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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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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시 설립자의 마음

by 김봉민 2017. 3. 3.



회사를 만들었다. 이름은 '오도시'다. 나는 원래 글을 썼다. 모르는 사람이 꽤 있지만, 나는 글을 꽤 잘 쓴다. 내가 쓴 글을 읽었는데, 그걸 인정 못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괜찮다. 세상엔 여러 부류의 인간이 있고, 몇 명이 그런 평가를 내린다고 해서 내 글 쓰는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리가 없다는 걸 아니까. 내 뇌에 복구 불가능할 지경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내 글쓰는 능력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자산이다. 이건 누가 훔칠 수도 없다. 완전히 내 것이다. 나는 글을 잘 쓴다. 물론 비교 대상이 파트리크 쥐스킨트나 안톤 체홉, JD 샐린저 같이 깡패 수준으로 글 잘 쓰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역시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그 누구보다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라, 가장 나다운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경쟁과 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유일성과 독보성의 차원에서, 나는 정말



글을 잘 쓴다. 

 

 

그런 내가 왜 회사를 만들었느냐, 굳이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으므로 짧게 쓸 수는 없다. 그냥 길게 쓰겠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는데, 시간 공 들여가며 짧게 쓸 필요가 없잖은가. 그러므로 계속 이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내가 회사를 만든 이유를 적는다면, 첫 번째. 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과 의리에 의존해 심리적 차원에서만 막연하게 언급할 수 있는 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제적, 공간적 환경을 공유하고 미래에 대해 의논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진짜 팀이 필요했다. 구두의 계약은 늘 효력이 없었다. 사람 마음은 늘 변하기 마련이고, 상황에 따라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이기적 선택을 하기 마련이라 지속 가능한 관계 형성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나는 이 점을 타파하고 싶었다. 함께 나아갈 우리의 팀이 필요했다. 각 개인이 프리랜서로서 활동하다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끝나면 이합집산 하는 있는 유동적 관계만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심각하게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그보다 더 심각한 마음으로 그 한계를 깨부수고 싶었다. 


글 잘 쓰는 내 성향상, 두 번째는 응당 첫 번째 이유와 연결지어 설명할 수 있겠다. 나는 우리의 팀을 기반으로 더 많은 영향력을 세상에 끼치고 싶었다. 아는 사람을 알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내가 활동한 바닥은 가난과 이음동의어로 세상에 받아드려지는 '공연계'였다.  여기가 이렇게 가난한 까닭은 세상에서 공연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극심히 낮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에 현금의 흐름 역시 여타 콘텐츠 산업계에 비해 울분이 터질 정도로 낮으며, 아무리 좋은 공연 콘텐츠를 만들어도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게 무한반복되고 있는 비루한 구조가 내 안에도 정착되었다. 공연계에 있으니, 아무리 잘 쓰고 잘 만들어도 가난하다고! 공연 활동을 일종의 종교로 삼고 정신수양에 매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극빈한 가정에서 자랐기에 내가 주로 하는 행위를 경제적 관념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런 창작 활동도 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종교적 관념으로 갖고 십일조를 내는 마음으로 공연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팀을 만들고, 그 팀을 더 강하게 만들어 더 많은 영향력을 세상에 끼쳐 내가 포함된 우리 팀이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흑자적 삶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싶었다. 


세 번째는 탈주와 관련돼 있다. 나와 내가 만든 우리의 팀은 현금 흐름이 활발한 분야에서 활동해야만 바로 위에서 말한 경제적 부유는 물론, 세상에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내가 원래 있던 공연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뜻하며 나는 그러므로 공연계에서 뛰쳐나가 영상 업계로 진입하고자 한다. 재밌게도 나는 원래 공연쪽엔 큰 관심이 없었다. 공연 대본을 본격적으로  쓴 이유는 내가 공연을 몹시 사랑해서가 아니라, 공연쪽이 제일 입봉이 쉬울 것 같다는 26세 때의 판단 때문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하루라도 빨리 입봉하지 않으면 집에서 내가 글 쓰는 걸 어떻게서든 관두도록 할 게 뻔한 실정이었다. 그러므로 내겐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작가로 빨리 입봉해야, 내가 계속 글을 써도 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행히 27살에 초망작이라 아니 할 수 없는 대본으로 대학로 구석탱이에서 입봉을 하긴 했고, 그 시작을 빌미 삼아 글쓰기란 걸 움켜잡고 이쪽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루라도 빨리 돈 되는 영상 계통 대본을 써야 하는 형편에 이미 써놓은 몇 개의 공연 대본들- 형제의 밤, 흑흑흑희희희-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공연화 하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았다. 연출이랍시고 술 처마시고 행패 부리다가 예술 어쩌고 저쩌고 떠드는 인간에게 사실상 내 20대의 모든 비루함을 모아 빚어낸 대본을 맡길 순 없었다. 형제의 밤과 흑흑흑희희희는 내 20대의 밀린 숙제였고, 6년만에 간신히 작년에 그 숙제를 다 마쳤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34살이 되었다. 간신히 마쳤다. 홀가분하다. 그러니 이 무서운 관성을 견뎌내고 탈주해야 하겠다. -그런데 당분간 완전히 탈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공연과 영상 콘텐츠 두 개를 다 다루게 될 것 같다. 오도시의 공동대표가 되어 이사진을 꾸리다 공연 콘텐츠 제작사의 지분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절반의 탈주, 라는 요상한 표현이라도 지금은 활용하자. 그리고 '과거는 현재를 통해 미래로 침투한다'라는 말을 되새김질 하며 지금 꾸려진 이 탈주의 형태는 나에게 사실 가장 적합한 형태의 탈주란 걸 인정하자. 공연계의 활동을 밑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회사를 만들었으니, 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글쓰기를 관두자는 마음이다. 대신 총력을 기울여 경영에 몰두할 생각이다. 우리 팀을 키우고, 우리 팀의 영향력을 키우고, 흑자적 삶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말한 것과는 상당히 다른 탈주를 해야 한다. 


나는 여태까지의 나에게서 탈주하고 싶다. 나는 새로운 내가 되고 싶다. 한시라도 관두면 죽을 것처럼 주구장창 매달렸던 나의 그 연애, 연애, 연애. 종합해보자면 기이하고도 우스꽝스러웠던 나의 연애사. 그 근본은 당연히 기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내 내면에서 기인했다. 내 내면에 영향을 끼친 그 바깥의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매번 반복됐던 우울, 혹은 붕괴. 언제까지라도 나 혼자 산다면 그런대로 버틸 수 있겠지만, 내 가장 강력한 소원은 내가 좋은 인간이 되어, 좋은 남자로서 좋은 여자를 만나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자식이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인간이 되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 소원이 늘 꿈틀거리는데, 외면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패턴을 이젠 새롭게 만들고 싶다. 나와 함께할 우리 팀도 마찬가지다. 우리 각자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도울 것이다.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같이 손을 잡고 탈주할 것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좋은 것을 기필코 주고, 

세상으로부터 우리가 준 만큼을 응당 받겠다.  


지난 2년 동안 연애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 하는데, 다른 이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염치 없는 것 같았다. 대신 이제 이렇게 회사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회사가 망할까? 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글을 가장 나스럽게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나스러움의 특징은 이 글을 한 3번 정도 읽으면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뻔뻔하다는 것이다.  

뻔뻔하게 써왔다. 뻔뻔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회사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계속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