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사 김봉민
무조건.
무, 조건.
무와 조건.
불현듯 무조건이라는 말을 쪼개어보니,
없을 '무'와 '조건'의 합성어더라.
조건 없음을 말하는 명사이기도 한데,
나는 부사로서만 알고, 오직 그렇게만 써왔다.
뭔가 엄청난 걸 알아낸 기분이다.
세상은 당연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상태로 있다.
가족에겐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이론이 있고,
가족이더라도 가족답지 못 하면 연을 무조건
끊어야 한다는 설도 있다.
21세기 스마트폰이 사용되는 시대에
사주팔자를 앱으로 본다.
민주주의의 발원지에는 여전히 여왕과
왕가가 잘만 먹고 잘만 산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라고 하나, 저 거대한 교회를 보면
아직은 종교의 시대인 것 같기도 해.
과거로부터 시간이 계속 중첩되고 중첩되어
실로 복잡하다. 이런 상태로 또 미래가 펼쳐지겠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라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충분히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살았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내가 지금 보고 판단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뭐 하나 정확하게 아는 건 엄청나게 힘들고,
세상은 복잡하다. 복잡하고 기묘하다.
복잡하고 기묘하고 우스꽝스럽다.
나는 이것이 귀엽기도, 애처롭기도, 저주스럽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딱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을 보고,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나를 복잡하고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인간이라 여기는데,
그런 나는 이런 나를 귀엽게도, 애처롭게도, 저주스럽게도 대하곤 하니까.
어설픈 결론 짓기를 오늘은 유보하자.
그냥 귀엽게, 애초롭게, 저주스럽게도 말고,
가만히 있어보자. 무엇이 더 세게 튀어나오나, 무조건 기다려주자.
찍사 김봉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