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제: 시장에서 사과와 미역국과 고기를 두고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무슨 일일까? <화성 살이> [화성인 1세대 김승고씨 아내 출산 앞두다.] [화성 아이 최초로 태어나나?!] [이것은 화성의 경사! 김승고 주니어 곧 출산 예정!]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마르스 일보를 덮으며 다시 한 번 결심했다. 화성 재래시장을 가자! 반 년째 배송 중. 표시만 띡. 하니 뜨는 지구 택배를 기다리느니 내가 좀 힘들어지더라도 가서 미. 역. 그놈의 미역을 사고 말겠노라. 역사적인 날이라 여기저기서 요란히도 떠들지만 내겐 단지 사랑하는 아내가 많이 고생하는 날일 뿐이다. 그런 그녀가 아이를 낳은 후엔, 미역국 만큼은 꼭 먹여줄 수 있는 남편이고 싶다. 나 김승고는 이틀 전 허탕 친 기억을 도리질 하며 힘차게 문밖을 나섰다. 지구에선 흔하디흔한 미역을 여기서 겨우 하나 사기 이렇게 힘드니 원. 화성 살이 쉽지 않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벌써 다섯 바퀴 째 돌았지만 미역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다. 여보. 미안. 나는 한숨을 쉬며 풀문 정육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 최대한 이쁜 걸로 고르자. 나는 마블링이 꽃처럼 피어난 소고기 두 근을 포장해 나왔다. 이게 미역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화성 살이 정말이지 쉽지 않다, 라고 재차 생각하던 그때. 눈앞에 초록색 꾸러미를 든 사내가 보였다. 마르고 긴 청록색 줄기! 그 자태를 어찌 몰라볼 수 있을까! 바로 미역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내게 그 미역 파시오! 꼭 좀 파시오!”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고기를 보곤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난 고기는 필요 없어요. 돈도 필요 없어요. 제사용 사과가 필요해요.” 나는 그에게 정문에서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곤 부리나케 과일가게로 달렸다. 루나 과일가게 장수는 붉은 사과를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으며 윤을 내고 있었다. 무슨 금덩어리마냥 닦고 또 닦고. 지나칠 때마다 그는 그 모양이라 우스웠지만 오늘은 웃기지 않고 불안감이 덜컥 밀려왔다. “내게 그 사과 파시오! 꼭 좀 파시오!”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오른손 고기에 시선이 멈췄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아뿔싸. 힌두교 무늬였다. 그는 채식 주의자였던 것이다. 심지어 소 얼굴 그림에 엑스 표시까지. 그래도 여기서 물러날 순 없었다. 미역장수가 어디 아무 날에나 발견되던가! 나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결심했다! 그리고 사과 한 알을 냅다 집어 들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미역장수가 눈에 보이자 나는 그에게 달리라 손을 내저었지만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뿐이었다. 눈치 없는 사내 같으니! 그 앞에 사과를 내민 순간. 과일장수가 내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리고 사과를 번개처럼 채갔다. 아니 이 사람이! 곧 아버지가 될 사람을! 나는 울컥해 왼발 킥을 휘둘렀다. 하지만 내내 달려온 탓에 다리가 살짝 휘청거렸다. 그리고 퍽! 미역장수가 코를 부여잡았다. 그의 손가락 마디 사이로 붉은색이 보였다. 망했다. 우리 셋은 한참동안 엎치락뒤치락 하다 바닥에 쓰러졌다. 정문을 오가는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렸다. 두 눈 두덩이가 뜨거워졌다. 이젠 틀렸다. 미역장수가 내게 미역을 팔 리 있겠는가. 화성 살이 쉽지 않다. 왜 이렇게 쉽지가 않은 건지... 출산할 아내에게 미역국 하나 못 먹이는 무능한 남편인 것이 참말로 싫다.. 그때 뒷주머니서 진동이 울렸다. 나는 코를 훌쩍이며 전화를 받았다. 아내의 음성이었다. “여보. 태어났어.. 태어났어. 우리 아이, 태어났어!” “정말? 나 김승고의 주니어가 드디어!!! 여보!! 고생했어! 근데 미안해.. 미역국도 못 먹이고..” 나는 그대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이까지 낳았는데 이런 날 미역국도 못해주는 무능한 남편이라 미안하다며 몇 번을 사과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런데 갑자기 과일장수와 미역장수가 주춤주춤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그 신문에 실린 화성인 최초 애비 되는 사람이냐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 둘은 내게 미역과 사과를 내밀었다 “에이, 이 지구인 양반! 말을 하지! 축하해요! 사과 잘 먹이쇼!” “사과보단 미역국이 산모한텐 더 좋지! 내 미역 왕창 드릴게. 하하하!” 눈물이 핑 돌았다. 방금까지 뒤엉켜 싸웠건만. 민망함에 볼이 뜨거워졌다. 두 사람의 따뜻한 눈동자와 앞에 놓인 고기와 미역과 사과를 바라보고 있자니 기침과 콧물 섞인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럼 내 아내와 나의 주니어를 만나러 가자. 화성 살이 쉽지 않은 건 맞지만 어려운 것도 아니다! 가족과 함께라면, 이 우주에서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