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찬 흰우유를 마시면 그게 곧장 뒷문으로,
나오더라.
그러면 나의 인간적 존엄도 자칫하다간
무너질 상황에 직면한다.
이것도 무슨 병명이 있을 텐데,
굳이 알고 싶지는 않고, 나는 여하간 찬 흰우유를 마실 때
조심해야만 한다. 그러나 데워서 먹으면 괜찮고,
다른 음식과 같이 먹으면 불상사는 안 생긴다.
찬 흰우유만, 독자적으로 마셨을 때만 사건이 생긴다.
그러나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이 사실을 잊고
찬 흰우유만, 독자적으로 마셔버리는 것이다.
<2>
괜찮냐? 라고 지인환은 내게 물었으나,
나는 당연히 괜찮지가 않았고, 씨발, 좆 같아, 같은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선생들이 못 들을 정도로 작게, 아주 작게, 그러나 나와 지인환의 귀에는
닿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고3이 된 나는 삭발까지 하는 과한 의욕을 내비치며,
그전과는 다르게 공부에만 매진했다.
공부하는 머리가 허술하지 않은 나는 성적이 압도적으로 쑥쑥 오르며
지방대 입성도 힘들었던 사정이 개선되어
심지어 명문대 진학도 가능한 상황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문제는 고3이 되기 전까지, 워낙에 학교를 잘 안 나가고,
나가도 2교시쯤에 나가고, 그때 나가도 술냄새 풍기며 나가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선생들은 나를 여전히 꼴통 취급했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좋은 대학에만 가면 되니까,
그리 신경 쓰지 않았으나, 나는 학생주임 선생에게
센타를 까이게 되었는데, 그만 라이터가 발견된 것이었다.
학생부에 끌려간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걸린 것도 아니니,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주장했다.
나는 고3이고, 공부에 매진하는 입장이니, 그냥 제발 넘어가달라고 했다.
허나, 뭘 몰라도 단단히 몰랐던 것이었다.
나는 여전히 개양아치라는 이미지가 굳건했고,
선생은 1주일동안 수업 시간에 교실 대신 내게 학생부 구석에 혼자 앉아
있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나를 감히 여전히 개양아치로 취급하다니?
나는 참지 못 하고 학생부 안에서 난동을 부리며,
나 무시하지 말라고 울부짖었다.
그 결과, 1주일은 2주일이 되었고, 나는 별 수 없이
2주일동안 학생부 구석탱이 자리에 앉아 혼자 공부를 해야 했다.
<3>
지금 생각해보면, 나 왜 그랬을까?
고3이 라이타 갖고 다니다가 걸린 게
뭐가 그리 당당했는가? 정말로 개양아치였구나.
그러나 그후로도 나는 주기적으로
제 멋대로 성깔을 부렸었다.
그리고 후회도 온전히 내 것이었다.
<4>
나는 한 번 울면, 도저히 그칠 수가 없어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나는 나를 세상에 증명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나다.
그러나 나는 또 그걸 잊고 나를 증명하고자
심판대에 자처해서 오르겠지.
<5>
찬 흰우유를 먹고 억지로 변을 강제당한 후,
화장지로 뒷처리를 하면, 뒤가 쓰라리다.
뭔가 나아지길 바라느니,
뭔가 악화되지 않길 기대하는 게 좀 더 개운한 것 같은데,
나이든다는 게 이미 악화의 과정이므로,
뒤가 이따금 쓰라려오는 건 옵션이 아니라 필수인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