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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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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학생 시절에 쓴 레포트.

by 김봉민 2023. 4. 30.

오래된 메일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서 

메일함을 뒤적거리다가, 발견.

15년 전에도 결국엔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 

지금 내가 이걸 보고, 그땐 참 어렸네, 같은 말을 한다면

그건 헛소리다. 잘 살았다. 

지금으로부터 15년 후에도 이걸 다시 보고 싶다. 

 


 

공연 제작 워크숍

 

연극 <내 사랑 DMZ>


 

 이 연극을 보기 3년 전에도 이 연극의 제목을 알고 있었다.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연극은 아무튼 간에 유명한 연극인 것이다. 유명한 연극이라 기대는 당연히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자기 자신의 글을 잘 쓰기 위해선 남의 좋은 글도 많이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연극을 보려 노력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무대의 쓰임이었다. 그 무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자연적인 형태의 숲이 아닌 굉장히 자유분방한 형태로 바꿀 수 있는 숲이었다. 그것은 극작가가 희곡에 일일이 적을 수 없는 것일테다. 연출적인 센스와 아우라가 느껴지는 세트였다. 그런 것을 어떻게 희곡에 표현할 것인가.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대한 세밀하게 적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아예 무대 표현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극과 같은 경우엔 극작가와 연출이 같은 경우이니 아마도 후자였을 것이다. 아직 연극 연출을 하지 못한 초보 아마츄어 극작가 같은 경우엔 희곡의 시작 전, 무대에 대한 대략적인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또 그 어마어마한 배우들의 숫자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커튼 콜을 할 때 세어 보니 대충 서른 명은 될 거 같았다. 열정만으로 연극을 무대화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다. 상업적 논리를 완전히 배제한 연극은 없을 것이다. 배우가 서른. 분명 노동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모든 배우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극장을 오갈수 있는 최소한의 임금만으로도 무대에 서는 배우들은 그 나름의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연극을 하는 것이겠지. 왜 연극은 배고픈 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착잡해졌다. 소극장 규모의 연극에 배우가 서른. 어떤 이유에서든 이러한 공연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이 연극엔 여러 가지 미덕이 있다. 그 중에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는 전체적으로 극을 끌고 나가는 중심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훌륭히 연극이 방만하지 않고 물 흐르듯 이야기가 흘렀다. 나는 이제껏 이런한 형식의 희곡을 써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주인공 없는 희곡은 쓰기 어려울 것 같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극작가가 완벽히 이해하고 등장 인물을 기가 막히게 가지고 놀지 않으면 불가능한 극작법이 아닐까.

 

 새로운 것을 추구해봤자, 역사는 이미 그 비슷한 것들을 무수히 만들어왔기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 연극의 연출 선생님에게 존경의 말씀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특강 감상문

 

 이번 특강의 주된 요점은 2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끝을 생각하고 글을 쓸 것.

 두번째, 무언가 세상에 줄 수 있는 -혹은 줄만한 이야기를 쓸 것.

 이것은 아직 젊고 미흡한 우리 극작과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였다. 나도 그러하거니와 우리들 극작과생들이 범하는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소재주의와 자위적 글쓰기이니 말이다. 그것에 관한 내 나름의 고찰을 살짝 풀어본다.

 

 소재주의로 인해 무언가 재미있을 것 같은 아이템만 있다면 우리들은 일단 쓰고 보는 경향이 있다. 세부적인 이야기 전개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를 소홀히 하고 단지 ‘재미있을 것’이라는 환상으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글을 쓴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될 경우 그 소재가 가지고 있던 방향과 장점도 잃게 되고 결국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이상한 이야기가 완성되거나, 혹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완성시키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끝을 생각하고 쓴다는 것은 이야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쓸데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엔딩으로 오기까지 수 많은 시도도 할 수 있다. 물론 끝을 생각하고 글을 쓰기 위해선, 그 끝에 관하여 아주 많은 생각과 공부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이야기의 마침표는 찍을 수 있으므로 아주 큰 미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자위적 글쓰기’는 정말이지 위험하다. 극작이라는 것이 자신의 내면 세계에 있는 것을 끄집어 쓰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오직 자신의 정서적 쾌감을 이루기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위적 글쓰기는 비밀 일기에 어울리는 극작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기를 쓰는 인간은 없다. 자신의 가장 은밀한 세계를 기록하기 위함이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너무 물질적인 비유일 수는 있으나 우리는 이를테면 냉장고, 티브이, 노트북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매장에 내놓았을 때 누군가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천편일률적인 만족감을 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경험이 아우러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수제품이라는 것일테다.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베케트 같은 명인들의 사례를 돌이켜 보았을 때 이것은 전 인류적인 사업이므로 자위적 글쓰기는 지양하고 특강 선생님의 말씀처럼 인류에게 무언가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생산해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첨단 고부가 가치 산업이다. 단 한 사람의 상상력과 기술과 감정만으로 세상에 무언가 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먼 선조들에게서도 발견되듯 가장 원시적인 유흥 산업이기도 하다. 이것이 예술이겠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임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