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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다

by 김봉민 2024. 6. 3.

나는 영화를 열심히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워낙 아는 인간이 적어서 그런 거겠지만서도, 

나와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 나보다 많은 영화를 본 자는 없었다. 

나는 책을 열심히 읽지도 않는다. 

억지로 글을 읽어야 하는 건 유사 고문에 해당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내가 폐쇄적인 사람이라 그렇겠지만, 

내 주변인들 중 나보다 책 많이 읽은 사람은 못 봤다. 

나는 책 읽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그게 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 영화가 담고 있는 게 뭔지, 그 책을 읽으면 내 가려운 곳을 얼마나 긁어줄 수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자기가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사람들은 

사실 별로 책을 많이 읽지도, 게다가 읽었다는 그 책을 통해 

얻은 게 거의 없을 거라고 여기는 축에 속한다. 

진짜 열심히 읽어봐라. 그런 말이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계속 타오르는 갈증을 느끼기에 더더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열심이라는 단어가 머리에서 박멸해버리고 대신 나는 좁밥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훌륭한 영화가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면, 그때부턴 마치 좋은 영화를 안 보고 있는 게 

일종의 죄를 짓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거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피곤하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있는가. 없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걸 도모하는 형편에 피곤함마저 무릅쓰지 않겠다는 건 

자기모순을 넘어서 자기기만과 자기파괴적 행태라 아니 할 수가 없단 말이다. 

피곤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피곤함은 누군가의 지시 명령, 혹은 권유 따위가 아니라 

자처한 피곤함이어야 한다. 노가다와 헬스의 차이를 다시금 떠올려봐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영화를 볼 것이다. 책도 열심히 읽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론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 책들 더 열심히 볼 작정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문맥을 파악했다면 

유추가 가능하겠지만, 

 

 

장난이다. 

 

 

나는 돌이 되어 살면 그냥 돌이 되어 살지, 

열심히 뭔가 한다는 그 주접 떠는 소리를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므로 열심히 글을 쓰겠다는 그 개소리도 하지 않을 거다. 

열심히 글을 써봤다는, 혹은 열심히 쓰고 있다는 그 븅신들의 말을 빙자한 음성화 된 오물에 

놀아날 리도 없다. 조용한 곳에 있다. 조용해지고 싶다.  

나는 아직도 궁금한 게 너무 많다. 미워하는 것들을 철저하게 짓밟고 싶다.

따라서 더 조용해지고 싶다. 더 조용한 곳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