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즈음, 나는 구형 맥북프로를 하나 중고로 마련했다.
꽤 무거운 기종이었다.
가격은, 얼마였지?
20만원 안 넘게 주고 샀던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나의 기억력이 점점 금붕어급이 되어가고 있고,
나는 그렇게 마련한 맥북을 왜 샀는가.
그건 기억이 나는데, 오로지 글쓰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타자기용,
좀 느끼하게 말하자면 '오직 작가적 도구'로 구입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글쓸 때 항시 최고의 적이자 방해물이 되는 와이파이 기능도
제거를 해버렸었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데 돈을 써야 했다.
그래야 돈 아까워서라도 글을 쓰게 될 테니까.
그리고 쉽진 않았지만 그 맥북으로
딴다단 따다다다단.
장편 시나리오 하나를 써내었다!!
대략 5개월 정도 걸렸지.
그러고는 지겨워서, 너무나 지겨워서
한 2달 동안은 그 맥북을 건들지도 않고
사무실에 방치해놨다고 알고 있었는데,
자, 제목처럼, 내 맥북 어디 갔는가?
사무실에 없다. 집에도 없다. 도무지 행방을 알 수가 없다.
내 맥북 전용 가방은 집에 있다.
워낙 무거워서 맥북만 쌩으로 들고 다닐 수 없어서
전용 가방까지 산 거였는데, 도대체 어디 갔냔 말이다.
아는 배우의 포트폴리오 영상 촬영 도와주러 갔을 때 가지고 갔던 거 같은데,
그것도 확실하진 않고... 기억이 안 난다.
가지고 갔었던 게 맞는 거 같은데, 확신할 수는 없고,
촬영은 벌써 1달 전에 도와줬던 건데 그 사이에 나는 내 맥북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촬영 현장에 혹시 내 맥북이 있는 건지 알아봤지만
역시나 없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나는 내 맥북을 그때 그 촬영 현장에 안 가지고 갔을 거 같기도 하다.
어차피 맥북이 2대나 더 있는데 그 거대한 구형 맥북을 굳이 그 현장에
가지고 갔을 확률은 극히 적다. 하지만 이조차 확신할 수는 없으니,
나는 내내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내 맥북은 어디로 갔는가.
만약 평소에도 늘 중히 여기는 거라면,
그 행방에 대한 추측과 추리는 필요도 없겠지.
가볍게 여기거나, 혹은 꼴도 보기 싫어지면
저절로 멀리하게 되고, 그러다 협소하고 척박한 기억력은
게을러지고, 그래서 있던 것도 없는 것처럼 여기게 된다.
나는 시나리오를 다 쓰고는 내 맥북을 제법 멀리했다.
징징대는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 쓰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서
그 맥북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즉각 그 과정이 되새김질 되었거든.
그래, 그러니 내 맥북이 어디 갔는지 아무리 유추해봐도
내가 정확한 맥북의 좌표는 알 수가 없고,
나는 아무리 봐도 내 맥북을 잃어버릴 만 했다.
내가 징글징글 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기억은 왜 아직 머리에 버젓이 있는 것인지.
멀리해야 되겠다. 그러나 이렇게 그것과 관련된 글을 쓰며
또다시 멀리하긴커녕 더 가깝게 협착시켜놓고 있구만.
나는 그것들도 역시 언젠가 잃어버릴 만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내 맥북이 알고 보니 누군가 훔쳐간 것일 수도 있겠다.
기억을 도둑질 당할 순 없겠지.
그런 건 기대할 수가 없는 것.
대신, 나는 내가 잃어버려도 되는 것들을 당연히 잃어버릴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라고 이 각오를 여기에
못 박아둔다. 이것이 내가 나의 맥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셀프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