과정이었단 거짓을 묘비에 적겠지.
이런 어조는 지겹다. 꼰대 같다.
반성해본다. 반성하면, 좀 덜 꼰대 같다.
이런 걸 두고 나름의 성찰이라고 해보자.
성찰 없는 배달과 언론과 변화, 거기에 글쓰기는
꼰대적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신속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확해야겠다. 크. 결말이 좋다. 결말이 좋으면
다 좋다. 나의 무덤도 정확한 요약글과 함께,
정확한 곳에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정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