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다.
이런 문장을 적으면 일단 허세로 보인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적어본다.
허세로 보이더라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써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는 참 외로운 사람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경망스럽게도 농협 어플을 켜고
입금이 됐나 안 됐나, 확인을 했다.
입금이 안 됐고, 나는 참 외로운 게 문제였던 사람이다.
왜 아직도 입금을 안 한 건가, 따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르지만, 그걸 또 억누르면서,
다시 노력해본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언제부터 외로워진 것일까.
이걸 내가 탐색해보는 이유는 내가 나의 과거에 파묻히겠다고
작정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내가 외로움을 잘 타는 게 문제였다면, 그 문제에서 해방되고자,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아주 길고 긴 사슬이 내 발목에 묶인 거라면,
이 사슬의 시작점으로 찾아가 이걸 뿌리째 뽑아야 하므로.
그리고 내가 찾아낸 근원은 형이 순원빌라 201호에서 점프한 순간이었다.
중1때였다. 몇 년이나 됐는지, 세어보는 게 귀찮고,
나는 그로부터 4달 남짓동안
씩씩 거리며 성을 냈다만, 아쉽게도
그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대체적으로 머리에 남은 게 없다.
그저 기분이 남아있을 뿐.
그런데 이제부터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 건,
왜 입금을 안 하냐고.
유서 깊은 외로움과 지연되는 입금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가,
궁리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어쨌든 아예 관계가 없진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요약을 한다면, 산다는 건 여러 갈래의 수고 섞인 기다림을 겪는 일이리라.
허나, 나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라는 단어에만 국한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외로움에 파묻혀 자살 같은 걸 하지 않기 위하야,
부단히 임해온 사람이다. 허세라고 손가락질 당할 것을 감수하면서라도
내 의견의 개진에 힘써왔다.
지금도 그걸 나는 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속 비가 내리고 매타작 당하겠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으리라 기대해본다. 이 기대조차 수고가 동반되지만,
외로움을 외로움으로만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만 건들면,
개똥 이상의 약이 되고, 즐거움의 원자재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입금되지 않은, 내가 받아야 할 그 돈도
나는 잊지 않고, 받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