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사명감이 있다.
네가 뭔데 그렇게 거창한 것을 감히 갖고 있느냐고 물을 이도 있겠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김봉민이고, 이제 34살이다. 몸무게 72. 키는 176. 그리고 거창한 비전을 갖고 있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콘텐츠를 기필코 만들고야 말겠다.
그 이유는 내가 그런 콘텐츠의 도움을 받아 30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3살 때, 나는 정신적 아사의 상태에 이르렀으나,
진정으로 훌륭한 콘텐츠는 가난하고 배고프며 고통스런 인간을
살려내는 역할을 하더라.
삶의 새로운 국면을 제시해주더라.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을 제공해주더라.
덕분에 나는 이렇게 당당히 34살이 되었다. '당당히'라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나는 당당하게 살고자 애 썼고, 그 근간엔 내게 힘이 되어준, 내가 필요로 했던 콘텐츠들이 있었다.
13살 때, 내가 만났던 콘텐츠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되는 소설이었다.
오래 전, 수년, 수십 년 전의 아주 오랜 옛날,
아직 나무 타기를 좋아하던 시절에
내 키는 겨우 1미터를 빠듯하게 넘겼고,
내 신발은 28호였으며,
나는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무렵 정말로 날 수 있었다.
-소설 <좀머씨 이야기>, 파크리크 쥐스킨트
오늘은 우리가 사는 나라의 역사에 깊이 각인 될 일이 있었다.
'미래'라는 의미에 대해 나는 생각했고, 일 개인에 불과하지만
내가 지닌 사명감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러므로 빚 지고는 못 사는 내 강력한 성향상,
나는 내가 <좀머씨 이야기>에게 도움 받았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 누군가는 아마도 가난하고 배고프며 고통스런 인간일 것인데,
그가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
그런 이들의 건강해진 얼굴을 봐야 나는 당당하게 노인이 될 수 있으리라.
이렇듯 나에겐 사명감이 있단 말이다.
네가 뭔데 그렇게 거창한 것을 감히 갖고 있느냐고 물을 이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마저 필요로 하고, 그런 사람에게도 도움 될
콘텐츠를 만들고야 말겠다. 세상은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나는 김봉민이다.
이제 34살이다. 몸무게는 72키로 정도 된다. 키는 176.
나는 지금도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