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도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 법이다.
연애도 많이 해본 인간이 더 자주, 잘한다.,
기획안이라고 다를 리 없다.
프로그램 기획안도 기획안을 많이 짜본 사람이 잘 짜게 된다.
그 머릿속에만 있는 환상적인 프로그램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는
문서화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일목요연하게 해당 정보를 장악하여 제대로 말할 수 없고,
다른 이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게 된다. 피디 공채 자소서 항목에 넣을 때 부랴부랴 써으려고 하면,
그땐 이미 늦었다. 글자수의 압박부터 일단 너무 거세고, 머리로만 생각했을 땐
그렇게나 좋았던 그 기획이 막상 텍스트로 써보니, 한심할 정도로 별로라는 걸 목격하게 된다.
운이 좋아 필기 전형 시험장에 갔다 치자. 거기선 시간 압박에 또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기획의도를 기깔나게 쓰고 싶으나 아무리 애를 써도 구체적인 기술과 방법을 모르니 헤매게 된다.
그래. 운이 극한으로 좋아 임원 면접까지 갔다 치자. 거기선 기획안 싸움이다.
자신이 쓴 기획안에 대해 임원이 물어봤을 때 제대로 말할 확률이 극도로 적다.
경쟁자들은 게다가 자신의 기획안 갯수로도 밀어부친다. 나는 꼴랑 2~3개 있는데
거의 수십개를 현장에서 술술 설명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결국엔
언론고시 PD 공채에 최종 합격하게 된다.
기획안의 중요도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충분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겠다고
영화를 많이 본다고 시나리오 쓰는 능력이 키워지는 것이 아니고,
김범수의 노래를 많이 듣는다고 김범수처럼 노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본다고 피카소와 동일한 능력이 생기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직접 자기 기획안을 써봐야 한단 이야기다.
https://vongmeanism.tistory.com/725
일단 저번에 공유했던 기획안- 변슐랭가이드도 보고
아래 예시 기획안도 보자. 공채 최종 합격자가 만든 창작 기획안이다.
처음부터 저런 형태는 아니었고 나의 교육과 첨삭 피드백을 받으면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를 해온 결과물이다.
허나, 당연히 에이스급 기획안은 아니다.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최종 합격자의 에이스급 기획안들은
나중에 티브이에서 보게 되겠지.
최종 합격자의 에이스급 기획안을 나는 절대로 공유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와 그 친구들과의 신뢰관계인 것이다.
그들의 신상도 공개하지 않는다. 들어간 방송국명도 물론이다.
왜? 쪽팔릴 수 있으니까. 이제 명색이 어디 가서 공채 피디이기에
방구 좀 끼면서 살 인생인데, 대학 졸업 즈음, 혹은 그후 사설 과외를 받았다는 사실이
쪽팔릴 수 있다.
독학으로 PD 언론고시 공채를 뚫었다고 말하는 게 더 있어 보일 수밖에 없는데
각자의 자기 멋을 내가 망쳐놓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다.
각설하고.
아래 기획안이 갖다 버리는 게 나을 수준은 아니다.
에이스급 기획안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기획안 때문에 지난 PD 공채 시즌에
골머리를 썩힌 자들에겐 귀감이 될 법한 자료이다.
프로그램 명: 폐업 로컬식당 작별기 <최후의 만찬>
방영시간대: 매주 토요일 밤 10시, 80분 방영
제작: 채널A
편당제작비: 90,000,000*5 (파일럿)
출연: 장도연, 허영만, 홍석천, 최자
1. 기획의도
133만 외식업 자영업자 시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우리가 나누지 못 했던 그 말들.
개업과 폐업이 흔해진, 무감각의 시대.
손님은 손놈이 되어 가고,
주인장 손맛은 프랜차이즈 레시피가 대신하고,
배달로 인해 손님과 주인장이 서로 볼 일은 없어져가지만.
단골. 그 정겨움은 이야기로 남아.
잘 가던 집 근처 단골 식당이 갑자기 사라지면 찾아오는
약간의 아쉬움. 조금은 허탈한 손님의 마음.
손님에게 전하지 못했던 주인장의 고마움.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단골 손님들을 초대해 대접하는 마지막 음식.
어쩌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그 집 음식들을 맛보며
그간 있었던 사연들을 나눠봅니다.
그 맛과 그 이야기들이 있어 아직 살 만 합니다
단골손님들과 주인장의 마지막 만남.
도시 속, 사라지고 멀어져가는 것들이 너무 많아
이별에 무감각해져가지만, 서로의 앞날을 응원해보는 시간.
133만 외식업 자영업자 시대, 끝이 있으면 시작도 있는 법.
폐업 로컬식당과의 작별기 <최후의 만찬>, 이제 펼쳐집니다.
.출연진
경청해주며 잡아주는 중심, MC 장도연
전국 팔도 유명 식당 탐방가. 리얼 식객, 만화가 허영만
연예계 대표 폐업 전문가, 방송인 홍석천
음악하기 위해 먹는 게 아닌, 그저 먹기 위해서 먹는, 가수 최자
2. 구성내용
오프닝) 오늘의 폐업 식당과 단골손님들, 그리고 만찬 준비
: 폐업 식당 인근 이동식 스튜디오. VCR을 통해 함께 보는 주인장의 폐업 사연.
단골 손님 섭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고정 출연진 + 마지막 만찬 준비하는 주인장.
바디) 마지막 만찬
-밤11시 59분. 드디어 모인 단골손님들.
-펼쳐지는 마지막 만찬 속, 밝혀지는 폐업 이유.
-최자와 그의 친구들이 불러주는 최후의 만찬송.
-고정 출연진들의 적절한 조화.
클로징) 애프터 인터뷰
: 폐업 후 주인장의 근황 인터뷰와 단골손님들의 응원. 그리고 허영만 화백의 마지막 만찬 현장 그림 한 컷.
3. 경쟁 포인트 및 차별점
1) 폐업이라는 다소 우울한 소재를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기획
: 잘 되는 식당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많았다.
잘 안 되는 식당을 잘 되게 해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폐업하는 식당과 주인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곳에만 있을 특별한 사연들을 많이들 궁금해 할 것이다.
2) 휴먼 다큐와 식당예능과 토크쇼의 만남
: 단순한 하나의 포맷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많으나 다양한 포맷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아무래도 다양한 화면 제시와 변화되는 내용 전개로
지루함은 덜어내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킬 수 있다.
본 프로그램은 다양한 포맷이 결합되어 있어 시청자들의 눈과 귀,
그리고 궁극적으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3) 순한 맛, 그리고 진한 맛, 무엇보다 깊은 맛
: 독하고 매운 예능이 주류가 된 시대이지만,
그 위대한 철학자 헤겔의 정반합 이론에 따르면
이젠 그 반작용으로 독하고 매운 예능의 완전 대척점에 있는
예능에 대한 대중적 소구가 예상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순한 예능. 진한 예능. 깊은 예능. 그래서 눈물도 좀 나는
그런 예능을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4. 특이사항
-해당 식당에 방송인 단골이 있다면 반드시 섭외
-프랜차이즈 식당은 배제
-주인장의 재창업, 혹은 희소식이 있을 경우 지속적으로 추후 방송에서 소개해 단발성 관계성이 아니라 끈끈한 관계성을 강조
-주인장이 원할 시, 외식전문가의 재교육을 무상으로 제공
이 기획안만 보고도 이 프로그램이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보여지게 될 것이며,
누구에게 핵심적으로 어필할 것인지가 전달되어야 한다.
기획안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머릿속의 기획 아이디어는
그게 아무리 천재적인 것이더라도 그냥 잡생각에 불과한 법이다.
제대로 기획안을 쓰는 기술을 터득하려면 당연히 많이 기획안을 써봐야 한단 이야기다.
이런 지난한 훈련과 연습이 있어야 PD 공채 합격의 길에 한 발자국 더 가깝게 다가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런 시도도 없이 성공을 바라는 건 양아치의 미덕이지, PD 공채생의 미덕일 리 없다.
아무런 시간적, 금전적 투자도 없이 거대한 수확을 바라는 건 정신병 초기 증세이니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할 뿐이다. 기획안과 작문, 논술 등 언론고시 피디 공채의 필기 전형에 필요한
대비를 경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해놓지도 않았으면서 지금 당장 내 상사로 있는
공중파, 혹은 종편의 유튜브채널 관리자 PD들을 머저리 취급하는 것도 그저 화풀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 중 상당수가, 믿기지 않겠지만, 공채 출신이기 때문이다...
-아래 이미지는 위에 있는 기획안의 원본 이미지다.
안 보고 스킵해도 된다.
나는 PD 필기 온라인 과외를 진행하기에 하루에도 수강생들의 적잖은
기획안을 보곤 한다. 고로 어떤 소재의 것은 너무도 많은 애들이 짜내기에
해당 기획안을 그냥 킬하자고 말한다. 다들 겹치는 기획안을 갖고 있는 건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 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은 부족한 기획안 아이디어엔 내가 알고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반영하게 하기도 한다. 결국 이것은 포맷 싸움인데 너무도 단선적이고 1차원적인 아이디어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어 에이스급 기획안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최종합격자들이 계속 나오는 것이다.
폐업 로컬식당 작별기 <최후의 만찬> ㅣ PD 공채 최종 합격자의 창작 예능 기획안#2 . 프로그램 기획안 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