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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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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중수가 세 마디 하겠다

by 김봉민 2019. 4. 24.

중1 때부터 우울했다. 

사연은 이렇다. 

형이 미쳐서 자살 시도 같은 걸 했고 그 여파로 나는 그날 녹색똥을 쌌다. 

형은 자살 시도를 한 후 알몸으로 거리를 나다녔는데 

사람들이 동그랗게 형을 둘러싸고 어처구니 없는 괴물 구경하듯

바라만 보고 있었고

나는 읍소하며 연신 자기는 죽어야 한다는 형을 말렸기 때문에

몇 달 간 대인기피증에 빠졌다. 

그리고 형이 퇴원한 후에는 형이 언제 또 미쳐서 

나를 창문 밖으로 던질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불면증과 신경성 위궤양이 생겼다.

부모는 상당히 나의 상태에 무심했으므로 

나는 애정결핍도 느꼈다. 

 

그때는 그런 나의 상태에 대해 나도 무심했다. 

다른 가정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고

다른 인간으로도 살아본 적이 없었으므로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돌이켜보면, 돌이켜보고 싶지도 않는 나날이었고 

나의 우울증은 나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그리고 23년이 흘러 이제 나는 36살이 되었다. 

가까스로 이게 너무 심해지지 않을 정도로는 

미세하게 콘트롤 할 수 있게 되었으나 

발본색원은 앞으로도 몹시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말 잘 버텨왔다, 

 

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해주자는 게 이 포스팅의

첫 번째 한 마디다. 

두 번째 한 마디는, 첫 번째 한 마디처럼 참으로 뻔한 말이다.

 

너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름은 개명할 수 있으나,

개명되지 않는 자기 고질병이란 게 있는 법이다. 

숙명으로 받아드리되, 체념하지는 말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다. 체념해버리면 

녀석에게 잡아먹힌다. 너만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책만 계속하면, 

결국, 이건 너만의 잘못처럼 되어 버린다.

 

세 번째 한 마디가 남았다.

너의 잘못이 아예 코딱지 만큼도 없는 것은 아니니, 

세상 탓, 가족 탓, 남 탓만 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럼 저주하게 되고 분노하게 되면서 

점점 고립될 수 있다. 고립되면 세상이 리얼 지옥이 된다. 

어떻게든 세상과 손 잡을 여지와 여력은 남겨두도록 하자. 

이 우울에 대한 너의 잘못은 아마도 어쨌든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생존했다는 것 정도가 될 텐데, 

그 정도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고 사는 인간은 내 장담한다. 

아무도 없다. 자신의 탄생과 인생에 대해 납부해야 하는, 

그리고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세금인데, 

특별 과세 항목이 추가되어 있는 거라고 여기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할 말이 없어야 하는데... 아...

세 마디만 하겠다고 했는데, 드럽게 많이도 썼으므로... 

그래도 조금 더 하자. 

 

글쓰기는 우울증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 

 

누굴 보여주든, 안 보여주든 상관이 없고, 

잘 쓰려고는 절대로 하지 말고,

정답을 써보겠다는 망상은 발로 냅다 거둬차버리고, 

그냥 뭐라도 쓰는 건 좋단 말이다. 

내가 지금 그렇다. 쓰니, 좋다. 

 

글을 쓰지 않았으면 아마 나는 진작에 수의를 입었을 것 같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를 어떻게든 부여잡고 제대로 걸어보겠다는  

셀프 치료 시도와 유사하리라. 

암, 그렇고 말고. 

 

그러니 세 마디 하겠다고 했으나

한 마디 더 추가한 셈이 되어버렸지만, 

굴하지 않고 한 마디 더 보태면서 오늘 일기를 마치도록 하자. 

 

 

"내가 일정 시간 우울한 것이 지속되는 것, 그것이 우울증이다.

우울 그 자체가 나인 것이 우울증이 아니다. 나는 우울할 때가 많지만, 

우울하지 않은 순간들도 버젓이 꽤나 많이 내 삶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란 인간을 우울함과 동치시키지 말도록 하자."

 

 

그럼 진짜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자. 

 

인도 다질링, 쵸우라스타 광장(이름 맞나..?) 아무튼 2012년인데 본문 내용과 상관 없이 그냥 썸네일용으로 올려보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