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건가, 비가 내리는 건가.
나는 생각을 하는 건가, 내가 생각을 하는 건가.
슬픔이 내게 오는 것인가, 슬픔이 나로부터 뻗어나가는 건가.
골계미와 우아미와 광기와 열정과 꼴사나움.
그 경계를 나는 아직 모른다.
가만히 있으면 마음의 기본값이 우울 모드인
사람이 있다. 오늘은 불운이 있었다.
그러면 우울은 불운을 타고 더 덩치를 키우고,
비가 오는 것인지 비가 내리는 것인지,
그런 걸 중요하게 여겨보면서
라디오를 듣는다. 창밖은 어둡고,
나는, 내가, 슬픈, 글쓰기.
주욱 한번 나열해보고,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영 신통치 않아.
요즘 내가 가장 싫어하기로 한 사람의 스토리를 전해주자면,
그는 워낙에 엉망이라서 속 후련하게 미워만 하기도 힘들 정도란다.
충전용 블루투스 스피커는 밥을 달라고 앵앵, 알림을 울리고,
라디오에선 봉준호 감독 언급을 해온다.
누구도 나를 위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나의 기회를 열렬히 도모해야 한다.
비는 오거나, 비는 내리거나.
기회는 오는 게 아니고 기회는 내가 찾아가야 있는 것.
내가 눈을 떠야 인생이 있어. 내가 생각을 하려 부단히 붙잡고 있어야 내가 생각의 노예가 되지 않고,
슬픔은 떨쳐내려 해야 슬픔에 압도당한 채로 굳어버리지 않아.
그렇게 믿고 다시 창밖을 본다. 어둡다. 라디오는 이제 스마트폰 안에 있음에도
우리는 라디오를 끝까지 라디오라 부르기로 약속을 한 것처럼,
블루투스 스피커도 꺼지기 전까지는 켜져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대중가요 중 꽤 인상적인 가사를 상기해보네.
자, 떠나자, 고래 잡으러. 비가 그친 지 사실 좀 됐다. 내일 또 비가 오거나 내릴 거야.
그렇지만 안 내릴 수도 있다. 손가락이 아픈 기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때문에 내가 살아나갈 거란 사실이다.
이 모든 걸 끌어안은 채 살아내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