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계가 오작동하거나 오류가 나거나 망가지거나 맛탱이가 가버리는 걸
아주 심하게 못 견디는 성미다.
핸드폰의 경우엔 집어 던지고 싶었던 적이 많았고
컴퓨터의 경우엔 모니터를 주먹으로 치고 싶었던 적도 많았으며
플스4 듀얼쇼크 한 대는 내가 즉결 박살낸 후 쓰레기통으로 보낸 적도 있다.
다혈질인 게 분명하다. 사람이 차라리 낫다.
그 인간이 오작동하거나 오류가 나있거나
망가져있거나 맛탱이가 갔다면 그 즉시 피해버리면 되겠지만,
그리고 연락을 끊어버리면 되지만,
내 소유의 기계는 내가 피할 수가 없고, 이것들은 심지어 말길도 못 알아듣기에
나의 답답함을 수십배로 증폭시킨다.
그래서 아마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이 출시되어 가가호호 보급된다면,
나는 시방 아조 무서운 인간의 얼굴을 하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을 거 같다.
살짝만이라도 고장만 나봐라, 라는 사나운 눈초리로 기계들을 대할 거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을 가급적, 최대한 가급적 사용하지 않기로
아직은 하지 않아도 될 작심을 미리 해버리고
지금 당장 당면한 오늘 나의 화의 대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제부터인가, 맥 전용 프로그램인 페이지스와 키노트를 열기만 하면,
즉시 오류가 뜬다. 나는 페이지스와 키노트를 사용해야만 하는 입장인데
다양한 해결방법을 동원하여 사태를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변한 게 없다. 요약하자면, 지금 나는 화가 예치기 않게 많이 차있는 것이다.
상상의 영역에선 맥북을 집어 벽에다가 2~3차례 집어던졌지만,
그랬다간 다방면으로 후회가 몰려올 게 뻔하기 때문에 인내하고 있다.
나는 기계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 이토록 싫어하는,
어딘가가 제법 혹은 살짝 또는 적당히 망가진 그런 인간인 것이다.
화를 삭히고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들이키고,
내 주변을 둘러싼 이렇게나 다양한 기계들, 모니터 3대, 아이맥, 소니fx30, TV,
블루투스 스피커, 촬영용 조명기기, DJI 마이크, 로데 USB 마이크, 커피머신, 냉장고, 전자렌지,
전기밥솥, 일렉트로닉스 진공청소기 등이 내가 아무리 장수를 하여 100살까지 살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망가질 게 자명한데, 그때마다 어떻게 화를 참아야 하는 건가, 라는 마음이 격렬하게 일렁인다.
유일한 방법이라곤 더 많이 돈을 벌어서 망가지면 망가지는 족족 새 걸로 교체하는 것뿐일까.
다른 방법도 있으려나?
마흔한살의 일월 이일.
앞으로도 있을 다양한 소재의 고충과 그에 대한 불완전한 해결책에 대해 궁리를 해보며
나야말로 죽기 전에 너무 심하게 오작동하거나 오류가 나거나 망가지거나 맛탱이가 가버린
사람이 되진 않길, 새해 소원처럼 빌어본다.
그리고 일단 제발 내 맥북이 페이지스를 정상적으로 가동시켜주면 좋겠다. 나 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