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밀양이다. 밀양이 나인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밀양에 와 있다.
밀양의 뜻은 비밀의 햇살이라 치자.
생각보다 괜찮은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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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괜찮다는 자세로 일관해버리는 건
정말로 내가 혼자가 되어도 괜찮아서가 아니라,
혼자가 된다는 그 실존적 위험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나는 높기에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서였다. 애정을 갈구하다가 거절 당하여
머쓱한 표정으로 주변을 배회하다가 이내 골목길이나
어느 가로막힌 곳에 기어들어가 바닥과 하늘을 번갈아보며
낙서 같은 걸 그 둘 어딘가에 적으며
괜찮다고 자위하는 게 반복되면 자존심은 박살났다.
그러면 수류탄이라든가 혹은 최루탄 같은 게 터지고, 이제는 줄여서 말할 수 있다.
나는 심각하게 외롭고 가난하고 나약하고 허약한 사람.
사람들과의 불화가 연속적으로 있었고,
그에 대응하여 나는 나만의 방어 논리 개발에 급급했구나.
스러져가는 마음을 곧추세운다는 명목 아래,
딱 그만큼 소중한 것들도 허물어트렸다.
약자의 표정을 하며 동정을 구하려는 건 아니다.
이 심정을 여기에 적고, 내가 보고, 깊이 음미해야
나는 폐허가 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을까.
그래, 폐허로 고착화 되지 않는 것을 가장 잘한다고 적어보자.
나의 전부가 나의 전부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겐 일부란 걸 느낄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외롭고 가난하고 나약하고 허약한지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폐허로 고착화되지 않는 걸 제일 잘하는 사람이다.
폐허가 되지 않아야 그나마 나도 누군가의 전부에 해당될 가능성이 열린다.
그리고 거듭, 나는 지금 밀양이다.
나는 외롭고 가난하고 나약하고 허약하지만 여기까지 왔다.
'여기'는 밀양이기도, 2018년 5월 20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각보다 좋은 곳과 좋은 것이 세상에 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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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너의 전부가 되면 좋겠다.
바람이 세게 불지만 비밀의 햇살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