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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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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있는 거 받아적기 #1

by 김봉민 2017. 8. 25.

무언가 그럴싸한 것을 적으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도 말자. 백지 선생님께선 그런 당돌함을 좀체 용인을 안 해주신다. 

그게 뭐든 일단 글 같은 걸 쓰려는 자에게는 응당 기본으로 꿀밤 몇 대는 쥐어박는 걸 서슴지 않는 이 백지 선생은, 

만에 하나 위대한 걸 써내려는 허튼짓을 시도하는 인간에게는  자살도 적나라하게 권유하신다. 

그럼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 인간은, 자기의 깜냥의 부족을 느끼는 그 순간, 

그 권유에 홀라당 넘어가기 일수다. 시방, 나는 항시 조심해야 한다. 

내가 제 아무리 사방팔방에서 활개를 치며 내 자랑질을 내뿜고 다녔더라도, 

이렇게 글을 쓰려 할 때는 자연스럽게 겸손해져야 한다. 나는 죽기가 싫다. 

매타작. 이 세글자로 압축되는 인생이었던지라, 

혹여나 맷집이 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는 애진작에 회수했다. 나는 골병이 좀 들었다. 그러므로 이제사 

비로소 택하게 된 나의 안전한 전략은 그냥 뇌에 흐르는 생각을 받아적자는 거다. 뭔가 억지로 

있지도 않은 거 쥐어짜서  만들고, 제대로 알지도 못 하는 것에 대해 심도 깊게 사유해 본 척 사기를 치며, 

쓸데없이 폼이란 폼은 다 잡고, 후후, 나는 작가지, 암! 그따위 자위를 하는 작태로는 

롱런 가능한 글쓰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나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의 일부를 대상으로 질 낮은 사기를 친 것이 들통날 것이고, 그 대가는 그 누구도 아닌 

순전히 내 몫으로 할당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묻는다. 

나는 작가인가? 

그러하질 못하다. 실제로 그렇다. 나는 연습생이다. 어디까지나 한낱 챌린저다. 

만년 습작을 쓰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나의 이러한 자세가 나를 진정으로 


위대한 작가


의 반열에 오르게 해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쓰고, 쓰고, 또 쓰면서 위대한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설비를 개발, 구축하고, 

그것을 운용하는 경영법도 익히게 되리라.

머물기를 작정하고 안전함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썩히지 아니 하겠다. 

24시간 단위로 내 영토의 국경을 대담하게 개방하고, 

오랑캐가 침입하는 사태를 스스로 자초하고, 실제로 침입하면 

단호하게 일대 결투를 펼칠 것이며, 

설령 패배하여 후퇴하게 되더라도, 나중을 도모하겠다.

그리고 승리하거든 과감하게 정진하여 국경의 경계를 확장하겠다.

연전연승을 기대하는 정신병적 자세를 폐기하고, 

5할 승률을 바라는 소박한 자세를 갖게 되면 단호하게 자학하며, 

그저 이것은 정녕 승률제가 아니라 우승제라는 지당한 사실을 입증하겠다.

1등, 같은 저급한 것을 바라지 않고, 

1류를 지향하며, 매타작으로 인한 나의 골병이 곧, 참전 사령관의 훈장이라 

말할 수 있게 격상시키겠다.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당했던 매타작의 대개는 백지 선생의 몫이었는데, 

나는 이것마저도 안다. 내가 쳐맞았기는 했으나, 내가 맘먹고 죽음을 불사하고 덤볐을 때, 

백지선생은 종국에 매번,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해버렸단 것을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여러 차례 나의 스승이신 백지 선생을 살해한 경험이 있다.

선생은 나를 죽이지 못했지만, 나는 선생을 살해했다. 


자, 그리고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그간 화가 아주 많이 나 있고, 

글쓰고 싶어 안달이 극심하게 난 상태라는 걸 자각할 수 있다.

그리고 겸손과 더불어 호기로도 가득한, 양가적인 인간인 것도 자각할 수 있다.

또한, 이 순간에도 나는 '뇌에 있는 거 받아적기'를 시행하며, 

백지 선생의 사지와 오장육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살벌함도 갖고 있단 것도 

목격할 수 있겠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나아가자. 

나아가잔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나아가자, 라는 단어는 내게 주된 테마란 이야기도 해야 되겠다.  

내가 하찮게 여기는 것 중 하나는 '전진주의'이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수 있겠네, 

라는 얘기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같은 위도, 혹은 같은 경도 상에 있는 어린이만 만날 수밖에 없다.

온세상 어린이를 만나는 막대한 영광은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고 이뤄질 수가  없단 얘기다.

그러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그 모든 걸 점령할 수 있을 거라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입에는 정신적인 의미에서 염산을 붓고 싶다. 

닥쳐야 한단 소리다. 앞으로 나아가면 다 가질 수 있고, 

남들보다 더 가질 수 있을 기대를 왜 하는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목표와 목적이 될 수 없다. 가당치도 않으니 소리란 말이다. 

목표와 목적이 설정부터 명확히 하고, 그다음 그에 맞게 나아간다. 

좌로 갔다가 우로 간 후, 뒤로 좀 물러섰다가 앞으로 몇 번 가고, 다시 우로. 

그러다가 후퇴. 좌향좌 했다가 앞으로, 앞으로, 다시 우향우. 이런 식이 맞는 거 아닌가.

자기에게 특화 된 꿈을 가진 인간이라면 저마다 자기만의 매뉴얼이 있어야 마땅하다. 

누가 만들어놓은 등산로를 따라 간 주제에 감히 산을 정복했다 선언하는 건 참으로 

언어농간 아닌가. 네 길을 너한테 맞게 가야 한단 말이다. 

내가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거다. 

나아간다는 말은 가끔은 후퇴도 있단 거.

후퇴도 나아가는 거다. 이건 나한테 하는 이야기다. 후퇴도 나아감의 일부다.

나는 이걸 두고 '정진주의'라고 말한다. 제대로 가는 게 중요한 것이지, 

'전진주의'라는 역사의 시대적 사기에 속아,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재고해봐야만 한다. 그 재고를 할 수 있는 동기. 그 재고를 해야만 하는 사상적 근거.

그 재고가 얼마나 구린 것인지 회의해 볼 기회의 마련. 그것을 


내가 제공하련다. 


이렇듯, 나는 테제가 뚜렷한 습작생이며 챌린저이며 연쇄살인가, 연쇄살인마 아니라, 연쇄살인가이며, 

동시에 휴머니스트를 추구한다. 그리고 몇몇은 눈치를 챘겠지만, 

세상의 구태의연함에 균열을 내고 싶어 안달 난 혁명적 시민이다.

혁명과 시민. 이것에 대해서도 쓸 말이 과대하게 많다. 둘 중 뭘 더 얘기해볼까. 

혁명? 시민? 

혁명, 혹은 시민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졸리다는 사실이다.

나는 잠 자는 것은 광대한 투자라 여기는 사람이다.

나는 나에게 투자를 하기로 했다. 그러므로 오늘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나의 이 글을 면밀하게 읽은 사람이 있다면, 

나한테 어떠한 의미에서든, 고맙다,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무언가 그럴싸한 걸 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