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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개요짜기의 중요성 - PD 공채 언론고시 합격 작문, 자소서, 기획안 - SBS 작문 합격법 [출처] 6강. 개요짜기의 중요성 - PD 공채 언론고시 합격 작문, 자소서, 기획안 - KBS 작문 합격법

by 김봉민 2017. 2. 5.





아래 링크를 눌러서, <5강. 작문도 디자인이다>부터 보도록 하자. 


http://odosischool.net/220926594208


그래야 도움이 될 것이다!



6강. 개요짜기의 중요성


.개요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장에 들어가 ‘작문을 창작’하겠다는 것은, ‘탈락하고 싶어요’라는 말과 다를 바가 거의 없다. 창작은 ‘0에서 100까지’를 가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90분, 혹은 그 시간 안에 그걸 하겠다고? 너무 리스크가 크다. 

운의 영역에 자신의 운명을 올인하겠다는 것을 나는 극구 말리고 싶다. 


운이 아니라, 자기 실력에 맡겨야 한다. 실력을 키우는 방법은, 

‘모방’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모방의 대상을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좋은 단편소설? 안 된다. 단편소설은 단편소설이고, 우리가 다루는 작문은 그보다도 

10배는 짧다.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위에서 읽었던 ‘마크힐스’ 같은 작문을 읽고, 단순 ‘잘 썼네’라고 감상하는 습관은 뿌리 뽑아야 한다. 여러분은 감상자가 아니라, 실제로 써야하는 ‘제작자’의 영역에 들어오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 마인드를 버리고, 프로 정신에 입각해야 한다. 프로는 감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가 할 것이다. 프로는 분석해야 한다. 어떻게 쓰여졌는지 개요를 짜보고, 자신만의 노트에 정리하라. 


정리된 것을 알게 되었으니, 자신의 작문 실력이 늘 거라고?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런 기적은 바로 펼쳐지지 않는다. 

아는 것을 토대로 4~5번 꾸준히 연습해야 비로소 ‘마크힐스’ 같은 작문을 쓰는 사람의 역량이 

자신에게도 장착됐다 할 수 있다. 분석하는 이유는 나에게 도입하기 위함이다. 

아는 걸 써먹지 못 하면, 엄밀한 의미에서 그 지식은 사실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작문 실력이 높아지면 굳이 시험장에 가 ‘창작’을 하더라도 

이미 그것은 ‘0에서 50까지’는 자신이 연습한 작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태가 된다. 

안정성이 확보된다. 절반의 내공만 시험장에 가서 쓰면 된다. 


결론) 감상하지 마라! 분석하라! 

분석한 지식을 나의 글쓰기에 도입하라! 



.훅과의 연계성

글을 쓰기 전에 개요를 짜는 것은 건축에 들어가기 전, 건물의 설계도를 그린 것과 같다. 

누누이 언급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눈물나게 중요하다. 

개요가 똥이면 당연히 작문도 똥이 된다. 

개요를 통해 다음과 같은 계획이 나왔다 치자. 


‘못 생긴 사람이 성형수술해서 예뻐지는 이야기’


이렇게 계획이 되면, 실제 글쓰기에서도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 

허나, 보자. 저 전제는 어디서 숱하게, 정말 지긋지긋하게, 본 것 같다. 훅이 딸린다. 

천하의 셰익스피어가 부활하여 저 전제(개요)를 갖고 글을 쓴다한들

막막함에 치를 떨 것이다. 


개요 만들기 단계에서 훅을 장착하지 않고, 

또한 전체 구조의 틀을 고퀄로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쓰기에 돌입하는 것은 

‘저 불합격 하고 싶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못 생긴 사람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에서 제일 못 생겨져셔 유명해지려고 못 생겨지기 위한 성형수술을 하는 이야기’


이게 낫지 않은가? 훅이 생기지 않는가? 원래 만들었던 것보다 기대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개요를 짤 때 훅을 확보하라. 

작문의 메인 훅은 개요 짤 때가 아니면 확보가 되지 않는다. 


될 때까지 해라. 90분 기준, 15분 동안 최소 하나의 개요는 

고퀄이 나올 때까지 연습하자. 인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니 

어설프게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말고, 하고, 또 하자. 


고통이 수반되는 반복을 통한 강화 훈련 없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것은, 

양아치의 근성이다. 여러분은 양아치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응당 치러야 할 것은 치르자. 



.시간 안배 계획

일단 아래 글을 읽도록 하자. 


 <지각인생>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 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 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위의 글을 손석희 사장이 왕~년에 신문에 투고했던 글이다. (잘 썼다)

이 글의 개요를 나눠보면 이렇다. 


서: 나는 지각인생을 산다. 

본1: 미국 유학을 갔었다

본2: 외지에서 겪은 만학도로서의 고충

본3: 연구실에서 울기까지 했다

결: 그러나 후회없는 나의 지각인생 


각각의 소개요가 얼마만큼 쓰여졌는지 살펴보자. 

분량체크를 해보면, 답이 나와있다. 

거의 수학에 가까울 정도로 1/5씩 쓰여졌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 더 보자. 


다음은 피천득의 ‘인연’. 한국 문학사에서 수필로서 최고점에 위치하는

걸작 수필이니 경외감을 갖고 읽도록 하자. 



인연(因緣) 


-피천득(皮千得)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 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하게 된 것은, 주수녀님과 김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 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東京)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 교육가 미우라(三浦)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꾸 시로가네(芝區白金)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이'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피이'는 아사코 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聖心) 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카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연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하였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델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令孃)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 같이. 그때 그는 성심 여학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 여학원 쪽으로 옮겨졌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꼬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꼬와 나는 밤 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나누고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제2차 세계 대전이 있었고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 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 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에 들러 미우라 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二世)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와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二世)와 결혼하였다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이십여 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進駐軍)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끝-

 

서와 결의 분량은 각각 3줄. 완전히 같다. (춘천으로 시작해서 춘천으로 끝내는 수미상관도 확인하자)


본1,2,3도 살펴보자. 각각의 분량이 거의 같다. 

거듭 말하지만,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확한 분량의 안배가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달을 충실히 약속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그 이유는 이것이 아무도 쉽사리 말하지 않는, 


‘작문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지각인생식’으로 1/5씩 안배하는 게 좀 더 쉬운 게 사실이다. 

흉내를 내야 한다. 모방을 해야 한다. 

이것을 자신의 글쓰기에도 적용해야 한다. 또한, 이렇게 적용을 한다면, 

한 가지 거대한 팁을 발견할 수 있다. 


시험시간을 90분이라 가정했을 때,

개요짜는 데 15분. 글쓰는 데 총 75분. 


서: 15분

본1: 15분

본2: 15분

본3: 15분

결: 15분


총 75분. 이렇게 계획적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시험장에 가서 작문 용지를 받으면 일단 앞면을 5등분 하고 작게 체크하자. 

그리고 서론을 체크한 딱 그만큼만 쓰자. 시간은 15분. 

시간 체크하면서 나머지 소개요도 쓰면, 시간 없어 글을 못 쓰는 

최악의 불상사는 방지할 수 있고, 불합격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몹시 커진다. 



결론) 개요 없이 글쓰지 마라.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처절히 반성하고, 

앞으론 무조건 개요에 의지한다는 마음으로 작문에 임하자!

그래야 SBS, KBS를 붙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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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강. 개요짜기의 중요성 - PD 공채 언론고시 합격 작문, 자소서, 기획안 - SBS 작문 합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