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평균적인 드라마의 질이 영화의 그것보다 낮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길기 때문이다. 단막 드라마는 본다. 일테면 블랙미러 시리즈는
종종 본다. 두꺼운 소설도 거의 안 읽는다.
마찬가지다. 너무 길기 때문이다. 단편소설은 좋아한다.
그나마 읽으면서도 계속 결말에 해당하는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고 싶다는 충동을 꾹꾹 참아내야 하는 실정이다.
희곡 읽는 것도 아주 좋아했었다. 제 아무리 길어야 2시간이면 다 읽거든.
영화를 보는 데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난 긴 걸 안 좋아한다. 싫어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는 엔딩이 궁금하다. 이것도 호기심이라면 호기심이려나.
호기심이겠지. 나는 가급적 빠르게 해당 이야기의 전체 모습을 습득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호기심보단 급한 성격이 주된 요인일 거 같다.
최대한 빠르게 내 식 대로, 그 사람이 만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갈증은
내 글을 쓸 때도 통용된다.
내가 쓴 글의 결말도 빠르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래야 비로소 감옥에서 출소한 기분이 든다.
결말을 볼 때까지는 내내 수감자의 심정이라 어디서 뭘 하든 불편하다.
사람들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책이고 영화고 남의 글 읽는 것도 성가시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빠르게 내 이야기의 엔딩을 마주하는 게 중요하답시고
얼렁뚱땅 허접하게 부실공사를 시전할 수는 없다.
모든 글에는 그걸 쓴 사람의 지문이 묻는 법인데,
아예 글을 안 쓰면 안 썼지, 참담한 엔딩의 글을 써서
안 그래도 볼썽사나운 나란 인간의 병신스러움을
셀프 홍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쓸 수 있는 글 중 가장 근사한 걸 써내어
버젓이 내게도 장착되어 있는 미적 스타일을 남들도 접할 수 있는
형태로 세상에 끄집어내고 싶다. 그러니 참는다.
빨리 엔딩을 보고 싶지만 대충 쓰면 오히려 내게 더 큰
재난이 될 거라 상정한다. 생각을 가다듬고 더 나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기존의 것을 버릴 것이며, 고치고 또 고치는 걸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일종의 선행인 거라고
스스로에게 분명히 경고하며, 참는다.
그리고 호들갑은 적당히 떨자고 다짐하며
나의 오래된 맥북을 챙긴 후 내가 있으면 좋을 곳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될 때까지 해보자.
그러면 내 이 엔딩에 대한 갈증이 나의 새로운 오프닝을 도모해줄 가능성도
어쩌면 생길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