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KBS PD 합격자가 나의 언론고시 필기 교육 수강생 시절,
내게 처음 제출했던 작문과 합격을 앞두고 썼던 작문을 가지고 왔다.
거두절미.
일단, 내게 처음 제출했던 작문부터 보자.
제시어 : 밝혀지면 여러 사람이 다치는 비밀
나는 살고 싶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미치광이나 정신병자의 독백으로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이야기다. 이 이야기가 밝혀지면 나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생존의 위협에 쳐해 있다. 췌장암과 같은 불치병에 걸렸다거나 자살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죽을 것이다. 좀비들에게 말이다. 좀비는 부산행이나 새벽의 저주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좀비는 오성전자, 바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창궐해있다.
공포영화나 SF영화 속 모습과는 달리 좀비는 겉으로는 인간과 구분이 불가능하다. 좀비들은 인간처럼 행동하고 인간처럼 말한다. 심지어 좀비들은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 표현도 서슴지 않아 정말 이들이 좀비일까 싶을 정도로 인간 행세를 기가 막히게 한다. 내가 식인 대잔치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는 소름 끼치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구내식당 내려갈 시간까지 아껴가며 좀비들을 관찰한 결과, 대다수의 좀비들은 회사 내에서 높은 직책에 올라 있다. 최소 과장급에서 팀장, 심지어 나는 관찰을 통해 대다수의 임원급들조차 좀비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오성전자 모든 부서, 모든 조직에 득실대고 있다.
좀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간이 생존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과 기술, 능력들이 결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좀비들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된 정치력과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단합을 강조하고 기술과 능력이 아닌 더 높은 직급과 권한을 끊임없이 탐한다. 그를 위해서 좀비들은 높은 직급을 가진 인간에게 아첨하며, 동시에 자신들에게 없는 능력을 가진 다른 인간들을 음해하고 모함한다. 좀비들의 무기는 이빨이나 손톱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혀였다.
좀비의 소름끼치는 점은 끊임없이 번식한다는 것이다. 바로 인간을 좀비로 만들면서 말이다. 회사 내에서 높은 직급을 갖고 있는 대다수의 좀비들은 자신들의 부하 직원을 주요 타겟으로 삼아 좀비로 변태시킨다. 영화 속 좀비처럼 깨문다거나 살점을 뜯는 방식이 아니라 교육을 가장한 끊임없는 세뇌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은 혼자 살 수 없다. 회사 내에 인간이 많을수록 불안해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간들을 노린다. 쉽게 감염시킬 수 있는 부하직원들을 말이다.
나는 하루하루 그들에게 붙잡혀 죽을 것을 두려워하며 오늘도 공덕역 지하철에 내 발걸음을 옮긴다. 당장이라도 내 회사의 이 소름끼치는 사실을 폭로하고 싶지만 나를 비롯한 회사의 여러 사람들이 끔찍하게 살해될까봐 너무나도 무섭다. 나는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이 아니다. 까맣게 닫힌 동공,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는 안색, 그리고 흐릿하다 못해 공허한 정신 상태. 대리 직함을 달게 된 이후 어느 순간 나도 하루가 멀다 하고 나보다 뛰어난 동료 직원들을 흉보고 끌어 내리고, 같은 팀 후배 신입사원들에게 “회사 생활이란 것이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내 모습.
나는 이미 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끝-
길게 말하지 않겠다.. 더럽게 못 썼다.
내가 그토록 강조하는 '구체적으로 쓰기' 능력을 아직 충분히 키우지 못해,
그야말로 홀드가 엉망인 작문을 써버린 것이다. 나름 나쁘지 않게 쓰려고 대략 4시간 정도 이 작문 쓰느라
골머리를 썩혔는데, 결국, 작문이란 많이 안 써본 사람은 제대로 쓸 수가 없는 법이다.
많이, 써야 한다.
공채 합격자들 중에 작문 실력이 극도로 허접한데 합격한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주간 이벤트 격으로, 마치 조기축구회에 가듯, 일주일에 한 번 작문을 쓰는 PD 공채 준비생은
절대로 일주일에 죽어라 글을 쓰는 경쟁자들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이제 KBS 현직 PD가 합격하기 직전에 썼던 작문을 볼까나?
제목: 제41차 어른 자격고사 공고
◇ 개요
2076년 1월 19일에 치러질 예정인 제41차 어른 자격고사는 나이 기준의 자동적 어른 인증이 초래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41년의 짧디짧은 역사를 가진 이 시험은 이미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견줄만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시험은 어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지니길 원하는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습니다.
◇ 출제
1. 사회생활 영역
이 영역은 개인이 어른으로서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합니다. 사회적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지를 점검하며, 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으로 구성됩니다.
예제) 상황: 당신은 곤대상사의 대리로 아랍 바이어와 중요한 계약을 체결할 뻔 했습니다. 그러나 상사의 실수로 계약이 취소되었습니다. 부서장은 당신과 당신의 상사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1) 부서장에게 상사의 실수를 정직하게 보고한다.
(2) 상사와 협의하여 책임의 범위를 명확히 한다.
(3) 상사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실수했다고 부서장에게 보고한다.
(4)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정답: (3)
2. 예절 영역
이 영역은 어른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예절을 갖췄는지를 평가합니다. 예절은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영역은 단답형, 서술형, 객관식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제)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 여섯 가지 원칙’에 대해 서술하시오.
정답:
1. 끈기: 야근과 주말 근무를 포함한 긴 시간 일하는 것이 선호된다.
2. 주체성: 상급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3. 열정: 윗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선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야 한다.
4. 능동성: 문제 발생 시 스스로 해결책을 찾지 않고 상급자에게 능동적으로 찾아가 그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5. 충성: 상급자의 지시를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6. 예절: 상급자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커뮤니케이션 영역
어른이 어린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영역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장을 지도하고 계도하는 것은 어른의 책임입니다. 이 영역은 주로 서술형으로 구성됩니다.
예제) ‘어른의 6하 원칙’을 서술하시오.
정답: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at: 네가 뭘 알아?
Where: 어디서 감히?
When: 내 시절 땐 그런 건 꿈도 못 꿨어!
How: 나한테 어떻게?
Why: 내가 그걸 왜?
◇ 기타 정보
일시: 1월 19일 오전 9시
장소: 전국 66개 초중고등학교
출제 및 채점단: 전국어버이연합회 및 국민의근력 당원
-끝-
작문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이 한 눈에 보일 것이다.
그 사이에 그 얼마나 많은 작문을 썼는지는 나와 위 작문을 쓴 현직 KBS PD만 정확히 안다.
정말, 많이, 썼다.
글을 원래부터 잘 쓰는 사람은 작가 중에서도 없다. 하물며 언시생 중엔 없다.
가끔 자기가 글 좀 쓴다고 이죽거리는 언시생이 있는데, 웃기지 마라...
그 완연한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 하면 절대로 공채 합격 못 한다는 것에 내 새끼손가락을 건다.
위의 교본을 면밀히 정독하여 글쓰기의 이론적 토대를 튼실히 하고,
매일매일 필기 전형의 원활한 통과를 위하여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누구나 글쓰기 실력을 키울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그걸 버티는 게 자기 능력인 것이다.
KBS PD 합격자의 작문 비포 앤 애프터 ㅣ KBS 공채 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