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 없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이웃의 토토로
사람이 자기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중차대한 일이다.
중요한 일이라고 쓰려다가 중차대한 일, 이라고 쓰는 게
좀 더 특이하게 다가올 것 같아서
굳이 한 번 더 생각하여 중차대한 일이라고 썼다.
그리고 그런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술술 써졌다, 라고 하기엔 좀 머쓱하다만,
아, 이러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라는 시점에 당도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중차대한 일이라고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엔 중요한 일이라고 쓰게 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그건 비단 글쓰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전반에 걸쳐 그러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하듯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 거대 고민과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죽을 때까지 글쓰고 싶은데, 글쓰면 굶어 죽기 십상이니,
예술가 코스프레 관두고 남들처럼 살라는 말이
묵직하게 다가와서 그 말에 의거해 살기로 했을 때, 나는 벙어리가 되고,
장님이 되고, 식물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적 콤마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를 다시 깨어나게 한 건, 내가 지녔던 언어습관을 되찾는 것에 있었음을,
이제와 곱씹어보니, 알게 된다.
그러니 문제는 내가 내 언어를 상실하지 아니 하는 것이다.
지금 방금도 내가 내 언어를 '잃지 않고'라고 쓸 수 있었으나,
구태여, 상실하지 아니 하고, 라고 쓰고 싶었다.
내가 내 호불호에 투항할수록 나는 나다워진다.
이건 아주 중차대한 일인 것을 인지하기를,
거듭 내 자신에게 촉구하는 바다.
그리고 아직 한 가지 남아있는 주요 의문 사항,
'도대체 나의 언어'
란 무엇인지도 앞으로 내가 써낼 글들을 통해 규명해나가야 할 것이다.
환상을 품지 않고, 낙담하지 않으며, 극도로 힘든 과업에 다가서면서도
몇 번이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힘과 유연성을 유지하는 인간은
운이 다하지 않는다는 레닌의 말을 신용한다.
믿는다, 라고 쓸 수도 있었으나, 구태여 신용한다, 라고
쓰려는 내 기저에 깔린 매커니즘을 상실하지 아니 하고,
중차대하게 여기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내 인생의 전반과 후반을 통틀어 두고두고 상기할 수 있게
일단 여기에 적어본다. 언젠가 때가 되어 필요하다면,
이 글들이 나를 두들겨 패줄 테니, 안심을 해보며,
보란듯이 그만 쓰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