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없고, 일어나면 청소부터 하고, 조용한 데 누워 있는 거 좋아하고.
무엇보다 면상의 생김새..
이런 것들은 영락없이 내 친부와 내가 혈연 관계라는 걸 방증한다.
생김새야 불가피하다 해도, 행태까지 닮아 있으니 뼈저리게 유전자의 파워를 실감하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관계의 현실을 바라다 보면 왠지 쪼그라드는 느낌이 된다.
우울해지고 무력해지고 시니컬해지고, 종합적으로 기분 더러워진단 말이다.
나는 단지 그런 형편 없는 인간의 자식일 뿐인 것인가?
이렇게 생각이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래, 그런 순간이 오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도 침착하게 어루만져보자.
닮았을 뿐, 내가 내 친부와 똑같진 않다.
닮은 것들의 리스트 개수보다,
닮지 않은 것들의 리스트 개수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내 직업은 노가다가 아니고, 입에 욕을 달고 살지 않고,
일기 같은 건 매우 꾸준히 쓰는 타입이고,
내가 듣는 음악의 장르가 훨씬 더 다양하다.
언젠가 나는 한 번 정도 내 친부 생각에 눈물을 흘렸었고,
그 순간을 곱씹으면 이 모든 게 다 변명 같기도 하지만,
그 눈물의 순간, 내 인생에서 몇 분 안 되는 그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 나는 내 친부를 저주했다.
칼로 배때찌를 쑤셔버리겠다는 말을 수 백 시간 들었기에
나야말로 칼로 내 친부의 배에 칼을 쑤시고도 싶었지만,
나는 인내했다. 대신 그 후유증을 앓고 있고, 이건 아마 내가 노인이 되어도
그 흔적이 내 안 어딘가에 남겨져 있겠지. 그러나 나는 인내했다.
나는 도망친 게 아니라, 내가 쫓겨난 것도 아니라,
내 발로 내게 안전한 곳으로 찾아 향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또박또박 적어본다.
나와 그는 똑같지 않다.
그러니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오해도 금물이다.
나는 나로 살고자 했고, 그건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또다시 생각과 감정이 하나로 쏠리게 되려거든, 단단히 이 사실을 붙잡고,
내가 원하는 형태로 나를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