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문 마지막에
-끝-
을 꼭 붙여주라고 하는 것만큼 강조하는 게,
작문 첫머리에 제목을 꼭 지어서 붙여주라는 거다.
작문에 훅을 창작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근데, 제목을 잘 지으면 처음부터 눈을 확 사로잡게 된다.
이 훅이 홀드에도 꽤나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에, 작문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지고,
네 글이 제대로 읽혀지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근데, 내가 제목을 지으라고 하면 다들 어려워하더라고.
막상 제목을 짓자니, 참신한 건 생각이 안 나고,
뻔하게 지으면 더 마이너스가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겠지.
이왕이면 보자마자 본문이 기대되는 작문을 지으면 베스트겠지만,
그건 작가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제목을 짓는 방법 중 그나마 좀 쉬운 것은,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 관련된 어휘로 제목 지어주기'이다.
그럼 결말이 바래가 나지 않으면서도, 훅은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다.
아래 작문을 한번 보자.
[제시어 : 버려야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
돈이 없다. 명예도 없다. 심지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사람조차도 없다. 더 이상 버릴 것도 잃을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이 한 몸뚱아리 버린다한들 어느 누가 기억하겠는가. 하지만 인생에 딱 한번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죽음.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 죽음으로나마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미련 때문일까.
먼저 죽는 방법을 고민해봤다. 목욕탕에서 손목 긋기? 신발 끈에 목매달기? 할복? 뭔가 의미가 없다. 멋이 나지 않는다. 죽음의 상징은 뭘까. 그래. 자유. 답답한 육신으로부터 자유, 투신. 가장 높은 빌딩에서 내 몸을 내던지는 거야. 일단 63빌딩은 옥상에 진입이 불가능하고, 그 다음으로 높은 도곡동 타워펠리스로 들어가야지. 엇, 근데 여기는 입주민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돈 없는 놈은 죽지도 못 하는 거야? 어쩔 수 없군. 일단 여기에 입주하는 수밖에...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나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텔레마케터에서 공사판까지 밤낮으로 돈을 번 지 10년. 10억을 모으는 데에 꼬박 10년이 걸렸다. 드디어 타워펠리스 펜트 하우스 입성. 널찍하니 좋군. 거참 죽기 딱 좋은 높이야.
죽는 방법도 정해졌겠다, 멋들어지게 유서를 쓸 차례다. 원래 유서는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성적표라 하질 않던가. 10년 동안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돌아다닌 덕분에 쓸 글감은 충분히 많다. 모아둔 돈으로 저명한 소설가, 희곡작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글 솜씨를 길러왔다. 문제는 이 글을 누가 보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보고 기억할수록 죽음은 아름다운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 위해서는 내가 유명해져야 한다. 고민 끝에 떠올린 것은 SNS. SNS에 내 유서의 전문을 하나의 ‘에세이’처럼 써서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좋아요 100 만 명을 돌파하면서 순식간에 SNS 저명인이 됐다. 심지어 출판사에서는 등단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출판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아름다운 죽음’을 제목으로 에세이 책을 내서 대박을 터뜨렸다. 좋았어. 유명인이 됐으니, 이제 아름다운 죽음의 완성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 한 가지. 이 상태로 투신하여 사체가 발견돼선 안 된다. 42살의 나이에 아직 솔로 아니던가. 친구도 없고. 나의 죽음을 ‘외로움에 비관’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내 주위에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아름다운 죽음’ 책을 좋아하는 팬들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 나의 죽음을 최대한 멋지게 장식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사람들과 어느덧 친해지면서 인간관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미모의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163cm의 긴 생머리에 청순한 외모,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갸날픈 목소리. 완벽한 나의 이상형이다. 첫 눈에 우리는 사랑에 빠졌고, 우리는 작가와 팬 관계에서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3개월 뒤 결혼식에 골인하게 됐다. 이제 끝났다. 내 몸을 던지는 순간 아름다운 죽음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저녁 8시. 테라스로 나갔다. 겨울이라 바람이 제법 세찼다. 이제 이 못난 몸뚱아리를 내던지기만 하면 된다. 난간에 발을 내딛는 그때, 내 발목을 잡는 아내의 김치찌개 냄새가 집안에서 풍겨온다. 이 냄새. 얼마나 그리워했단 말인가. 안정적인 삶, 유명인으로서의 삶, 그리고 예쁜 아내의 따뜻한 김치찌개를 함께하는 삶을. 조용히 난간에서 내려왔다. 삶을 버려야 했지만, 이젠 오히려 삶을 버릴 수 없기에.
-끝-
이 작문도, 레퍼런스급 작문이긴 하지만,
고쳐야 할 부분은 있다.
근데 오늘은 그걸 살펴보는 게 아니니까, 오늘의 주제에 집중을 해보자.
과연 이 작문의 제목은 뭘까?
.
.
.
.
.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
이다.
제목이 무지하게 참신한가? --> x
제목 자체가 무지하게 웃기거나 감동적인가? --> x
근데, 작문 속 주인공의 원초적 욕망이 제목에 반영됐다.
제시어와 제목도 연관되어 있다.
이정도만 해도, 제목을 안 지어준 사람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정말 제목을 구리게 짓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더 계속 제목을 지어봐야 한다.
그래야 제목을 잘 지을 수 있는,
좀 덜 구리게라도 짓게 되는
능력이 생길 가능성이 열리는 거다.
제목 못 짓는다고 계속 안 지으면
그냥 평생 제목 잘 못 짓는 놈으로,
분명 제목을 안 짓는 것보다는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인 걸 알면서도 안 하는 놈으로 남을 뿐이다.
못 지을수록
더 집착적으로 계속 지어봐야만 한다.
게다가, 제목은 네가 만드는 고유명사다.
작문이든 기획안이든, 남이 만든 고유명사만 집어넣어둔 사람보다는,
자신의 고유명사를 하나라도 더 제시한 사람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게 당연하다.
모든 면에서 제목 짓기는,
마치 작문 마지막에
-끝-을 써줌으로써
손 쉽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는 확실한 느낌을 주는 것만큼이나,
해서 손해될 게 전혀 없는 하나의 치트키다.
꼭 지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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