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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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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Autumn Leaves로 뇌스트레칭 하다가 흑흑흑희희희 이야기를

by 김봉민 2017. 4. 8.

 




.좀체 잠에서 일어날 수 없는 하루였다. 


.작년 오늘은, 내가 6년 동안 무대에 오르길 기다렸던 '흑흑흑희희희'가 드디어 관객과 만난 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있었고, 누워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딱 1년 전 일이었고, 더 없는 붕괴였고, 참사였으며, 비극이었다. 


.나는, 그때도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일어나기 힘들었던 건 1년 전과는 다른 이유다. 


.이유는 다르지만, 형태는 비슷했다. 산다는 건 엇비슷한 일의 연속이다. 


.엇비슷


.완전히 같은 건 없다. 차이와 반복 속에서 엇비슷한 일이 펼쳐진다.  동일한 일은 다시는 펼쳐지지 않는다. 


.1년 전에 겪었던 나의 마음은, 오직 나만 안다. 그 마음에 대한 나의 유일한 간직이 고독과 외로움과 고통을 수반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나의 니쥬다. 그 유일한 간직을 좀 소화하여 내 독보성의 재료로 쓰고자 한다.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내가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제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기 위함이다. 


.어제의 악을 방관하는 건 내일의 악을 응원하는 것이고, 오늘의 허접한 삶을 그러려니 해주는 것은, 오늘의 진짜 삶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일이니까.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자. 나는 김봉민이다. 1년 단위로 인생의 국면에 대전환을 스스로 가지고 오는 사람이다. 


.나는 호호호호, 호남! 나는 호호호호, 호녀! 우리는 호호호호, 호남호녀, 얍, 짜잔! 


.위와 같은 유치만발의 문장이 맘에 있으며, 동시에, 


.우주는 새까만 것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안의 작디 작은 점인 별 하나가 나머지 새까만 공간의 존재 가치를 설명해준다. 


.위의 문장도 맘에 버젓이 있는 사람이 나다. 


.나를 밟고 넘어뜨릴 순 있어도 내가 다시 일어서는 걸 막을 순 없다 


.흑흑흑희희희를 나의 눈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흑흑흑희희희가 끝나고, 그후 맨씨어터를 나온 뒤, 대략 서른명과 관계가 끝났거나 불편해졌다.


.행여라도 결단코 미워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내 잘못이 비슷한 패턴으로 또 다시 내 인생에 펼쳐지지 않도록 늘 염두하고 있다. 


.그러나 또, 후회하지 않는다. 생길 일들이 생겼을 뿐이었다. 


.1년이면 충분하다. 절대로 낙담하고 녹아내리지 않는다. 


백희 들어가자.

흑철 좀 더 놀자.

백희 뭐하고 놀자고 인간아!

흑철 잘 들어 봐. 너 왜 모든 사람의 똥구멍에서 털이 나는지 알아?

백희 모른다고! 또 똥 얘기야!

흑철 평생 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웃다가 하니까. 모두들 그렇게 사니까, 누구나 똥구멍에 털이 날 수 밖에 없는 거야! 희희희. (토를 한다) 난 말야, 그래서 엉덩이에 아주 길게 꼬리가 생겼지 뭐야! 너는 그렇게 되면 안 돼. 

백희 아이고, 잊지 않을게요!

흑철 아이고, 그럼 그 선그라스 좀 주면 안 될까요!

백희 아이고, 이거 나도 어제 산 건데 사람이 염치도 없어라!

흑철 한 번만 빌려주지 그래요!

백희 그래, 뭐,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흑철 (선그라스를 낀다)

백희 아이고, 착용하신 소감이 어떠신지!

흑철 깜깜하네요.

백희 ..

흑철 우주가 이런 건가요? 

백희 거기에 반짝거리는 소금 가루가 마구 뿌려져 있어요!

흑철 아름다웠나요!

백희 물론이죠! 우주에 와 있는 것은 마치.. 해본 적은 없지만.. 그건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할 때의.. 그런.. 느낌이랑 비슷할 거예요.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런 느낌.. 

흑철 용서하시기로 한 건 가요?

백희 물론이에요! 전부 다! 전부 다 용서할게요! 죽어도 여한 없습니다!

흑철 잘 했어요, 앞으로도 잘 될 거예요. 기적을 바라옵니당. 연백희가 꼭 섹스하게 되기를 바라옵나이당. 사랑받기를 바라옵나이당. 언젠가 우주에서 스타, 그래 별이 돼서 기다릴게용. 수술 잘 받으세요. 

백희 그래. 너도 꼭 별이 되세요! 

흑철 (잠들었다)


        백희, 피범벅이 된 흑철의 입에 뽀뽀를 한다.


백희 이런 느낌이군요. 정말 좋네요. 깜깜한 우주에서는 별들이, 이곳에서는 네가 있었으니 그걸로 족합니다. 희희희.



.2017년 4월 8일. 이곳에서는 네가 있으니 그걸로 족합니다. 희희희.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발명해내는 것이다. 


.발명에는 이미 발견이 포함돼 있다. 


.만담을 가장 처절하게 하면서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우주까지 구원할 수 있다. 


.용서하시기로 한 건 가요?


.물론이에요! 


.밖에서 이기고 말고보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이 먼저다. 


.모든 것이 나의 니쥬다. 


.그러므로 작년, <흑흑흑희희희>가 공연된 것을 감사히 여기자. 그와 관련된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