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극작가이다.
중랑천이야기(원제: 기브 앤 테이크)와 형제의밤과 흑흑흑희희희라는 대본을 써서
공연했다. 각색도 하긴 했는데 하청 받아 한 것은 내가 한 것으로 치지 않는다.
나는 원청 정신에 입각해 대본을 써온, 그런 극작가이다.
아직 공연하지 못한 대본 하나가 있다. 그것까지는 반드시 무대에 올리고 싶다.
그것의 제목은 병신묵시록이다. 이걸 쓴 지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언젠가는 무대에서 공연하게 되리라.
그리고 나는 글쓰기강사다. 과외선생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PD언론고시 작문과 서울예대 극작과 실기를 가르친다.
PD언론고시 작문은 지인환의 입질로 인해 하게 되었다.
2013년 1월부터 해왔으니, 이제 5년이 넘었다.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 몰랐고, 그렇게 내 생활에 도움이 될 줄도 몰랐다.
많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다고도 할 수 없는 합격생이 있었다.
PD 공채 경쟁률을 감안하면 사실 높은 합격률이었다.
극작과 실기 과외도 그렇다. 많이 붙였으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는 가르치는 것에 대해 늘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한다.
나는 누구 가르치기가 싫다.. 이유는 엄청 많으나, 요약하자면, 말 그대로,
하기가 싫고 너무도 하기가 싫고, 정말 짜증나도록 하기가 싫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하기 싫어 징징거리는 것이 내 주된 술자리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이짓거리를 하지 않았으면, 내 인생은 거지꼴을 못 면했을 테니..
그리고 이것에 할애한 시간이 어느덧 글쓰는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늘었으니... 인정하자. 나는 글쓰기강사다. 그래,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또, 어느 코딱지 만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이다.
작년 2월에 회사를 만들었다. 왜?
나는 내 생활 저변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가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일테면, 글쓰기 강사 같은 것을 관두고 어느 정도의 안정된 경제적 여유 속에서
글쓰기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환경임에도
억지에 억지를 무릅써가며 회사를 만들었다. 작년 여름쯤에
뭣 모르고 회사 확장잼에 빠져 직원들 많이 뽑아 크게 망할 뻔 했으나,
지금은 지방 어느 문화 관련 관공서의 일을 주기적으로 받는다.
언제 회사 망할지 모르는 환경에서는 벗어났다.
내가 이 회사를 유지하려 하는 일 중 가장 주된 것은
재밌게도, 내가 내 생애 통틀어 유일하게 회사원 생활을 했던 회사에서
했던 일과 똑같다. SNS 홍보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콘텐츠 기획을 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회사원이었을 때 이런 것들이 너무도 하기 싫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나중엔 그냥 회사를 안 나가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나는 그때에도 하청이 아니라 원청이 되어 글을 쓰자고 매일 각오했으나,
회사는 당연히 그럴 시간을 내게 허해주지 않았고, 나는 퇴사를 해버리고는 인도에 갔었지.
지금은 그때의 SNS 홍보 경험을 밑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서 받아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내 글 쓸 시간이 없다.
이제 막 생긴 코딱지 만한 회사의 대표가 된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재밌게도 내가 하고 싶어 하기 시작한 글쓰기와,
하기 싫은데 하게 된 과외 선생과,
만들고 싶어서 만든 회사에서 하기 싫은 걸 하게 된 일들이 모두 엮여있다.
그러니까, 나는, 대체, 누구인가.
나는 극작가로 살고 싶었다.
정말로 훌륭한 걸 써내는 극작가. 그걸로만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내 환경과 상황, 내 욕심은 서로 부딪히고,
점점 불어나는 나의 수식어.
과외선생이며 회사 대표. 나는 작가이긴 한 것인가?
이 모든 걸 내가 자초하게 되었다. 이 모든 건 내가 자처한 셈이다.
나는 나를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과외에만 전념한다거나, 기업활동에만 전념할 수도 없다.
갑자기 글쓰기에 전념한다고 할 수도 없다.....?
전념하려면 전념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는데 못 한다고 생각해서 늘 문제다.
순순히 내가 자처하여 자초된 현실이라면,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처하여 자초하자. 벗어나게 만들자.
지금 덕지덕지 붙어있는 나의 수식어를 활용하여
원래 내가 가려는 곳으로 가자.
다시 글을 쓰자. 골방에 틀어박혀 나 혼자서는 이 동아시아에서
글쓰기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처럼
굴었던 그때의 경험도 나의 파워의 일부인 것을 기억하자.
그때 나는 가난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때 가장 부유했다.
글만을 쓰는 사람이 되자. 내가 나를 돕지 않으면 나는 여기에 계속 갇혀 있게 된다.
얼마 간 잘 준비해서, 그래, 흔들리는 불안을, 자초하자.
나는 하청이 아니다. 원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