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내가 만든 PD 언론고시 필기 교본, 아직 못 봤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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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은 현직 KBS PD가 '나만의 레퍼런스 작문'으로 만들었던
특수서식형 작문을 볼 건데, 그 전에 일단 아래 작문부터 봐야 한다.
그래야 특수서식형 작문의 파워를 절감할 수 있으니, 반드시.
제시어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런데 나는 죽고 싶다. 인터넷에 널려있는 내 흑역사들 때문에. 싸이코월드 미니홈피 사진첩과 일기장들. 얼굴책의 수많은 포스트들. 전부 내 흑역사의 일부분이다. 아, 손발이 없어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냥 죽고 싶어진다. 이런 것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 삶의 의욕을 증발시켜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인터넷 장의사 박제거가 단 돈 400만원에 당신의 흑역사를 모조리 지워드립니다.”
선입금 300만원, 그리고 후입금 100만원. 오케이 콜. 돈 따위는 얼마가 들어도 상관이 없다. 내 흑역사들을 지울 수 있다면.
흑역사 제거 패키지 1단계는 내 인터넷 기록을 모조리 지우는 것이란다. 그것은 단순히 얼굴책이나 싸이코월드 같은 SNS 똥글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 속의 내 모든 기록을 지우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분디스크와 위디스크에 로그인해서 야한 동영상을 다운로드 받았던 기록, 네이년에 로그인해서 악플을 달았던 기록부터 한신카드로 긁었던 금융정보까지. 인터넷에 존재하는 내 모든 정보를 지워야지만 인터넷 상의 내 흑역사가 안전하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 속에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전부 없어지는 것인가. 좀 무섭긴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흑역사를 없애지 않으면 나는 곧 스스로 죽을 것이다. 안 된다.
오케이. 원 Go. 지운다.
흑역사 제거 패키지 코스 2단계는 이제 인터넷이 아니라 바깥 세상에 존재하는 내 기록을 모조리 지우는 것이었다. 온라인으로도 모자라 바깥세상까지? 단순히 인터넷 포스팅과 로그 기록을 제거하는 작업으로는 나의 흑역사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 지워졌다고 해서 실제 세상에서도 내 뇌 속 기억과 내가 남긴 흔적들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뭔가 좀 심한 것 같긴 하지만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이 인터넷 장의사란 사람,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고 치밀하다. 기록이 지워진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오케이 투 Go. 지운다.
이제 대망의 마지막 단계다. 마지막 단계는 다름 아닌 내 기억을 모조리 지우는 것이었다. 장의사가 말하기를, 모름지기 흑역사란 단순히 인터넷에 남겨진 똥글이 아니다. 그 순간과 그 역사를 포함하는 모든 ‘기억’, 즉 나의 트라우마가 바로 흑역사라는 것이다. 그럴싸하다. 아니, 그렇다. 흑역사가 단순히 인터넷의 끼적꺼림으로 인한 부끄러움이었다면 내가 왜 지랄발광을 해가며 죽음까지 생각했겠는가. 그래, 나는 지금 흑역사가 아니라 내 트라우마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었으리라. 전쟁에는 희생이 따른다. 나는 이제 마지막 희생을 통해 거머쥐려 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승리를 말이다. 죽을 수는 없다. 아니, 질 수 없다. 나는 이기겠다. 그래서 외친다.
오케이 쓰리.... Go.
지운다...지운다....
나는 다 지웠다. 내 흑역사들을 다 지웠다. 나는 승리했다. 나는 더 이상 그 시절 싸이코월드 속의 나로 돌아가서는, 죽음을 갈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흑역사와 함께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인터넷에 올렸던 나의 수학여행 사진들. 부모님과 함께 떠났던 유럽여행 사진. 즐거웠던 가평, 강촌에서의 MT의 사진. 여자친구와 찍었던 수많은 애정어린 사진들. 나의 모든 추억의 기록들이.
주민등록.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기록과 졸업 기록들.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기록들이.
그리고..... 내 모든 ‘기억’들이.
나는 이제 죽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살 이유가 없다.
-끝-
딱 봐도 허접하다.
아무리 봐도 언론고시 공채 필기에서 합격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때 나는 이렇게 첨삭을 해줬다.
이 작문은 본이 아쉽다. 본이 구체적인 어휘로 쓰이질 않았다.
주인공이 구체적으로 설정됐다면 고유명사가 많이 나왔을 거다.
주인공 수식어 만들기 단계가
허접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리라.
다시 봐도, 본이 정말 추상적이다. 어떠한 개별 인간의 윤곽이 보이지 않는다.
읽기가 힘들었다. 홀드가 딸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쓰기가 뒷받침 되지 않았다. 당연히 주인공 수식어가 약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너와 흡사한 인간으로 설정하고
다시 쓰면 본이 숫제 달라질 것이다.
버리긴 아까운 개요다.
언젠가 한 번, 써먹어 보길 권한다.
개요 자체는 참 좋다.
아니면 차라리 특수서식형으로 써보든가.
아이디어가 좋으니까,
컨버팅해봐!!
그렇다. 좋은 아이디어가 깃들여진 작문은 버리기 아깝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그랬더니 이번엔 이런 식으로 작문을 써서 보냈더라.
실험일지 #6714
케이스 NO.18 : ‘거절하지 못할 제안’
- 피실험체 개요 : 김민철. 남성. 32살. 취업준비생.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제2주공아파트 104동 1005호 거주.
- 피실험체 선정 이유 : 갤로그 리서치 빅데이터 조사 결과 흑역사 지수 97% (상위1%).
- 피실험체 유인 방법 : 실험 참가 권유 이메일 전송. (이메일 제목 : “당신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나 하겠습니다.”)
- 피실험체 실험 참가 동기 : 등신중학교 재학 시절 싸이코월드 미니홈피, 얼굴책 등에 썼던 자신의 게시물들이 흑역사(트라우마)로 남아 삶의 의욕 상실. 생존갈망.
◎ 실험 1단계 : 가상공간 기록 삭제
▶ 도구 : 다지워.EXE
▶ 상세내역
- 싸이코월드 미니홈피와 얼굴책을 중심으로 피실험체의 인터넷 상 기록을 모두 삭제.
- 네이년, 고글 등 포털사이트 및 분디스크, 파일누리 등 웹하드 로그 기록 완전 삭제.
- 기타 코코아톡, 토위트 등 SNS 리트윗 및 공유 기록 완전 삭제
◎ 실험 2단계 : 존재 기록 삭제
▶ 도구 : 디스트로이 휴먼(외주해킹업체) 활용
▶ 상세내역
- 전산 상의 피실험체 기록 완전 삭제.
- 등신초/중학교 입학/학적/졸업 기록 및 천년고등학교 입학/학적/졸업 기록 및 만년대학교 입학/학적/졸업 기록 삭제
- 주민등록 완전 삭제.
◎ 실험 3단계 : 뇌내 기억 삭제
▶ 도구 : 뇌세동기 프로토타입 제 6호
▶ 상세내역
- 등신중학교 재학 시절 기억 완전 삭제.
- 등신중학교 이후 뇌내 기억 완전 삭제.
- 뇌 연령 32세 유지. 뇌하수체 및 뇌세포 손상률 0.2%
▣ 실험 결과
- 피실험체 자살.
- 자살 원인 : 가상 공간 기록 / 존재 기록 / 뇌내 기록 삭제에 의한 사회 인지 능력 상실. 생존 동기 탐색 불가 상태에 봉착.
-끝-
처음 작문과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특수서식-실험보고서 형식으로 쓰니 완연히 다른 작문이 되었다.
수많은 일반서술형 작문들 중에서 군계일학으로 눈에 확 띨 수밖에 없는 작문이 된 것이다.
심사관은 하루에 수백 편의 작문을 읽고 평가해야 하는데,
거의 전부 다 비슷비슷한 작문을 읽기 때문에(시제가 같으니까 내용도 비슷해질 수밖에)
제대로 그의 머리에 각인되는 작문은 아주 드물다고 상정해야 맞다.
그런 와중, 저렇게 눈에 벌써 확 띠는 특수서식형 작문을 마주하게 되면
거기서 즉각 체감하게 되는 '참신함'이라는 장점은 그 작문을 쓴 자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고,
합격의 확률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결론은 이렇다.
예능PD 지망생이라면, 자신이 쓴 연습 작문의 아이디어가 좋은데(=훅이 좋은데)
전체 내용 전개가 너무 뻔하다 싶으면 한 번쯤 특수서식형 작문으로 컨버팅해보는 것도
강구할 만하다는 거다. 그러면 그 귀하디 귀한 '나만의 레퍼런스 작문'을 확보할 가능성이 드높아진다.
단, 드라마PD 지망생에겐 특수서식형 작문 개발을 추천하지 않는다.
드라마PD는 그냥 일반서술형 작문이 낫다. 드라마틱한 구조의 아크플롯 스토리를 쓰는 편이 합격율이 더 높더라.
물론 드라마 피디 지망생도 대부분 예능 피디를 병행해 지원 준비를 하기 때문에
1차 지망이 드라마 피디이고 2차 지망이 예능 피디인 언시생이라면, 강력한 나만의 핵폭탄급 무기 개발을 위해
특수서식형 작문 개발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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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서식형 작문의 파워. 현직 KBS PD의 작문 공유 ㅣ 언론고시 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