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인도 델리역 인근 도로, 찍사 이즈 김봉민
2012년 3월 11일 뉴델리 바즈랑 게스트하우스 밤 10시 27분 7일째
오늘은 인디아 게이트에 갔다.
라즈가트 주변은 우리나라의 여의도 분위기가 나더라.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할까?
아무튼 빠하르간즈는 남대문 시장,
코넛 플레이스는 명동, 그런 분위기다.
인도에 있는 탓에, 나는 모국 생각을 자주 한다.
너무 깊이 생각할 거 같으면 슬쩍 빠져 나오기는 하지만,
수면에 닿은 발바닥의 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적는다.
나는 분명히 사회생활 패배자다.
고작 8개월 만에 관뒀으니 할 말 없다.
원래는 1년만 하려고 했는데,
대신 나머지 4개월은 이렇게 나를 위해 쓰고 있다.
현명한 고행, 이라고까지는 못 하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나한테 맞는 옷, 나를 위한 침대, 나에게 어울리는 작업대가 따로 있다.
게다가 나는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이 뚜렷하다.
그걸 모른 척 하며 살 수는 절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가, 언제부터 좀 이상하게 바뀌었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살 수는 없다.
내가 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자책감에 빠졌던 건,
하루에 꼬박 8시간 글을 쓰고 있는데, 그 이유가 돈 좀 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 꿈을 위해선, 왜 그렇게 열심히 글쓰지 못 했을까.
나는 열심히 글 쓴 적이 없다.
열심히 글쓰기를 소망했던 적만 있었을 뿐.
따라서 앞으론 현실을 위해서 적당한 돈벌이도 찾고,
열심히 글 쓰고 있다고 당당히 세상에 말할 수 있을 만큼,
내 일에 집중해야겠다.
스스로를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키지 않고,
살아 숨 쉬는 인간, 꿈꾸는 착한 짐승으로 유지시키는 데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 필요하다.
여기 인도가 아닌 세계 어딘가로 가도,
이 비슷한 문제 의식을 느꼈을 것이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이 비슷한 다짐을 했을 터.
세상 어디에 있어도 직면해야 할 문제는 그대로다.
아무리 낯선 곳에 있어도 내가 그대로이니까.
따라서 나는 못 해낼 수도 있다.
나는 사회생활 패배자였고, 패배의 연속 속에 살았다.
그럼에도 하고자 한다.
실패하더라도 이번엔 제대로 실패해보련다.
쉬지 않고 달려들어 물어뜯는 짓을 해보자.
그리고 지금 2016년 11월 서울.
지난 4년 8개월 사이,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면 너무 자뻑인 걸까?
암. 물론. 자뻑이다마다.
자뻑하지 말자.
그러다가 망해봤잖아.
그러나 지난 4년 8개월,
내가 못한 건 또 뭐야.
못한 것도 없다.
그럭저럭 왔다.
이것도 사실이다.
계속해보자.
실패하더라도 계속 해보자.
김봉민의 작가는 2012년 인도 일기 - 사회생활 패배자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