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예대 극작과 장수생들이 쓸 법한 작문 2편을 가지고 왔다.
만약 이 작문 2편을 읽으면서
앗!!!
내가 쓴 거랑 왜 이렇게 유사하지!! 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일단 절망해야 마땅하고, 그다음은 그걸 시험 전에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여기면 되겠다.
누군들 장수생이 되고 싶어서 장수생이 되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글을 사실 좀 잘 쓰는데
그걸 교수들이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고 있다고 툴툴거리는, 거대한 착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아래 작문들을 읽는 게 좀 힘들더라도 끝까지 읽자.
이런 식으로 쓰면 안 되는 이유도 내가 한 실제 첨삭 피드백도 남겨놨으니, 꼭! 무조건!
*한글 파일의 메모로 단 첨삭 피드백은 이 블로그 에디터에선 구현하기가 어려워서
실제 첨삭 파일의 캡처 사진도 같이 올릴 테니, 가급적 모바일 말고 데스크탑 화면에서,
그리고 캡처 사진본으로 보는 걸 추천한다.
모바일 디바이스라, 위 이미지 파일이 보이지 않는 자는
아래 접은글을 펼치면 텍스트는 보일 거다. 물론, 내 첨삭 피드백은 제대로 안 보일 것이니,
앞서도 말했지만 웬만하면 데스크탑 모니터로 보길..
제시어: 안경이 있어야만 세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안경 없이 세상을 또렷하게 보게 되는 이야기를 만드시오
제목: 안경을 벗진 못하니까
“……해서 진짜 알코올을 눈에 부은 미친 새끼가 있더라니까. 바로 전역했어.”
아득하게 동철이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퐁당대학교 경제학과 1학년 1학기를 갓 마치고 여기 종강파티에 와 있는 이하준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한 상태다. 바로 오늘 아침, ‘빠른 시일 내에 군입대를 위해 시내에 있는 개굴종합병원에서 신체검사를 해라’라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야. 듣고 있냐? 안경 좀 쓰고.” 동철이형이 나에게 말하나보다.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흐릿하다. “냅둬. 땀을 엄청 흘리네, 돼지라 그런가.” 우리 과에서 제일 못 생긴 여자 랭킹 1위, 황수빈의 목소리다. 어쩌라고, 이 군면제, 예비군 놈들아. 내가 키 170.8kg에 83.4kg 나가는 돼지인 데에 니들이 보태준 거 있냐? 니들이 평생을 공부만 해서 찐따가 돼 버린 내 마음을 알아? 군대가면 바로 관심병사가 돼서 철저히 가혹행위를 당할 나를 아냐고. 아마 자살까지 할 걸?
안 되겠다. 나, 이대론 절대 군대에 못 갈 것 같다. 군면제를 받거나, 신체검사에서 반드시 4급 이하를 받아서 공익 판정을 받겠다. 시력은 어차피 교정시력이니 안경을 벗진 못 하니까, 다른 걸로라도 해야지, 뭐.
첫 번째 시도: 여호와의 증인 되기
종강파티 다음날. 신나게 자다가 일어나보니 오전 11시 32분 쯤이다. 내 방까지 솔솔 풍겨오는 국 냄새… 음…, 북엇국? 북엇국이다. 외동 아들이라 내가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꼭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신다. 역시 나 이하준, ‘하나님이 준 선물’. 독실한 기독교 집안다운 이름이다. 북엇국 냄새를 맡고 있자니 여호와의 증인이 되려는 결심이 조금 흔들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엄마, 군대가면 아들 죽어요.
안경을 쓰고 거실로 나가보니 아버지도 함께 계신다. 밥을 먹다가, 기침을 살짝 했다. 엣헴. 부모님께서 나를 쳐다보신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하나님의 다른 뜻을 발견했어요. 저요, 여호와의 증인이 되기로 했어요. 살생은 할 수 없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눈을 잠깐 마주친다. 나는 눈치를 슬쩍 살핀다. 아버지의 얼굴이 처음에 평온한듯했다가, 의아했다가, 눈이 찌푸려졌다가, 곧 살구색에서 복숭아 색으로 변한다. 백도? 아니, 황도? 아니… 천도 복숭아?
“그럴 거면 집 나가 이 새끼야! 어딜 버르장머리없이……!”
아버지가 마치 사탄을 눈 앞에 둔 사도 바울처럼 소리지르셨다. 으악! 피해야겠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것은 실패다. 갑자기 더워져서 땀이 난다.
두 번째 시도: 살찌기
점심 식사 때의 사건으로 용돈이 깎여버리고 말았다. 휴, 땀 때문에 안경이 자꾸 얼굴로 흘러내린다. 다른 방법을 쓰자. 살이 여기서 더 찌면, 그것도 아주 많이 쪄서 거의 아랍 에미리트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처럼 찌게 되면 공익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아직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께 다가가 말씀드렸다. “엄마, 죄송해요. 이제 군대에 가야 하니, 저 건강해져서 갈 수 있도록 음식을 많이 해주세요.” 어머니께서는 약간은 누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셨다.
이후 며칠 간의 식사는, 말 그대로 코끼리처럼 음식을 먹어댔다. 하루에 돼지고기 1kg그램을 먹고, 각종 야채와 쌀밥, 고구마, 바나나 같은 작물들도 먹었다. 과연 살이 잘 찌고 있을까? 일주일만에 인바디 기계 위에 올랐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살이 0.2kg밖에 찌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근육량이 늘어난 것 아니겠는가? 왜 그러지?
“회원님, 요새 단백질이 많은 건강한 식단으로 드셨나보네요.” 집 앞 스트롱짐 8호점 헬스트레이너가 말했다. 젠장. 용돈이 없어서 마라탕 같은 저질 음식을 사먹지 못 해서 그런 것이었다. 완전 실패다. 똥만 많이 싸고 땀만 더 나고, 에이씨. 땀 억제 패드라도 겨드랑이에 좀 붙여야지.
세 번째 시도: 결혼하여 자녀 2명 이상 낳기
이제 마지막 시도다. 더 이상 갈 데도 없다. 주변에서 적당한 여자를 찾아서 결혼해서 빠르게 아이를 두 명 낳는 수밖에. 잠깐. 황수빈? 수빈이는 못 생겼으니까 내가 고백하면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야, 평생도록 나같은 사람 만날 수 있나 봐라. 나는 곧 수빈이와 약속을 잡아서 만났다.
땀으로 흘러내리려는 안경을 검지와 중지를 겹쳐 멋들어지게 쓸어올린 뒤 팔짱을 끼고 수빈이에게 말했다. “야, 나랑 사귈래? 나는 결혼을 조금 빨리 하고 싶거든. 그러면 나도 좋고, 너도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수빈은 말이 없다. 그리고 곧,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어도 너랑은 좀…….”이라고 말을 흐리더니 가버렸다. 멍하니 수빈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옆에 어떤 남자가 수빈이의 옆으로 붙는다. 어라, 저거 동철이형인가? 잘 보이지가 않아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썼는데, 갑자기 시야가 너무나 눈부시고 초점이 맞지 않는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시야가 너무 눈부시고 흐릿하여 잘 보이지는 않지만 동공이 커지고 눈이 빨갰다. 젠장, 눈에 뭐가 들어갔나보다. 나는 흐르는 물에 꼼꼼하게 두 눈을 씻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눈을 좀 감고 있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눈부심이 조금 사그라든 것 같았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이상했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 데도 눈이 잘 보이는 것 같았다. 평상시라면 이 소파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노란색 부엉이 벽시계의 시침과 분침, 심지어 초침까지 아주 잘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라? 안경을 한번 써보았다. 안경을 쓰자 부엉이 시계가 왜곡돼 보이더니 어지러웠다. 나는 곧장 자주 가던 안경점에 가서 시력검사를 해보았다.
결과는, 양 쪽 1.2, 1.5의 시력. 안경을 벗어도 잘 보이는 시력이다. “원래 나이가 들면 갑자기 눈이 좋아지는 경우도 왕왕 있어요.” 안경사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잘 이해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난 이제 눈마저 잘 보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호와의 증인이 되는 것도, 고도비만이 되는 것도, 황수빈과 결혼하여 자녀를 두 명 갖는 것도 실패해버렸다.
다음 날, 나는 체념한 마음으로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개굴종합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한 10분쯤 갔을까, 갑자기 눈이 불타듯 아프기 시작했다. 눈을 비비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고통에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버스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의식이 희미해졌다…….
“……해서 시각장애 등급에 해당합니다. 주 원인은 땀 억제 패드에 들어있는 글리코피롤라이트라는, 일종의 알코올 성분이 각막의 상피를 녹여 일시적으로 시력이 좋아졌다가 후에 안구가 녹아 실명에 이른 것으로…….”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어머니겠지. 돈은 어떻게든 낼테니 치료해달라는 아버지의 절실한 목소리도 들린다. 이젠 거울로 내 뚱뚱한 몸도 볼 수 없고, 황수빈이나 동철이형도 못 보고, 교회도 갈 수 없는 것일까?
아, 군대. 안 가도 되는 거겠지?
-끝-
안경잡이 김성식
1.
「‘넌 감동란이었어’ 김성식, 안경이 잘 어울리는 발라더 1위」
「‘라디오스타’ 김성식, V사 S/S 뿔테안경 완판…인기 어디까지?」
그래, 내가 김성식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안경이 제일 잘 어울리는 1위 발라드 가수. 사실 난 댄스 가수가 되고 싶었는데, 눈이 나쁜 탓에 쓴 안경이 지적인 이미지를 준다나, 뭐라나. 살면서 참고서 한 권도 읽은 적 없는 고졸이 무슨. 하긴, 댄스 가수가 되면 레이저 조명 같은 것 때문에 위험할 테니 잘 됐지 뭐.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 등등 방송 녹화를 끝내고 퇴근할 때면 ‘오빠, 너무 멋있어요!’, ‘오빠, 나랑 결혼해 줘요!’ 문 앞을 지키고 선 팬들 때문에 곤란할 지경이다.
지난 새벽 한 2시 반쯤까지 동료 가수 주현규과 소주를 29병 정도 나눠먹고, 원래 잠이 많은 나는 늦잠을 신나게 자다가 오후쯤에 잠에서 깼다. 깼는데, 원래 평소라면 안경을 쓰지 않고서는 절대 보일 리가 없는 저 벽시계가 왜 읽히지? 지금이 2시 25분… 맞나? 베개 옆에 널브러진 핸드폰을 눈 가까이에 대고 확인해 본다. 맞네. 어라, 나, 안경 썼나?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치덕치덕 문대 보지만 안경은 전혀 쓰고 있지 않았다.
곧장 달려간 안과에서 의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원인은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시력이 갑자기 좋아지셨네요. 정밀 검사가 필요할 지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방문하세요.”
시력이 좋아졌다고! 이게 가능한가? 그럼 이제 마이너스 8.4 디옵터의 도수를 가진 내 안경은 필요가 없을 텐데. 안경을 안 쓰면 인기가 떨어지는 것 아닐까? 그래선 안 된다. 사람들에게 절대로 들키지 않고 내 분신과도 같은 안경을 사수해야 한다.
2.
제일 먼저 도수 없는 안경을 샀다. 그리고 당장 오늘 밤 11시에 서울특별시 상암동 CJ E&M 스튜디오에서 전 세계에 동시 생중계되는 <파파 뮤직 어워드>에 참석을 했다. 대한민국 인기 1위 발라더답게 사회자를 맡았기 때문이다. 생방송은 아주 순조로웠고, 실수도 없었다. 방송이 모두 끝나고 매니저를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휴식 중이던 그때,
“성식이 형, 혹시 안경 바꿨어요?” 현규의 목소리다. 현규가 내민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가수 김성식, 라식 수술 의혹… 최근 안과 방문 정황’」
「‘이미지는 포기 못해’ 김성식, 도수 없는 안경 써」
‘진짜 안경알 두께가 바뀌었네요. 왜곡도 없어요’
‘지적인 척은 다 하더니 그냥 이미지메이킹이었네.’
‘안경 절대 못 벗는 얼굴 알만 하다’
오늘 생방송의 내 모습을 캡처한 사진들, 기사들. 그 기사의 댓글들과 다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은 하나같이 ‘라식 수술을 해놓고도, 좋은 이미지를 포기 못해서 도수 없는 안경을 쓰는 내가 파렴치하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건… 이건 아니다! 난 몸이 망가지는 것도, 수술도 무서워서 몸에 칼 한 번 대본 적 없는데! 지금으로선 해명을 할 수가 없으니 다시 눈이 나빠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3.
다음날, 곧바로 ‘컨디션 난조’라는 핑계를 대고 앞으로 잡혀있는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 뒤 칩거를 하기 시작했다. <일하면 뭐하니>, <워킹맨>도 나가게 돼있었는데, 아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네이버에 ‘눈 나빠지는 방법’을 검색해 보니 ‘TV 가까이서 보기’, ‘불 안 켜고 책 읽기, 스마트폰하기’ 등 많은 방법들이 나왔다. 세상에 이렇게 눈이 나빠지길 원하는 초등학생들이 많다니. 대체 왤까? 공부는 안 하는 걸까? 어쨌든 하나씩 시도해 보자.
우선 거실에 있는 삼성 85인치 4K 화질 TV를 켜고, 소파가 아닌 TV 바로 앞에 앉았다. 그리고 <스웨트홈>을 켜서 한 10분쯤 보았을…. 아! 잠시 졸아버렸다. 어휴, 너무 졸린데? 안 되겠다. ‘불 안 켜고 책 읽기’에 도전해보자. 고등학생 때 제일 좋아했던 서용의 무협지 <사조참치영웅전>을 들고 침대에 누워 스탠드만 켜고 불을 모두 껐다. 한번 읽어보자. 어디…오랜마…ㄴ…쿨…. 앗! 또 졸아버렸네. 책은 당연히 졸릴 만도 하다. 책은 됐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자. 최근에 하던 <악몽의 집>을 켜서 플…. 아, 또 졸았네. 생각해 보니 원래 잠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에 집중을 못 하는 나였다. 이 방법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4.
이제 마지막이다. ‘눈 나빠지는 법’에서 쳐다만 보고 그냥 넘겼던, ‘눈에 레이저 쏘기’라는 방법을 사용해야 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레이저, 생각만 해도 무섭지만 어쩔 수 없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끼고 신정네거리에 있는 다이소에서 레이저를 사가지고 왔다. 우선 세수를 하고, 혹시 손에 있는 세균이 눈으로 들어가면 안 되니까 ‘아이깨끗해 청포도향’ 핸드워시로 손을 꼼꼼하게 씻는다. 그리고 세면대 앞 거울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눈을 부릅 떴다. 내 눈,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 눈. 비록 너는 예쁘게 생기지 않아서 안경에 가려져야 하지만, 나를 원망하지 마라.
오른손에 레이저를 쥔다. 편의점에서 파는 500원짜리 라이터 정도의 길이에 회색의 원통 모양으로 생긴, 한쪽 끝이 플래시처럼 유리로 막혀있고 그 안에 아주 미세한 전구가 들어있는, 반대쪽 끝에는 딸각이는 버튼이 있어 이걸 누르기만 하면 내 눈에 레이저 광선이 들어갈 테고 그렇게 되면 나는 실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반드시 나쁜 시력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 레이저야! 레이저가 나를 째려본다. 나도 레이저를 째려본다. 레이저가 다시 나를 째려본다. 손이 벌벌 떨린다. 땀이 줄줄 흐른다. 레이저가 내뿜는 파괴 광선이 내 각막을 지나 동공으로 들어와서 수정체와 유리체를 지나 망막에 닿을 때, 만약 그 광에너지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서 곧바로 실명해버리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발라드 가수고 뭐고 그냥 장님 가수가 돼서 제2의 스티비 원더, 제2의 안드레아 보첼리가 되는 거 아닐까? 나 결혼도 못 했는데! 아니야,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냥, 그냥 저질러……!
탁.
못하겠다. 무섭다. 히히.
레이저는 그냥 말라비틀어진 치약 옆에다 내려놓았다. 이제는 이도 저도 방법이 없다. 그냥 인정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
「‘안경은 필요 없어요’ 김성식, 댄싱 머신 그 자체」
「‘레이저는 그만!’ 김성식 콘서트 현장 속으로」
나 김성식. 라식 수술을 한 게 맞다고 인정하고(‘아무래도 자다가 갑자기 시력이 좋아졌다’라는 말을 대중들이 믿을 리는 만무하니까 말이다) 파격 이미지 변신에 성공, 현재는 원래의 꿈이었던 댄스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오빠, 너무 멋있어요!’, ‘오빠, 나랑 결혼해 줘요!’라던 팬들은 이제 ‘오빠, 너무 섹시해요!’, ‘오빠, 복근 미쳤다!’라는 환호를 보내고 있다. 콘서트 하나를 해도 레이저 같은 건 쏘지 않으니, ‘자녀들을 보낼 수 있는 콘서트’ 같은 걸로도 인기가 생긴 건 덤. 이제 도수 없는 안경을 쓰거나, TV를 가까이서 보려다 존다거나, 레이저를 눈에 쏘지 않아도 돼서 정말 좋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콘서트에 게스트로 온 ‘악마뮤지션’의 공연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휴식 중이었다. ‘악마뮤지션’의 차례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대기실의 현장 모니터링 TV를 보고 있었는데, 왠지 눈이 흐릿해서 인공 눈물을 넣고 눈을 비볐다. 어라?
갑자기 시야가 더욱 흐려지더니 바로 코앞에 구름이 낀 것처럼 뿌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의 몸이 붕 뜨는듯한 느낌이 들더니 곧바로 대기실 바닥에 몸이 고꾸라져 쓰러지고 말았다. 매니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꿈처럼 들린다…….
6.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근 안경 없이도 밝은 세상을 보고 이미지 변신에도 성공한 김성식 씨였기에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는데요, 광풍대학교 의과대학 변개안 안과 과장님의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네, 김성식 씨처럼 눈이 갑자기 좋아지는 경험을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는데요, 이는 백내장의 초기 증상 중 하나입니다. 수정체의 경화가 심해져서 눈의 굴절력이 변하고 일시적으로 근거리 시력이 향상되는 경우로, 이후에 수정체가 뿌옇게 흐려지면 시력 장애가 나타나게 됩니다. 김성식 씨의 경우 원인은 불명확하지만 이후 단계가 급격히 진행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동일한 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TV를 가까이서 본다거나 불 꺼진 방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등 눈이 나빠지는 습관은 삼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단언한다.
이 작문을 끝까지 볼 교수는 없다.
기죽지 마라.
지금 이 상태와 수준으로 올해 시험 치렀으면,
그게 더 참사다. 재앙이지.
너의 목표는 미니멀이다.
줄여야 한다. 지금 쓴 작문의 절대적 분량도, 그리고 내용의 정보량도
절반 이하로 줄여야 한다는 상당히 힘든 미션이 이제 네 앞에 있다.
나도 함께할 거다.
그리고 교본요약이 지금 너에게 더 중요한 건데,
성급하고 조급한 마음에 무턱대고,
첫 주에는 안 보내도 되는 작문을 1개도 아니고 2개나 보내는 걸 보면
너의 성격을 알겠다.
근데 앞으론 자제하라.
기본과 기초를 익혀야 한다.
모든 건 기본에서 나온다.
자.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얼추 적었다만,
저 피드백들을 단순하게 압축해서 말한다면,
단편소설 쓰듯 실기 작문을 쓰면 안 된다!!!!!
극작과 실기 작문은 단편소설이 아니다. 초초초초초초단편소설이다.
평균적 단편소설의 1/15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구축해야 하는데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불필요한 설명으로 점철되면, 시험장에서 나눠준 용지 안에 글을 쓰는 것도 어려워지고(왜? 분량을 넘어가버리니까),
게다가 제한시간 90분 안에 써내는 것도 덩달아 어려워진다.
교수들이 끝까지 읽어줄 확률도 제로로 수렴하게 된다.
플롯에 대해 쥐뿔도 아는 게 없다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니까.
플롯이란 무엇인가?
그걸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진다. 근데 그걸 진짜 짧게, 내 식대로 적어본다면,
플롯은 내 뇌에 있는 정보를 상대방
뇌에 최대한 누락 없이 전달하기 위해
무엇을 빼야 할지에 대한 기준과 원칙,
이다.
범죄도시에서 마동석의 전여친이 나와서 사랑을 키워나가는
멜로 라인은 들어갈 여지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에게 쓸데없이 걸려오는 전화는 단 하나도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인공이 만약 급한 일이 있어서 화장실에 가면?
거기서 무조건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휴지가 없다거나
누군가가 자기 뒷담화를 하는 걸 듣게 된다.
화장실 갔다가 아무 사건도 생기지 않는 걸 적지 않는다는 건데,
얼추 이해는 되겠지만, 이걸 완전히 자기 실력에 고스란히 장착하고 싶다면
말 그대로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해 3년 동안 열심히 탐구하고 사색하고 연습해야만 한다.
여하간, 아직 입시생 신분이므로 완전히 플롯에 대해 능통할 순 없더라도
최소한 완벽무지 상태라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되면 안 된다는 거다.
최소한 안 적어도 되는 내용은 안 적어야 한다는 직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없다면 자연스레 합격시켜주고 싶은 마음을 상실되기 마련이므로.
그런데 중요한 건 이거다. 위의 저 고통스러운 작문 2편을 쓴 애는
저번에 치러진 서울예대 극작과 수시 합격자다.
말이 되냐고?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내가 뜯어 고쳤다.
절대 저런 식으로 쓰면 안 된다는 걸 지속적으로 주지시켰다.
단순하게. 미니멀하게. 분량에 맞게 써야 한다는 걸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럼 최소한 이 정도의 작문을 쓸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제목: 잘생겼다
“못 생겼네. 남자 주인공은 글렀어.”
또 떨어졌다. 서울예대 연기과를 졸업한 지도 벌써 1년째. 햄릿 같은 주인공을 연기하고 싶은 나는 벌써 200번도 더 넘는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3개월 뒤면 곧 연극 「햄릿」의 오디션인데.. 연기나, 외모냐. 그것이 문제로다. 생각하며 중앙역 지하 통로를 지나는데, 크게 붙어 있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tvn의 새로운 리얼 메이크오버 프로젝트, 렛 미 인(Let Me 人). 운명, 바꾸시겠어요?」
잘생겨지고 싶다. 남자답게 잘생겨져서, 반드시 햄릿 같은 주인공이 되겠다. 나는 곧장 렛미인 프로그램에 응모했고, 당첨되었다.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제일 먼저 한 것은 역시 성형이었다. 렛미인의 작가, PD들과 사전 미팅을 할 때에, 나는 ‘장동건 같은 부리부리한 눈. 조인성 같은 오뚝한 코, 송강 같은 통통한 입술’ 같은 남자답게 잘생긴 얼굴을 말했었다. 잠시 정적,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라던 제작진들. 그 후 성형수술을 하고 약 2주가 지났다. 두툼한 눈두덩이, 해머로 가격 당한 듯 펑퍼짐한 코, 말라비틀어진 입술 같은 것들이여, 안녕. 자, 이것이 거울인가, 내 눈앞에 있는 이것이?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남자다운 모습은 어디로 간 건가? 하리수처럼 예쁘장하기는 한데 여전히 남자로는 느껴지는 얼굴이 거울 너머로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 저, PD님. 전 어떻게 된 건가요. 이대론 남자 주인공은 못 되겠는데요. 그러자 렛미인의 박현철 PD는 나에게 ‘운동으로 남자답게 잘생긴 몸매를 만들자’라고 말했다. 요새 주인공은 다 예쁘장하다나 뭐라나. 얼굴보다는 비쩍 골았으나 배만 통통하게 나온 ET형 몸매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곧장 방송국과 연계된 상암동 헬스장에서 PT를 받기 시작했다. 샐러드, 단백질만 꼬박꼬박 먹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을까. 인바디 위에 올라간 나의 체지방률은 12%. 178cm의 65kg인 몸에 체지방이 단 7.8kg만 있다는 뜻이다. 근육은 찌지 않고 체지방만 빠졌다. 아 근육이여, 어째서 그대의 이름은 근육인가. 거울엔 가느다란 몸매의 내가 있다.
PD님,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 「햄릿」의 오디션이 2주 남았다고요. 이대론 햄릿이 아니라 오필리아를 연기하겠어요. 박현철 PD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목소리라도 남자답게 잘 생기게 합시다.’ 그가 내민 마지막 카드였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얼굴이나 몸은 이제 어쩔 수 없으니 발성이라도 잘 해야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남은 2주 동안 연습실에 틀어박혀서 발성 연습만 했다. 그런데.. 너무 과했던 탓일까? 「햄릿」의 오디션 당일,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스트랩실 약과 날계란을 먹고 목을 풀려고 했으나 색색- 바람 빠지는 쉰 소리만 나왔다. 그렇다고 오디션장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현재의 자신을 알지만, 자신의 가능성은 알 수가 없다네.”
지정 대사가 끝났다. 심사위원들의 정적- 나는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꼿꼿하게 서있었다. “햄릿을 하기엔.. 너무 여성스럽네요. 목소리도 다 쉬어서 듣기 어렵고.. 죄송합니다. 함께 하지는 못하겠네요.” 아, 끝났다. 주인공이 되고 싶은 꿈도, 햄릿이 되고 싶은 꿈도 여기까지인가 보다. 넵튠의 바닷물을 모두 끌어다 쓰면 나의 눈물을 닦을 수 있을까? 난 울면서 오디션장을 나섰다. 앞에서 기다리던 박현철 PD를 만나 돌아가려는데, 방금 오디션을 봤던 심사위원 중 하나가 나를 쫓아 나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예쁜 얼굴, 몸매, 섹시한 목소리.. 다른 거 같이 할 생각 없어요? 혹시 노래 잘 해요?”
몇 달 후, 나는 무대 위에 서있다. 무대 아래에는 나의 성공담을 카메라에 담고자 노력 중인 렛미인 제작진들이 있다. 곧 막이 오르고, 드럼이 칭칭- 하이햇 소리로 박자를 맞추기 시작하더니, 일렉 기타와 베이스 기타 소리도 쨍- 울린다. 나는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 ‘앵그리 인치’의 보컬, 헤드윅이다. 난 주인공이다! 다들 나를 봐! 관객석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와, 헤드윅 진짜 잘생겼다!”
-끝-
같은 사람이 쓴 거다. 이렇게 변화하기까지 2주 걸렸다.
그렇다. 현재 실력이 엉망진창인 장수생이더라도
자기 자신이 변하고자 할 의지로 충만하고
선생을 믿고! 무조건 믿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세. 그래, 자세가 중요한 거다.
자기 자신이 번트 대려는 자세를 취했으면서 홈런 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완벽하게 착각하고 있다면, 희망은 없다.
주변 사람들은 왜 그가 계속 서울예대 극작과에 불합격하는지
그의 글 1페이지만 훑어봐도 알 수 있는데 대개의 장수생들은 정작, 본인만 모른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이 쓴 글은 전부 깎아내린다.
성격도 삐뚤어진다. 자연스럽게 고립되고, 이 상황의 원인을
전부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으며 나는 나만의 길을 갈 것이며,
내가 쓰는 이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것이 복수라고 단정해버린다.
그리고 그게 바로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생들의 현실지옥이다.
변화하려고 해야 한다.
나는 안다. 이번 정시에 시험 치르려는 자들의 9할 5푼은
이번 서울예대 극작과 정시가 첫 시험이 아니다.
아마 이번 정시에 떨어지면 다음 번 수시에 또 도전하게 될 거다.
그게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의 생리다.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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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과 시험 앞두곤 손글씨로 작문 써라! ㅣ 서울예대 극작과 합격자의 작문 4편과 첨삭 피드백
아래 작문들은 모두, 서울예대 극작과에 합격한 나의 제자가 썼던 연습 작문들이다.손글씨로 쓴 것이기에 모바일 환경에선 보기 어려울 거다. 데스크탑에서 보길. 그리고 왜 이렇게, 서울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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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서울예대 극작과 정시 합격을 위한 실기 작문 연습법과 입시 일정 및 요강
지난 11년 동안 서울예대 극작과 입시를 진행해온 내 경험 상, 보통 12월 말이 되면 부랴부랴 내년 1월 말에서 2월 초로예정된 서울예대 극작과 정시 입시를 부랴부랴 준비해보고 싶은 극작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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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ongmeanism.tistory.com/1028
위 포스팅들엔 자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낸, 내 자랑스러운 제자들의 연습작문들이 실려있다.
꼭 봐라.
그리고 현재 자기 작문 실력과 견주어 봐라. 자기 객관화는 필수다.
서울예대 극작과 경쟁률은 높다.
합격하는 것보다 불합격하는 게 당연한 게 바로 서울예대 극작과다.
하지만 합격을 당연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그건 누누이 말하지만 변화하고 싶다는 간절한 자세에서 비롯된다.
내가 이렇게까지 꿀팁들을 대폭 공개했는데도 매일 드러누워 유튜브나 보고 있다면
그건 그냥 의욕의 부족이며, 자기 자신이 무능력함의 총 집합체라는 걸 증명하는 거다.
떳떳하게 밥 먹고, 극작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우울증과 불면증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잠들고,
자랑스럽게 친구들과 만나 수다떠는 일상을 맞이하는 길은 오직,
극작과 합격을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마음 깊이 자리잡은 그 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나도 예술을 하고 있다'라는 충만감 속에서
비로소 내가 겪던 우울과 불면이 극적으로 예술의 원천이자 영감의 창고로 치환되며,
희망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하사품따위가 아니라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것은 그 누구도 뽀려간다거나 박살낼 수도 없는,
가장 강력한 나만의 무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쓰면 절대 서울예대 극작과에 합격할 수 없다 ㅣ 극작과 합격 온라인 첨삭 과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