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아지가 내 옆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똥을 누러간다.
똥을 보니 나의 강아지가 여지 없이 건강하구나.
그리고 그 똥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 부끄러움을 감수해낸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며,
그렇게 가까스로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스스로 다시 부끄러움의 세계로 진입하여
한층 더 부끄러웠다가, 그마저도 낯짝 두껍게 버틴 끝에 약간의 자랑스러움을 맛보았던 것이
순환되었던 내 인생.
그래, 나는 또 개똥처럼 누차 내 인생에 대해 궁리하고 앉았다.
지금 당장 부족하게나마 요약하자면 부끄럽고도 자랑스러웠다.
따라서 정신 상태가 극심히 객관적이고, 앞으로 내가 무얼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나의 그 무엇이 나를 곤경에 빠뜨릴지, 혹은 좀 더 낫게 해줄지 모르는 이유는
내가 그러한 나의 단기 예측을 사절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고,
언제가는 그래서 비굴한 협정을 치르는 것 같았고,
언젠가는 집도 절도 없이 평온했다.
그게 다 연결돼 있었다. 그러므로 그나마 적을 수 있는 건
오래 살고 보자, 정도가 되겠다.
노망은 지금까지도 많이 앓았다.
노망을 최소화 한다면 나중에는 이 난해한 시절들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그게 현재 나의 수준이다.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을
중단하지 못 하는 신세에서 벗어나면 좋겠어,
라고 적으며 개똥처럼 앉아 있는 것이 나의 현재 상태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강아지가 누는 똥을 보며 이건 분명 약으로 못 쓰는 것을 알지만,
이걸 보며 나는 나의 강아지가 건강한지 안 건강한지 가늠해볼 수 있고,
이게 그러하듯, 미래의 나도 지금 개똥인 나를 보며
지금의 내가 어떠한 상태였는지 진찰해 볼 수 있겠지. 역시 장수하고 볼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