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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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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순

by 김봉민 2017. 10. 6.


지금 나는 굳이 소파를 내버려두고, 

방바닥에 앉아 있다. 원래는 의자 위에 놓았던 방석을 깔고, 

노트북 거치대로는 마땅한 게 없어 

복사용지 박스를 뒤집어 대용으로 쓰고 있다. 

내 옆에는 정말 코딱지 같은 강아지 한 마리가 

계속 내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혹은 지가 지 입으로 물 수 있을 것 같으면 

그게 무엇이든 깨물고 있다.

아이의 이름은 유순이다. 성은 당연히 내 성을 따라 김가다. 


김유순



정말 모험심이 많은 아이다.

방 구석구석 어디로든 기어 들어가려 한다. 

가끔 그래서 내 시야에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애타게 부르면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달려온다. 

그러면 그 전까지 약간은 긴장된 탓에 

흥분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유순이를 껴안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지금 바닥에 앉아있는 건 전적으로 

유순이 때문이라고 쓸 수도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정확히는 


나 자신을 위해서다. 


유순이는 내가 소파에 앉아 있으면 

소파에 오르려고 애를 쓰고, 

나는 그럼 소파에 유순이를 올려주는데, 

유순이는 워낙에 온몸으로 까불기 때문에 

소파 밑으로 떨어질까 염려가 지속적으로 되므로 

나는 아싸리 그럴 걱정 없는 곳으로 

내 몸을 옮기는 것이다. 나는 그게 좋다. 내가 바닥에 있으니 

유순이는 소파에 오르려 하지 않는다. 

소파 밑으로 떨어져서 이 작은 아이의 몸 어딘가가 다칠 근거 자체가 

제거된다. 나는 그게 좋단 말이다. 내가 바닥으로 내려온 것은 

나를 위해서인 것이 틀림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유순이가 우리집에서 지내게 되기 전까지는 

개밥 주러 집에 일찍 가야 한다고 

아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말했다면, 

속으로 참 혀를 끌끌 찼을 거다. 

그러나 이젠 누가 나한테 혀를 끌끌끌끌 차도 상관이 없다

는 자세가 되었다. 나는 방금 화장실에 갔다 오는 길에 

유순이의 오줌지뢰를 밟았다. 배변판이라는 질서를 

가끔 무시하는 유순이의 자유분방함이 흡족하다. 


유순아, 아프지만 마라. 


내가 매번 이 바닥에만 앉아있을 순 없겠지만, 

네가 살아있는 한, 너의 밥은 내가 책임을 지고 싶다.

네가 나의 소파다. 곧 엄마도 다 나을 거다. 

엄마랑 셋이 주로 튼튼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