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플랫폼이 운영되는 방식, OS라고 하자.
그 OS에서 각 개인은 자유롭기 어렵다.
문화, 헌법, 정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OS는 어떤 특질이 있을까.
(고민해서 해될 리가 있을까? 모든 것의 메뉴얼화라고 나는 본다.
메뉴얼화는 빠르게 정형화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이라는 이 플랫폼에 사는 인간이라는 콘텐츠는
이 OS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OS는 윈도우라고 하자.
대개의 우리나라 인간은 윈도우에 맞춰서 산다.
자기 삶의 운영 방식도 그대로 윈도우를 가져다가 쓰는 것이다.
문제는 이 플랫폼이 계속, 쉬지 않고 달라지고 있는데
OS의 업그레이드 속도는 그것을 못 따라가기 마련이란 것에 있다.
새롭게 달라진 세상에 구태의연한 방식이 먹힐 리 없다.
그래서 아예 이 OS를 거부하는 콘텐츠-사람도 있다.
자체 OS 소스를 가져와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운영해보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자체 OS는 리눅스라고 치자.
리눅스를 쓸 것인지 윈도우를 쓸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라고 본다. 리눅스가 더 나은지, 윈도우가 나은지,
가치 판단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윈도우에 따라 살면 그건 자기가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삶에 오류가 났을 때 무기력해질 수 있다.
일테면 서비스 센터에 가서 요청을 해야 하는데,
잘 고쳐주지도 않는다.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리눅스를 자기 최적화 해서 쓰려는
사람은 아무래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굳이 수고를 자처해서 하는 것이니까.
그러므로 만약 자체 OS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이 피곤함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니,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게 낫겠다.
그러나 첫 버전이 나왔을 때부턴 남 달리 살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가 개발했기에 자기가 고칠 수도 있다.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리눅스를 다른 사람에게 퍼트릴 수도 있다.
그게 문화 아닐까?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이다.
그렇다면 인류 진화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까지의 역사에서 모든 혁명의 주체들은
이러한 자기 운영방식을 개발하여기존 OS의 활용 가치를 낮춘 것이다.
왕권은 민주주의로.
노예제는 인본주의로.
중세 종교는 과학혁명으로.
남성중심 문화는 페미니즘으로.
그 외 기타 등등등등등등.
물론, 완벽한 버전의 OS는 없다. 계속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매일 변화하고 있다. 플랫폼이 변화하면 그에 맞춰서 운영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매일 변화한다. 개인이든 사회이든, 부단히.
그리고 자기 최적화 리눅스 역시 다른 이들의 원천 소스와 다른 버전을
참고해 만들어진 것을 명심하고 세계에 대한 고마움을 견지해야 되겠다.
그걸 모른다면 그냥 호로새끼다.
개인이 죽을 때까지 성찰하고
공부해야 하며,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이다.
찍사는 나 김봉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