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똥을 싸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화장실 변기에 앉게 된다.
나는 밥을 먹도록 디자인도 되어 있다. 뭘 계속 먹으려 든다.
나는 잠을 자도록 디자인도 되었 있는데,
남들보다 그 시간이 좀 길게 설정되어 있다.
가난하도록 디자인 된 채 태어났다.
갖고 싶은 걸 갖으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얼굴도, 키도, 몸무게도 대략 이렇게 생겨먹게 디자인 되었고,
그다지 원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모습으로 살아있는 동안에는
살아야 한다.
나의 디자이너들을 생각해본다.
누가 나를 디자인 했는가. 신이랄까. 그런 게 있을까.
자연. 무작위적인 확률에 근거한 자연은 디자이너에
낄 수 있을 거 같다.
부모는 분명, 각 개인의 디자이너일 것이다.
문제는 이 디자이너들의 솜씨가 영 탁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인간이라는 굴레. 또는 한계.
그런 게 내 삶의 베이스로 깔려 있다.
다른 이들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스스로 디자인 해나갈 수 있는
자기 몫의 미래도 꾸준히 응시하고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들이 봤을 때도 좋은 것을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글쓰는 것을 내 삶에 디자인하여 형상화 하려 노력했다.
나는 죽도록 디자인 되어 있다.
죽을 때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시도해봐야지.
탁월하지는 않더라도, 무조건 개똥 같은 디자이너는 되지 않기를.
딱 그 정도가 내가 디자이너로서 살며, 지킬 철칙일 것이다.