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

우울의 얼굴

by 김봉민 2025. 2. 24.

우울의 얼굴은 슬프지 않다. 

나는 그 얼굴을 거의 매일 봐왔다. 

우울의 얼굴을 슬프지 않고, 멍이 든 모습이다. 

웃다가 울다가도 하는데 여하간 멍이 들어있다. 

만지면, 아픈데, 아프다고 빽빽 소리를 지르지는 않고 

찡긋찡긋거리다가 그냥 꾹 참기도 한다. 

만성이다. 우울의 얼굴을 최상단에 달고 있는 몸뚱이는 

드러누워 있고 싶어 하지만 드러누워 있다는 호사를 

24시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에 

그 얼굴을 맨 위에 달고 서거나 앉은 채 버틴다. 

그리고 드러눕게 되면 드디어 드러눕게 됐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에 

취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싶어진다. 

의식의 흐름 같은, 잡스럽게 여겨지는 게 중단되어서 가장 편안한 상태에 

머물고 싶어진다. 그 가장 낮은 단계는 아무래도 잠이겠다. 

잠들면 편하다. 그러나 영원히 잠들 수는 없으니 

영원한 잠과 가장 닮은 그것을 종종 왕왕 떠올리게 된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 하소연의 절차와 과정조차 번거롭게 느껴지고 

누군가와 이 마음을 나눈다고 이 마음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아무래도 이 마음은 타인에게 오물이나 쓰레기처럼 느껴질 텐데 

그런 걸 전달하여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 우울의 얼굴에 아무리 메이크업을 한다 해도 결국엔 벗겨질 분칠. 

그 격차감은 자학을 행사하게 하고 멍은 더 광범위해지고 색은 더 깊어지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안해낸 최선의 방법은 육체 혹사다.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노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달린다. 땀을 왕창 빼낸다. 이 우울의 얼굴이 땀에 젖을 때까지 달린다.

빨리 달리면서 달리기 실력을 높여 개인 기록을 갱신하려는 목적은 

전연 없고, 오로지 몸뚱이를 혹사시켜, 몸뚱이가,

이렇게 힘들면 안 되잖아, 이러다 죽겠어, 

조금은 살맛나게 해줄 호르몬을 전신에 분비시켜볼게, 라는 

판단과 행동을 감행하게 만들기 위하여서, 달리는 거다. 

나는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했던 적이 없다. 

태어나기 전부터 이렇게 프로그래밍이 된 것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가치관 형성이 시작될 무렵에 

외부 환경에 의해 내 감정 매커니즘에 심각한 말썽이 

발생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울하고 싶어서 우울했던 적이 없었단 말이다. 

나는 우울하게만 있는 것에선 벗어나고 싶다. 

따라서 나는 나 자신을 우울한 인간이 아니라

우울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으로 포지셔닝한다. 

이 우울의 얼굴에 번져 있는 멍을 없애려 고의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온힘을 다해 내버려둔다. 

그래, 여기 계속 있어라. 하지만 더 번지는 것은 용납치 않는다. 

그리고 나는 달린다. 이러한 일련의 다짐과 과정이 내가 정의하는 행복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