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이 유치
오늘은 집에만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유순이 목욕을 돕고
집을 정리하고 라디오를 듣고 그랬다. 일도 조금 했다.
여자친구와 카톡을 하며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런데 이제 보니 오늘이 아니라,
어제로구나. 밤 12시라는 기준은 참말로 불편하다.
한 새벽 4시 정도를 기점으로 오늘과 내일을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그냥 한 번 해본다.
미래는 알 수가 없다. 영화도 책도 밥도 라디오도
직접 접해보기 전엔 그것의 퀄리티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은 내가 간직하기 나름이다.
여기엔 지금 아무런 플롯도 없다.
그러나 플롯 없음 또한, 플롯의 일부이다.
이런 걸 두고 중구난방의 즐거움이랄까.
그래, 제목을 중구난방의 즐거움이라 정하자.
여자친구에게도 나란 인간은 중구난방일 텐데,
모쪼록 그게 이 포스팅의 제목처럼 대체적으로
즐거움이면 좋겠다. 조금 더 확장시켜 말하자면,
우리네 사는 모양새도 최종적으로
중구난방의 즐거움이 되면 좋겠네, 싶다.
유순이가 잔다. 저 녀석이 깨기 전에 나도 자야지.
물론, 정확히 언제 잠들지는 알 수가 없다만,
잠 못드는 밤은 없다. 언젠가는 잠들겠지.
참, 오늘, 이 아니라 어제, 유순이의 유치가 빠졌다.
너무도 귀엽게 빠졌다. 가끔은 버럭거림을 유발하는 강아지인데,
모쪼록 건강했으면 좋겠다. 유순이가 아프면 돈 몹시 많이 든다.
그리고 설령 아프더라도 곧 낫기를.
그게 죽음으로 연결로 안 되면 좋겠다.
그럼 참 고맙겠다. 이것은 유순이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중구난방의 즐거움은 여기까지만 누리자.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