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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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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거지

by 김봉민 2018. 7. 6.


 



<1>

예전 상해(上海)에서  본 일이다. 젊은 거지 하나가 있었으나, 

나는 그 거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실은 상해에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2> 

거지스러움을 정의한다면 

첫 번째로는 누추한 행색을 집어넣어야 할 것이고, 

두 번째로는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넣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아마 일정한 주거지역이 없다는 것일 테다. 

네 번째, 업신여김을 당하기 쉽다는 거.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건, 

여기에 낄 수 없다. 

그건 거지스러움이 아니라 

인간스러움에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3> 

그날 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이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지인환을 만나 내가 왜 상해에 이제 막 관광 온 여행객처럼 

거대한 백팩을 등에 메고 있는지 설명했다.

백팩 안에는 내 옹졸한 20대의 결과물, 혹은 부산물로 가득했고, 

그 무게는 만만치 않았으나, 버틸 만 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갈 순 없어. 

스물을 맞이한 인간이 하는 게 나을 결심을

서른에 지인환에게 밝혔다.

나는 그때 지인환을 안심시키러 간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되었어도 우리가 준비 중인 공연이 그래도 

차질 없이 진행될 거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신세를 지러 광화문 인근에서 

황도형과 함께 존슨탕을 먹고 있는 윤인석을 만나러 갔다. 


<4> 

윤인석은 딱 3주만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했다. 

곧 결혼을 하기 때문에 와이프 될 사람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안했다. 

이미 1년 동안 땡전 한 푼 안 주고 기생을 한 전력이 있었고, 

나에겐 그래도 수치심이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갖고 있던 50만원 중에 

절반을 3주간의 거주 비용이라는 명목으로 인석이에게 줬다. 

그게 그나마 맘이 편했다. 그래도 미안했다. 


<5>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그냥 사는 거야. 

아무리 죽을 거 같아도 죽을 때까진 살아있는 거니까, 

그냥 계속 살아야 하는 거야. 

답답하면 답답한 대로 그냥 사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연극을 만들었다. 


<6>

젊은 거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거지가 아닙니다.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아직 늙은이가 아니다. 

젊은 거지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은 여행을 준비했다. 


-젊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