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막장 드라마를 안 본다,
라고 하면 전두환이 노벨 평화상 받을 이야기다.
나는 어떤 막장 드라마들의 열렬한 팬이다.
티브이 드라마는 아니다.
.오이디푸스왕
: 아들이 친부 죽이고 친모랑 결혼해 자신의 형제이자 자식을 낳...
.햄릿
: 어떤 미친놈이 자기 아빠 유령을 보고선 복수심에 불타 이런저런 개차반 언행을 일삼는..
.그을린 사랑
: 자기 친엄마를 강간하여 자신의 아들, 딸이자 동생을 낳..
.바냐 삼촌
: 농사꾼인 한 중년 사내가 매형의 젊고 아리따운 두 번째 아내에게 홀려 매형에게 총질을...
.올드보이
: 오대수는 자신의 친딸 미도와.... 이우진은 자신의 친누나와...
뭐 이런 건데.. 막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게 왜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티브이에선 이와 유사한 리얼 막장 드라마가 인기 많은 걸까.
대학에 다닐 때다. 어느 교수가 한 말인지,
생각이 안 나다가, 계속 생각하니 생각이 나네.
박근형 선생이 그랬다.
사과의 맛이 어딨냐?
누구는 사과요.
누구는 혀에요.
누구는 그런 거 없는데요.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과의 맛은 사과와 혀 사이에 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 우와! 했다.
선생의 언어와 내 뇌 사이에서 스파크가 팍 튀었다.
나는 그런 게 궁금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걸 차용하여 대답해본다면, 막장 드라마가 인기 많은 요인은
막장 드라마 내부와 그걸 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좀 더 보태어 말하자면,
인간은 마음에는 저마다 크고 작은 막장적 갈증이 있다,
라고 주장해보고 싶다.
그렇다면 막장은 무엇일까. 막장은, 갱도의 막다른 곳, 이라고 하는데,
그런 사전적 정의는 됐고, 여기선 그냥 금기라고 하는 게 낫겠다.
인간에겐 금기에 대한 갈증이 있고,
막장 드라마는 그 갈증을 풀어주는 게토레이 같은 거라고 해두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막장 이야기들은 일테면,
S급 게토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원히 썩지 않고,
그 어떤 인간이라도 마시면 갈증을 풀어주는..
그러므로 임성한 작가님 만세, 는 아니고.
인간에 대해 오해를 하지 말도록 하자.
인간은 기본적으로 동물이다. 짐승이다.
심지어는 부지불식간에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전두환처럼 될 수도 있다.
매우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는 걸 '고전 막장'들이 알려주고 있다고,
나는 주장할 심산이다.
또한, 이런 마음으로 나를 포함한, 개개인의 인간들을 바라보면 낮아진 기대치 덕분에
전 인류에 대한 사랑의 총량이 좀 증가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