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1년 6개월 만에, 부모님 명의로 된 집에서 잤습니다.
영영 척을 지고 살 것만 같았던 아버지와는 술을 같이 마셨습니다.
내가 잘 때 아버지는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내 생애를 통틀어 나를 가장 힘들게 한 사람입니다.
글쓰는 것에 대한 반대를 정말 있는 힘껏 했고,
이때다 싶으면 아예 나를 인간적으로 고립을 시켰던 전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조만간 내가 이사할 집을 알아봐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시종일관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나는 조금이나마 안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너무도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그 행동들만 모아서 여기에 적는다면,
참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삶을, 저는 살았습니다.
속단하지 말고, 침착하게, 정확하게 살고 싶지만,
이따끔 저는 속단해버렸고, 침착하지 못했으며, 부정확하게 살았습니다.
그럴 때면 와장창 무너져내려서
마디 마디가 끊어진 것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덜 어리석게 사는 걸 모토로 삼고 있으나,
관성이 역시 무섭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여전히 속단하고, 침착하지 못 하며, 부정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어제 부모님의 집에서 자기 전, 눈물이 나왔습니다.
덜 어리석은 게 아니라, 실은 현명하게 살고 싶지만,
내 생각은 가끔 끝도 없이 곤두박칠 칩니다.
영영 못 볼 것 같은 상상에 보일러가 망가진 집에서
겨울을 사는 사람처럼 나는 망가질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더듬어봅니다.
내가 힘들 때, 그후의 상황들을 떠올려봅니다.
새벽, 길바닥에 쓰러진 후 펼쳐졌던 가족들과의 반목과 고립.
그걸 견뎌낸 내 힘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 때의 희망과 용기는 온전히 내 것이고,
시진핑이든 트럼프든, 아니면 야훼든,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희망과 용기로 계속 나아간 덕분에
이렇게 다시 부모님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상황이 펼쳐졌단 것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나는 어리석었던 적이 많았지만,
그 이후엔 항시 뭔가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삶에 적용시키려
부단히 애를 써왔습니다.
나는 감장보다 파워가 쎈 하양을 알고 있고,
우주에서 제일 쎈 것의 정체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속단하지 말고, 침착하게 있어봅니다.
정확하게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설령, 되돌릴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지더라도,
무기력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성과 반성을 거듭하며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용기와 희망을 믿고 나아갈 것이며,
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계속해보겠습니다.
오늘 내가 적고 있는 이 말들을
1년 6개월 후는 물론, 그 이후에도 쉼 없이
지켜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