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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에 살며 에스키모의 구체적 하루와 그 고충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지어다

by 김봉민 2022. 8. 23.

나는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란 인간이라는 우물에 갇혀 나의 객관적, 정확히는 덜 주관적인 의미의 파악엔 

난항이 탄생 이후 계속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그런데 특이한 사람도 아니라 특수한 사람도 아니라, 

그저 4차원또라이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선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 편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노예의 삶은 원하지 않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게 있다면 마땅히 내던졌다. 그러한 시도의 결과가 반영되어 나는 나란 사람이 되었고, 

그저 이게 지극히 당연한 자세라 여겼던 것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인데 하기 싫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고,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 할 것이며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날지 정도는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 아닌가. 그런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부른다면, 이젠 괜찮다. 예전엔 기분 나빠 했다. 

근데 이상한 사람이라 불러도 이젠 괜찮단 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나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을 

곰곰하게 생각해보니, 나를 당연히 이상하게 여길 법한 인간들인 거 같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기준에 맞춰 내 감정을 흘리며 살아온 거 같고.

 

사이판에 살며 에스키모의 구체적 하루와 그 고충에 대해 아는 것처럼 말지어다. 

그리고 나 역시 사이판의 하루에 관해 쉽게 코멘트를 남기는 식으로 건방 떨지 말지어다. 

그들에게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걸 다행으로 여기고. 

 

내 오랜 투쟁의 산물이다. 

훈장일 수도 있다. 나는 생겨 먹은 대로, 그저 한낱 주어진 그대로, 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