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 중 한 장면인데, 그냥 한 번 있어 보이려고 올려봄 - 토토와 알프레도!
2012년 10월 하고도 5일. 새벽 3시 9분
모기 한 마리가 내 방 안에 있다. 저 녀석에게 나는 오늘 새벽, 한 차례 분명히 당할 것이다.
모기약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원래 이런 녀석을 맨손으로 잘 때려잡는데,
저 녀석은 상당히 고공비행한다. 팔이 닿지 않는다.
어차피 당할 거라면, 당하지 뭐.
체념하면 당분간은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땐,
맘이 편해지는 거다.
벌써 금요일인데, 벌써 이렇게 됐네,
라는 생각은 정말 끔직하게 많이 해봤다.
안 좋은 기분과 습관의 반복을 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처한 이 세계가 끝없이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라는 말도 이미 전에 어딘가에 쓴 거 같다.
나는 나를 깨부숴야 한다. 이 생각이 언제쯤 완전히 나의 것이 될까.
언젠가는 되겠지. 너무 늦어지면 정말이지 괴로울 거 같아.
어제- 지금은 새벽이니까-는 청계광장에서 한성대입구 찬우네 연습실까지 걸었다.
걷는 게 좋다. 아까는 자전거를 탔다. 날씨 추워진 게 바로 느껴져서 금방 들어왔다.
추워지면 나는 움츠러든다. 이상하게도 늘 그래왔다. 가을을 타는 게 나의 전통이다.
또, 이럴 땐 난 말도 못하게 우울해지곤 한다. 그리고 더 심각한 건 우울해지면 맘에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인다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온통 추상적이고 심각한 말들이 입밖으로 나와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당황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으니 난처해한다.
나는 나 때문에 누군가가 그러고 있는 걸 잘 못 견딘다.
그래서 익살이나, 개소리나 떠들면서 사람들을 웃기고,
나 스스로를 실없는 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번 가을엔 좀 덜 그랬으면 좋겠다만. 후.
이렇게 맘속에 있는 걸 두서없이 쓰는 건 내게 참 쉽다.
이런 훈련 하나는 정말 잘 되어 있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가 극작의 기본인데,
난 이성이 약하다. 다행이지. 난 날 손톱만큼이나마 약간 안다.
모르는 게 가장 큰 죄다. 잘 알아가자.
난 날 알아야만 한다. 졸리다.
모기는 아직도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어차피 당할 거라면 당해버리자, 라고 말한 건
철회해야겠다. 때려잡고 자야지.
이런 무력감이 누적되면 더 이상 그걸 나라고 부를 순
없을 것이다. 나는 나를 깨부술 계획인데,
그건 그냥 파괴가 아니다. 창조적 파괴라고 명명하자. 캬.
그리고 내게 있는 몇 안 되는 미덕은
계속 안고 간다.
모기는 높이 난다.
그러니 못 잡겠다는
헛소리는 그만 하고, 잡자.
잡을 수 있는 것은 잡아버리자.
잡았다.
나는 날 손톱만큼이나마 안다.
잠 잘 자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한 건지도 잘 안다.
잘 자자.
영화 시네마 천국 중 한 장면인데, 그냥 한 번 있어 보이려고 올려봄 - 토토!
그리고 이렇게 2017년이 되었다.
확연히 그 사이, 사람들 앞에서 광대짓 하는 횟수는 줄었다.
아예 사라지지는 않았어도 괄목할 만한 추이였다.
또한, 지난 4년 4개월 남짓,
잠드는 게 괴로웠던 나날도 많았지만,
결국 잠 못든 날은 없었다. 그걸로 됐다.
그날의 모기를 대했던 방식 같은 무기력함에
몇 번 빠진 건 사실이다.
몇 달씩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 못 잡은 모기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보니 그 어떤 죽은 사람의 책보다,
내가 썼던 나의 일기가 현재의 나를 가장 혹독하게
매질하는 것 같다. 어딘가 시큰시큰 거린다.
미안하기도 하고,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맞아도 쌀 때라면, 아낌없이 맞자. 그래야 정신 차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미래의 늙어있을 나를 위해
이렇게 두서 없이라도 일기를 쓰자.
일기 쓰는 습관은 인간이 부지불식 간 스스로 자처해
앓을 수 있는 병신암을 방지해주는 최고의 백신인 게 분명하다. 캬!
김봉민의 작가는 옛날 일기 - 두서 없이 쓰는 일기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