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

2015년 3월 7일 오후 3:47에 메모장에 적은 거

by 김봉민 2025. 2. 21.

기적

 

몇 주 전이었다.

상수동 사는 형이 가자는 술집에 갔는데 때마침

내 중학교 동창이 그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땐 베프였는데, 그후 유치원생이 된 듯

우리는 서로의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얼마나 반가웠던가. 조금 반가웠다.

 

일 주 전이었다.

어느 학교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학교 앞에서 아는 얼굴을 보았다.

3년 전 인도에서 반나절 함께 다녔던,

어느 배우였다. 그 배우와 같이 다녔을 때,

나는 앞으로 글을 쓸 거라고 했었다.

모쪼록 앞으로 기대한다고, 별 표정 없이 대답했던 그 배우는

그 말과 그 말을 한 나를 까먹었는지 나를 못 알아봤지만,

내가 쓴 대본으로 워크샵을 하는 극장에 들어갔다.

얼마나 반가웠던가. 하나도 안 반가운 건 아니었다.

 

며칠 전이었다.

신촌에서 집 앞까지 오는 버스를 타고 집에 오려다,

기다리기엔 너무 추워서

집 저 먼치에서 내려야 하는 버스가 오길래 바로 탔다.

잠시 후, 작년에 결혼한 동네 친구의 누나가 버스에 탔다.

친구와 나와 누나는 셋이 몇 번 술을 마셨던 사이.

누나와 나는 동네 근처에 같이 내려 맥주를 마셨다.

반갑다고만 하기엔 술값을 내가 치러서 퍽 쓰라렸다.

방금 건 농담이고, 설령 전혀 반갑지 않더라도,

 

이렇게 왕왕

기적 같은 확률의 일들은 현실 안에 있다.

몹시 반가운 기적들도 그래봤자, 현실 안에 있겠지.

그런 기적이  펼쳐질 때까지 꾸준히 버티고 볼일이다.

그리고 쨌든, 이렇게 페북에 똥도 그만 싸고 볼일이며,

기적이 펼쳐져봤자, 그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기적이 있었다는 기억조차도 잊혀지더라.

다시 찾아올 기적을 놓치지 말자.


지금은 2025년. 10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니, 무슨 기적이 있었나.

아무래도 가장 큰 기적은 이한솔과 만난 것일 테지. 

8년째 연애 중이다.

그리고 좀 느끼지하고 개기름 낀 거 같지만

그다음 큰 기적은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거. 

나는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참 좋다. 어느덧 새벽 4시 2분이 되었다. 

오늘은 봉녕사에 가야지.

우리가 산다는 건 당연히 기적의 연속이라는 걸 되뇌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