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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고시 필기 교육 전문 <퓌트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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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by 김봉민 2019. 2. 14.

지하와 반지하.

지상이 아닌 것은 같은데도 막연히 

지하보단 반지하가 좋았고, 

방이 두 개이니 행복해야 한다고 들었다. 

곰팡이가 벽지에 꽃처럼 피었고, 

미싱 돌아가는 소리. 먼지. 코 한쪽 구멍이 

막혔어도, 누구나 그렇게 구멍 하나가 꽉 

막힌 건지 알았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의 하반신. 밤이면 창문을 열고 나는 

어른들 몰래 지상으로 발을 올린 후 

지상에 발을 디뎠고, 괜히 

동네 한바퀴 돌다가 무서운 형아들이 보이면 

생쥐처럼 다시 반지하 창을 하나 열고 귀가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최완의 집은 

단독에 지상에 방 4개. 최완 할아버지는 땅부자에, 

최완은 머리에 파마를 하고, 옷도 늘 새 거를 입었다.

최완은 자신감이 넘치고 최완은 나한테 장난치는 걸 좋아하고, 

그러다가 최완은 몇 년 후엔 나한테 죽빵을 맞았다. 

최완은 나한테 반격하지 않고,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다시는 나한테 장난치지 않았다. 

엄마한테 전교1등 놓쳤다고 목욕하다가 뒤지게 맞고 

알몸으로 집에서 쫓겨난 형은 중학생이 된 후엔 

가출을 3번 하고, 롯데리아에서 시급 1400원짜리 알바를 해서 

모은 돈으로 고장난 오토바이를 타다가 같은 학급의 전교 1짱인 허머시깽이의 

꼬봉이 되었다가 다시 몇년 후엔 미쳐버리고는 허리에 

인공뼈를 넣고 정신과 검진을 받았다. 

나는 중학생이 되어 위궤양을 앓아 겔포스를 달고 살았고, 

다시 창밖을 내다보니 형이 뛰어내린 지상 2층 빌라의 높이에 있었다. 

나는 옥상에 있길 좋아했고, 거기선 행인들 하반신이 아니라 정수리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엔 인공위성이 깜빡였고, 

나는 언젠가 우연찮게 근처 빌라에 사는 젊은 부부가 창문을 열고 

섹스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나는 별안간 우주가 궁금했고, 겔포스 살 돈이 없어서 

바닥에 뒹굴거리다가 성인이 되었다. 

나한테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곰팡이는 죽은 건지 

아직 산 건지 분간할 기준을 나는 알지 못 했다. 

그런데도 성인이 나는 되었고, 여차하면 노인이 될 기세지만, 

그런 기세지만, 나는 꿋꿋하게 반지하와 옥상과 지상 사이를 오가며 

산다. 뚫려 있는 콧구멍 하나로도 충분히 숨을 쉬며 살 수 있다는 

커리어를 지녔다. 해가 뜬다. 볕이 곰팡이처럼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